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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B Jul 30. 2021

이혼은 날벼락처럼

가족, 깨질 것 같은 불안함을 안고

나는 아직도 그날을 또렷이 기억한다. 불청객 황사가 하늘을 뒤덮고 코를 감싸게 만들 정도로 불길한 기운이 밤늦도록 이어졌다. 띠리리릭 철커덕. 짙은 갈색 현관문이 열렸다.


그가 들어왔다. 기운이 하나도 없다. 구리에서 광명까지 왕복 4시간. 퇴근길에 지칠 대로 지친 표정이다. 서로에게 인사를 건넨 지 족히 보름은 된 것 같다. 요즘 들어 말수가 더 적어졌다. 입에 곰팡이가 낄 정도다. 느릿느릿 어눌해도 입 꼬리가 살짝 들려져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그의 옅은 미소를 볼 수 없다는 것. 나는 그게 가장 큰 불만이다. 세상 십자가 혼자 다 지고 가는 저 표정은 도대체 뭐지?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아 조마조마하다. 살얼음판 위를 걷는다. 그날 이후 긴장할 때면 어김없이 가슴 한 구석에서 쿵쿵쿵, 귓속에서 웅웅웅 북소리가 올라오곤 한다.  

 

왜 하필 4월이냐고. 살랑거리는 꽃향기가 사방을 뒤덮고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어수선한 축제의 봄날. 그날 이후 최악의 봄날, 잔인한 암흑의 4월이 내 생일을 비켜가고 있었다. 왜지? 뭐가 문제지? 장거리 출퇴근길이 너무 힘든가? 나한테 무슨 말 못 할 사정이라도 있는 건가? 그래도 답답하게 이게 뭐지. 속 터진다. 말이라도 한마디라도 해줬으면~무게 잡고 한마디를 안 하네? 저 경멸의 눈초리는 뭐고 앙 다문 입은 왜 그리 밉상이람. 축하받고 싶은 내 생일을 하루 앞두고 나는 그렇게 외로운 마음을 SNS 페이스북에 끄적대고 있었다. 페이스북에는 그래도 내 마음을 읽어줄 친구들이 있고, 슬며시 ‘좋아요’를 눌러주는 내 첫사랑도 있었다. 그렇게라도 마음을 확인하는 일은 그래도 설레는 일과 중 하나가 되었다.        


방 안에서 통 나오지 않고 애니팡 게임을 해대는 그를 가만히 지켜보는 일은 다혈질인 내게는 너무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당장 달려가 악다구니를 쳤다.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나도 뭐가 불만인지 알아야겠다 싶어 덤벼들었다. 그는 이런 나를 너무도 잘 알아서 내가 그 방으로 들어올 거라고 예상이나 한 듯 말을 꺼냈다. 부부싸움 끝에 이혼 카드를 꺼내 든 건 언제나 내가 먼저였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그가 이젠 너무 지친다며 우리 관계가 더 이상 어떤 변화도 없을 거라며 절망적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혼’이라는 단어가 그의 입에서 처음 나왔다.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이 올라왔다. 너무 큰 배신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시부모님의 반대를 설득해가며 눈물로 읍소하며 결혼 승낙을 얻어낸 그였다. 결혼 12년 차 그가 이혼을 하자고 아주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중이다. 게다가 등기소에서 이혼 서류양식까지 가져오는 준비성까지 갖추다니 연속타로 충격을 먹은 나는 부들부들 손이 떨려왔다. 이건 정말 장난이 아니다. 그가 진심으로 이혼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었다. 억울함에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서류를 빡빡 찢어 날려버렸다. 화를 참지 못했다. 2차로 옮겨간 호프집에서 남편은 진짜 이혼하고 싶다며 언성을 높인다. 나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소리 높여 내지르는 내 목소리가 싫어서인가? 그래도 그게 이혼 사유가 되나? 나도 이혼하자고 부부싸움 끝에 이야기해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도장까지 다 찍은 서류를 들이밀다니. 아직 남편과 못해 본 일들이 많은데. 그 길로 나는 도서관 옆 숲길을 걷는다. 슬픔이 차오른다. 야트막한 산 정상에서 혼자 울었다. 사람들은 모를 거야. 내가 이렇게 버림받은 여자라는 꼬리표가 남는 이혼. 이혼 앞에 서있는 중년 여자의 가슴앓이를 누가 알기라도 할까 봐 두려웠다.     


세상이 빙빙 돌고 내 마음도 빙빙빙 갈 곳을 잃었다. 머릿속은 온통 이게 무슨 일이지를 되뇌며 나와 다른 세상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유리벽을 치고 사는 것 같다. 나만 딴 세상에서 외롭게 버려진 느낌. 햇살이 밝아서 더 뭉그러지는 날들에 나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아스팔트 위를 터벅터벅 걷고 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까? 틀어진 관계를 바로잡는 일 가능하긴 할까? 이유라도 알았으면. 알길 없는 그의 속을 수 만 번 들락날락거렸다. 무엇보다 가족이 깨질 것 같은 두려움은 어떠한 어려움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남들은 다 평범하게 평안하게 잘 사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렇게 불안에 떨어야 할까 억울한 생각에 길거리 지나치는 사람들 눈조차 마주치지 못했다.      


문득 한 선배가 생각났다. 추진력 끝내주는 혜안 언니. 뒤늦게 시작한 어린이집 일에 해외여행까지 무척이나 바쁘게 보내고 있는 언니는 이런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언니는 햇별 아래서 많이 걸으라고 했다. 금쪽같은 그의 한마디를 놓치지 말고 잘 들으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는 숨겨진 비책처럼 살레지오에 가보라고 이야기했다. 어려움이라곤 하나 없이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을 것만 같던 언니에게도 이런 어려움이 있었다니, 갑자기 세상에 혼자 버려진 것 같던 나에게도 용기가 생겨났다. 당장 언니가 만나보라던 김희은 수녀님을 만나러 가야지 다짐을 했다.      


살레지오 수녀원 입구 활짝 핀 벚꽃들이 말없이 나를 반겨준다. 그렇게 시작된 수녀회에서 김희은 수녀님과의 만남. 그냥 넋 놓고 안겨서 울고 싶었다. 나에겐 지금 아빠도 엄마도 다 없다. 수녀님이 나에게 유일한 엄마고 아빠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수녀님은 환하게 웃으며 참가자들을 하나하나 안아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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