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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짱 Apr 29. 2024

참깨와 기름과 쥐가 만나면?

[하루 한 편 구비구비 옛이야기] '게으른 아들이 키운 참깨나무'

재능 있고, 감각 좋고, 그래서 이 세상에서 말 그대로 한 가닥 하셨던 분들이 요새 좀 시끌시끌 하지요. 저는 뜬금없이 이 이야기, '게으른 아들이 키운 참깨나무'가 생각나더라고요. 별 관련이 없을 수도 있지만 워낙 단위가 달라서 말이에요. 어떻게 하면 그렇게 크게 놀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했나 봐요. 저는 MBTI가 INFJ인데요, MBTI별 부자 될 가능성이 큰 순위를 보니 하안~ 참 저~ 아래에 있더라고요. '티끌 모아 티끌'이래요. 매사 진지한데다가 배포도 크지 못해서 막 지르는 것도 할 줄 모르고, 통 크게 투자할 줄도 모르고, 티끌이나 깨작거리는 게지요. 그러니 그렇게 통 크게 한국 연예계를 쥐락펴락 하는 분들 이야기를 보다 보니 이런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나 봐요. 배짱 좋게 자기 능력을 세상에 펼쳐 보인 '게으른 아들' 이야기 들어 보실래요?




워떤 사람이 참! 즤 아버지는 죽구 즤 어머니하구 사는디, 이 사람이 어찌나 게으른지 아랫목에서 밥 먹구 윗목에 가서 똥 누네, 응! 별수웂이. 이런 자식이니 그 어머니가 속이 터져서, 

“야야. 이 아래 누구는 응! 누구는 나무두 하구 돈벌이두 허는디 너는 먹구 똥만 싸구 앉았냐!"

"아, 그래 뭐 할 게 있어야지유. 그러먼 곡괭이나 하나 얻어 와유. 밭을 일굴게유.”   

“그럼 그렇게 해라.”   

어머니가 곡괭이를 얻어다 줬네, 허허허― 그러니 그 아들이 참, 밭을 하나 일궜어. 어머니가,

"그 밭 갈아서 뭐 할래?" 그러니께,

"참깨나 좀 심어볼까요." 하는 거야.

그래서 어머니가 참깨 한 종발을 갖다 줬는디, 그걸 한 구덩이에 다 때려 붓구서 덮어 놨어. 농사에는 완전 쑥맥인 거요. 참깨를 그냥 한 구덩이에다가 소복하게 쏟아 부었단 말여. 

근데 그게 싹이 터서 나올 때쯤에 아들이 가서 보더니 다 뽑아 내버리고 하나만 남겨 놓는 거여. 그러고는 거기다가 오며가며 오줌을 싸고, 거름을 막 져다 넣고 그러더니만 그게 큰 나무처럼 막 자라는 거여. 뭐 얼마나 크게 자라나던지 나무가 막 벌어지는 게 참 굉장해. 

그러니까 아들이 이번엔 도끼를 얻어 오라고 그러는 거여. 

"아, 깨농사 짓는 데 도끼는 또 어디다 쓰려고?"

"아뉴. 깨나무가 하두 커서 도끼로 베어야겄슈.”   

그래서 도끼를 얻어다 줬지. 그래서 도끼로 깨나무를 베어다가 털었더니 ―이게 다 그짓말여― 털었는디 한 댓 말 되더랴. 그래, 이 놈을 갖다가 기름을 짰네. 그랬더니 한 동이 가득 기름이 차더랴. 그래 한 동이 기름을 짜 놨는데, 담벼락에 쥐가 한 마리 지나가다가 그 기름 동이에 빠져 버린 거여. 쥐가 기름 동이 안에서 버둥거리다가 좌우간 기름을 다 처먹고는 살이 쪄서 들어 있는 거야.

이 아들이 그 쥐를 잡으려고 하면 톡 빠지고, 쥐려고 하면 톡 삐져 나가고 해서 아들이,

"에이, 그놈. 이거 갖다 팔아야 겠다."

하고는 동이째 들고 장에 갔어. 어떤 사람이 관심을 보이길래 이 아들이, 

"이게 보통 쥐가 아니니까 사가시오."

그랬더니 그 사람이 뭘 먹여 키웠냐고 그래. 그래서 기름 한 동이 먹여서 키운 쥐라고, 기름도 그냥 기름 아니고 진짜 참기름이라고. 그랬더니 그 사람이 돈을 많이 주고 사갔어. 돈을 엄청 받았어.

