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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B Jul 30. 2021

다시, 이혼을 떠올리다

이혼의 계절을 돌고 돌아서

해마다 이때가 돌아오면 이혼을 떠올린다. 우연이지만, 7년 전 이혼의 파고를 넘었던 그때와 지금 닮은 모양을 하고 있는 게 하나 있다. 그의 실직이다. 집에서 그와 둘이서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혼하자고 하는 사람과 함께 밥을 먹고 얼굴을 마주치는 일은 지옥 그 이상이었다. 나는 그와 함께 밥을 먹는 일을 멈췄다. 그에게 밥상을 차려 주는 일은 결코 없었다. 이혼 대첩 중에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찬 몇 개를 꺼내 스스로 밥상을 차려 먹었다. 나는 그 꼴이 보기 싫어 그와 마주치지 않도록 시간을 조정하거나 밖으로 나돌았다.      


그 시절 많은 ‘시작’이 있었다. 대안초등학교에 다니던 큰 딸이 다시 집 근처 초등학교로 옮겼고, 둘째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었다. 변화가 낯설고 두려웠을 두 아이를 건사하며 이혼을 준비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이혼에 대해 이야기하는 중에는 무슨 일을 해도 힘들었다. 빨래를 하는 일도 밥을 차리는 것도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는 일도 나 혼자 거리를 걷는 일도 둘째 딸 초등학교 입학 준비물을 챙기는 것도 모두 다 겨우겨우 억지로 마지못해 했다.      


그런데도 나는 떨어져 버린 끈을 붙들려고 무척 애를 썼었다. 보기도 싫다던 그를 쫓아 옥상에 올랐다. 분위기가 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런데 바깥공기마저도 우리 둘 사이를 어색하게 할 뿐이었다. 신뢰관계가 깨진 이상 그 무엇을 해도 힘들었다. 원하지 않는 이혼을 이야기하게 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이혼을 이야기하며 일상을 챙기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는 7년 전에도 지금도 실직상태다. 일명 백수. 아빠가 집에 있는 날이 늘어날수록 아이들은 집에 친구를 데려오는 일도 집에서 뭔가를 하는 일도 다 힘든 일이 되어버렸다. 그때 나는 초등학교 입학한 작은 딸에게 받아쓰기 과제를 봐주기도 했다.      


그때 멈췄어야 했는데, 억지로 하다 보니 안 해도 될 이야기를 마구 끄집어내서 싸움의 원료로 소진했던 기억이 있다. 아이들에게는 정말 큰 상처를 줬다. 늦었지만 7년 전 그때의 아이들에게 사과를 해야겠다.     


서은아, 미안해.

서은이한테 제대로 사과를 한 적이 없네. 초등 5학년 대안학교에서 동네초등학교로 옮기고 나서 많은 변화가 있었지. 학교를 정리하고 나온다고 했을 때도, 서은이 마음에 대해 더 많이 물어보고 이야기 나눴어야 했는데, 너무 성급하게 정리를 하게 돼서 미안하다. 그래도 힘들 때 대안학교 다녔던 걸 추억처럼 떠올릴 수 있어서 좋다. 너에게도 힘이 되었던 시절이었기를 바랄 뿐이야.

    

연수야, 미안해.

받아쓰기 악몽, 엄마와 함께 공부하는 일이 전혀 기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미안해. 그래도 엄마 옆에 있어준 연수야. 너무 고마워. 너를 많이 안아주지 못해 미안하다. 지금이라도 사랑한다고 더 많이 안아주겠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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