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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B Aug 03. 2021

가족상담, 첫 단추를 끼우다

질서를 보듬는 엄마의 힘을 믿어!

남편의 이혼선언 후 뾰족한 해결책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나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동아줄을 기다리듯 상담을 기다렸다. 살레시오 김희은 수녀님도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지만, 교육과 상담만이 사람을 바꿀 수 있다고 용기를 주셨다. 내게 상담은 틀어진 가족관계를 돌아볼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나와 남편은 다면적 인성 검사(MMPI)를 했고, 가족들 모두 MBTI 성격유형검사를 했다. 큰 애와 둘째는 다행히 내가 다니던 방과 후 학교에서 미술치료 선생님과 그림을 통한 심리 검사를 정기적으로 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다행이었던 것은 가족들 모두 상담과 검사를 모두들 적극적으로 임해줬다는 것이다.      


남편에게 상담과 검사를 받으러 가자고 이야기하는 것이 조금은 신경 쓰였다. 가자고 하면 같이 움직여 줄지 노심초사했었다. 안 간다고 버티면 자존심도 상하고 난감했을 텐데, 두어 차례 얘기한 끝에 그는 마지못해 끌려가듯 검사를 수용했다. 천만다행이었다. 그래도 말만 해도 서로 못 잡아먹어서 원수처럼 지내던 우리 둘 사이에 제3의 객관적인 기관이 끼어들 수 있었던 것은 너무 다행스러웠다.      


철옹성처럼 움직이지 않을 것만 같았던 남편도 아이들과 함께라서 책임감을 느껴 따라나섰던 것 같다. 가족들 모두 살레시오 상담실을 찾았던 것은 신의 한 수였다. 함께 가는 버스 안에서 엄마, 아빠가 긴장을 한 터라, 아이들이 살짝 눈치를 보고 어리둥절해했지만, 12살, 8살 아직 어린 두 딸들도 신기한 구경 하듯 잘 따라와 주었다. 살레시오에는 검사를 하려는 엄마, 아빠, 자녀들로 붐볐다. 수녀님들 안내에 따라 어른들과 아이로 나눠져서 MBTI 검사를 했다.      


MMPI 검사 결과 나와 남편 모두 불안, 우울, 회피 요소가 평균보다 심하게 나왔다. 이 당시에 남편은 이혼이라는 카드를 나에게 내밀며 현실을 회피하며 도망가고 있었고, 나는 남편의 갑작스러운 이혼 제안을 인정할 수 없어 늘 불안했었다.      


가장 흥미로운 검사 결과는 가족 MBTI 검사 결과였다. 검사를 다 끝내고 나와 보니, 남편의 성격유형이 ISFP로 나왔는데, ISFP 성격유형은 안에 상처를 쌓아두고 상처 받기 쉬운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 유형이다. 나와 두 딸 모두 호기심이 많고 활력이 넘치는 자유로운 사고의 성격 유형인 ENFP로 나왔다.      


의외의 검사 결과를 받아 들고 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우리 집안 세 여자 가운데 외딴섬처럼 존재했을 남편이라는 자리가 무척 외로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봤다. 개인적인 시간을 갖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남편에게, 내가 화를 내면서 다가가는 일만은 절대 해서는 안 되겠다는 자각의 시간도 이어졌다.

       

큰딸, 작은딸, 남편과 나 어렵게 함께 모인 그 공간에서 살레시오 김희은 수녀님이 웃으면서 다가왔다.      


여기 이 가족은 모두 성격유형에 ‘P’가 있는 ‘피바다’네요.
P지수가 높다는 것은 가족의 질서나 중심이 잘 잡혀있지 않다는 거예요.
이런 피바다 속에서도 그나마 중심을 잡고 정리하고 계획하려는 노력이
엄마에게 아직 남아있다는 건 정말 다행이에요.      


엄마의 노력이 가족을 바꿀 수 있다는 자각에 나는 또 코끝이 찡해졌다.      


‘그래, 난 엄마야. 우리 가족의 중심이 내 어깨에 놓여있구나......'     


가족과 함께 상담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나는 수첩에 적힌 문구를 계속 중얼거렸다.      


나라고 하는 존재를 보다 깊이 이해하면 할수록 타인들에 대한 내 오해가 풀리게 된다. 내가 나로부터 자유로워지면 남을 구속하거나 억압하는 일이 사라지게 된다. 내가 평화로워지면 남을 평화롭게 하고, 내 안에 사랑이 넘치면 저절로 들꽃 한 송이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그림 1) 8살 둘째 딸에게 아빠의 자리는 조그맣게 자리를 잡고 있다. 밥 먹으러 들어오는 아빠를 위해 문도 만들어주었다. 팬티를 공처럼 던져 슛골인하는 장난기 많은 아빠로 기억하고 아빠의 자리를 만들어두었다. 맥주는 아빠, 계란 프라이는 엄마, 그림 좋아하는 자신은 연필로 나타냈다. 너무나 사실적인 둘째 딸 마음. 그렇게 라도 표현해주어 고맙다.     


그림 2) 산을 오르는데 아빠 얼굴에 땀이 맺혀 있다. 조금씩 크게 그려지는 아빠의 모습, 관계 개선하느라 힘쓰는 엄마 아빠의 모습이 담겨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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