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길 위에서 건져올린 여행문학-길 위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깃든다
조송희 작가는 마흔아홉에 첫 해외여행을 떠났다. 그녀는 천둥소리와도 같고, 강신무(降神舞)와도 같은 내면의 소리를 들으면서 열병처럼 여행에 빠졌다고 고백한다. 그렇게 갑자기 불어 닥친 여행 바람에 온 몸과 마음을 내어 답을 했다. 그렇게 여행의 부름을 받는 동안 상처가 났던 자리에는 새 살이 돋았고, 고통과 환희가 한 몸이 되었다. 여행에서 만난 모든 순간과 사람들은 선물이 되었고, 인생이 바뀌었다. 내면은 다시 태어났다.
마흔아홉, 평범했던 중년 여성이 떠났던 첫 해외여행. 바다 건너 바이칼 호수의 얼음을 깨고 빗장처럼 굳게 잠겨있던 내면은 사정없이 쩍 갈라졌고, 길 위에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한다. 그렇게 통곡 속에서 그녀는 아름다운 내면의 힘을 가진 여행생활자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중년 여성이 혼자 여행을 떠났다면, 당신은 무엇을 상상하게 되는가?
불행히도 나는 오십이라는 나이에도 아직 온전히 혼자였던 여행을 해 본 적이 없다. 심각했던 부부싸움 끝에 혼자 떠났던 여수 여행이 전부다. 그날 나는 장거리 고속버스를 탔고, 내내 시끄러웠던 내 위장과 마음은 여수에 도착하자마자 뒤집어졌다. 어지럼증을 느꼈고, 진땀을 흘리며 구토를 했다.
혼자 걷고, 혼자 느끼고,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해야 하는 ‘혼자 여행’이 처음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누군가에게 말을 걸었고, 집에 두고 온 사람들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혼잣말과 상상 속에는 늘 누군가와 함께하는 장면이 등장했고, 철저히 혼자되지 못하는 나약함을 스스로 느껴야만 했다. 여행 내내 나는 계속 누군가에게 도망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밤이 깊어졌다. 아뿔싸! 이제 나는 집으로 갈지, 하룻밤을 묵을 것인지 중대 결정을 해야만 한다. 그런데 낯선 여행지에서 숙박 장소를 잡는 일이 이리 힘든 일이 될 줄이야. 나는 결국 여관 문 앞에서 좌절했고, KTX역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다행히 서울로 돌아가는 기차가 있었고, 나는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피곤에 지친 몸과 마음으로 비몽사몽 집으로 돌아왔다. 어수선한 내 마음을 진정시키고 받아줄 곳은 그래도 집 밖에 없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쓰러지듯 쏟아내리는 새벽잠을 잤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한 번도 혼자서 여행을 떠나본 적이 없었다. 누군가에 의지해서 여행을 해왔고, 함께 떠났던 여행이 내 여행의 전부였다. 철저히 혼자 판단하고 생각하고 움직여야 하는 '혼자 여행'은 아직까지도 나에게는 두렵고 낯선 단어이다.
하지만, 마음만은 예전만큼 조급하지 않다.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또 어떨까’ 여유가 생겼다고 해야 하나. 무조건 돌파해보고 싶은 배짱이 좀 자라났다. 나이가 좀 들어 좋은 점이 있다면 예전만큼 서두르지 않게 되었다는 것,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자기 위로와 만족이 커졌다는 것이다.
이 책은 나에게 ‘아직도 혼자 떠나본 적이 없니?’, ‘그렇다면 모든 걸 내려놓고 혼자 떠나 보지 그래?’ 하면서 여행을 부추긴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온갖 편견과 허위의식을 걷어내고, 순수한 내면의 힘을 믿고, 용기 내서 길을 떠나라고 나지막이 건네는 용기와 위로를 담고 있는 편지글이다. 여행지 하나하나에 대한 묘사는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듯 하고, 여행과 한 몸이 되어 여행이 이끄는 대로 가다보면, 어느덧 나도 모르게 작가와 한 배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공감이 간다.
이 책은 ‘혼자 떠날 때가 되면 무작정 떠나라’ 라며 유혹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바람이 간절하면 결국 그곳에 있게 된다는 어느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늘 떠남을 상상한다. 떠나야만 비로소 내가 있던 자리가 보인다.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나는 진짜 여행이 기다리고 있다.
‘길 위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깃든다’.
겨울의 심장 바이칼, 경계를 넘는 시간 안나푸르나, 길 위에서 산티아고,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에게 깃든다 북인도, 네 멋대로 가라 프라하, 퓌센, 쾨니히스제, 별처럼 들풀처럼 강물처럼 몽골,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사랑, 그 사소함에 대하여 아오모리
당신은 어디로 깃들고 싶은가?
코로나19로 온 세계가 여행 감옥에 갇혀버린 이 시국에도, 이 책은 우리에게 여행을 상상하며 꿈꾸며 간절하게 기다리도록 만든다. 누구에게나 자기에게 맞는 여행지가 있듯 그렇게 자연스럽게 끌리는 대로 여행을 하게 될 날을 꿈꾸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