기름 쥐를 사간 사람은 쥐를 물에 담갔다 빼내면 기름이 한 병씩 생기니까 그걸 또 갖다 팔아서 꽤 괜찮게 돈을 벌었어. 그래서 그 사람두 부자 되구 이 사람두 부자 되구 그락하더랴.

                                                -[한국구비문학대계] 4-2, 351-353면, 구즉면 설화16, 게으른 놈도 한몫




늘 그렇듯, 구연자료를 거의 그대로 옮기기만 했어요. 좀 뜻이 안 통할 부분만 살짝 윤색하는 정도랍니다.

어제 글에 게으른 놈 이야기를 했는데요, 옛이야기에서 게으른 놈을 이르는 상투적인 표현이, '아랫목에서 밥 먹고 윗 목에서 똥 누는 놈'이라는 게 있답니다. 옛날식 구들장이 깔린 방의 구조를 잘 모르는 분들은 무슨 말인가 싶기도 하겠지만, 아궁이 때면 아궁이와 바로 연결되는 부분은 장판이 탈 정도로 뜨겁지만, 그 열기가 미치지 못하는 방의 위쪽은 한겨울에는 걸레가 얼어 있을 정도로 온도차가 크답니다. 그걸 아랫목, 윗목, 그렇게 부르는데요, 그니까 요새 식으로 말하자면, 이 아들은 하루 온종일 자기 침대 밖을 벗어나지 않는 거예요. 화장실 가는 것도 귀찮고 힘들어서 환자용 용변기를 갖다 놓고 사는 사람이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그것도 표면적인 서술일 뿐이고, 이 이야기에서 얘기하는 '게으른' 것은, '남들처럼' 세상이 정해 놓은 길대로 차근차근 성취를 이루어나가는 그런 종류의 인간이 되지 못하고, 그렇게 '성실한' 사람들이 보기엔 베짱이처럼 자기 세상에 갇혀서 자기 즐거운 대로만 사는 놈을 칭하기도 하는 거예요. 옛날 어르신들은 노래하고 춤추는 건 일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잖아요? 방구석에 틀어박혀 자기 생각만 해서는 이 세상에서 살아날 수 없다고 여겼지요. 하지만 그들은 농사를 지어도 남들처럼 짓지 않는 거예요. 어머니가 닥달하니까 뭐라도 해보겠다고 깨를 심고 가꾸는데, '남들처럼' 줄 맞춰 제대로 심는 것도 아니고 한 구덩이에 때려 부어 놓고, 그 중에 잘 된 싹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는 싹 다 뽑아 버렸어요. 그러곤 그 될 성부른 한 놈만 거름을 쏟아부어가며 키우는 거죠. 


그 뒷이야기가 재밌지요? 그렇게 나무로 키워낸 참깨에서 기름을 짰더니 한 동이 가득 기름이 생기고, 근데 거기에 쥐가 빠져서는 그걸 혼자 다 먹어 버리고, 그걸 팔았더니 또 사가는 사람이 있고, 그걸 사간 사람도 쥐에서 기름을 빼다가 제법 괜찮게 돈벌이를 했대요.


구연자도 다 거짓말이라고 할 정도로 허황된 개뻥이기도 하지만, 분명 이런 식으로 작동한 어떤 성공 스토리도 있는 법이라서요. 오히려 현대사회에서 그런 게 더 가능하지 않나 싶네요. 투자 가치가 있는 하나에만 온전히 집중하는 것, 그 바탕에서 그 투자한 몫을 모조리 흡수해 버리는 또 다른 성과물?이 나타나고, 그 덕에 엄청난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는 거지요. 그걸 사간 사람도 재미 좀 봤다는 결말이 오히려 흥미롭습니다. 허황됨을 경계하는 이야기라면 그 기름 쥐 사간 사람은 쫄딱 망해야 맞는 것 같잖아요? 하지만 이 이야기는 그렇게 끝나지 않아요. 


내가 가진, 투자할 만한 자본은 무엇이 있을까요. 이때 자본이란, 돈만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만 남겨서 거름 쏟아 부으며 집중해서 키울 만한 내가 가진 자원. 위의 게으른 아들 이야기는, 그게 남들 기준에서는 찾아지는 게 아님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참깨가 '잭과 콩나무'의 콩나무처럼 하늘을 찌를 듯 커나간 장면을 떠올려 보세요. 누구든 이렇게 키울 무언가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고 믿어볼까요. 긍정심리학적 정신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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