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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정 Feb 17. 2018

실화가 된 '살인자의 기억법'

서울여자 도쿄여자 #46

서울여자 경희작가님께


김영하 작가의 '살인자의 기억법'이 일본에서도 개봉이 되었습니다. 저는 소설만 읽었을뿐, 영화는 보지 않았어요. 일본에선 시적인 영상과 소름끼칠만큼 뛰어난 연기라며 호평이 자자합니다.


일본에서 실제로 있던 치매증을 앓는 살인자의 이야기를 전해드릴까 합니다. 

작년 11월 한 70세 할머니가 연쇄살인범으로 사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할머니는 나이가 많고 돈이 많은 남성과 잇달아 결혼해 상대를 죽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3건의 살해죄, 1건의 강도살인미수죄로 기소가 되었고, 사형이 내려졌습니다. 


처음엔 용의를 강력히 부인했던 할머니가 갑자기 모든 범행을 자백하기 시작합니다. 치매가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치매로 인한 자백이어서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으나 판사는 그 자백을 믿기로 합니다. 더불어 재판내내 오만한 태도를 부리는 그녀에게 판사는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며 최고형을 내린 것입니다. 치매 강도가 심해지면 화장실도 못 간다는데,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아서 최고형을 받은 그녀를 어디까지 두둔해야 할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범행 후에 치매에 걸린 이들을 앞으로 어떻게 수용하고 어떻게 해결할지는 최고령의 나라 일본의 크나큰 고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치매에 걸려 한 자백이 사실이 아니라면? 재판소에서 보인 태도가 치매로 인한 것이라면? 그런 의혹은 언제나 샘솟기 마련입니다.


사람들은 그녀를 '꽃뱀' 또는 '후처업의 여자'라고 불렀습니다. 

살인행위는 용서할 수 없지만, 저는 나이 들고 돈 없는 저 할머니의 인생을 조금쯤 생각해 봅니다. 나이든 여성이 일본에서 살아갈 방법은 많지 않습니다. 일단 마흔이 넘으면 학벌과 경력과 관계없이 정사원의 길은 포기해야 합니다. 나이든 여성을 고용하는 직장은 서비스업 뿐입니다. 임금은 터무니없이 낮습니다. 하루 종일 서서 웃으며 일합니다. 혹여 몸이라도 아프면, 개인주의인 일본 사회에선 집 밖으로 나앉을 판입니다.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한다고 누구나가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일본인들 중에는 그런 도움을 받는 것을 무척이나 수치스럽게 여기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남겨진 길은, 가장 손쉽게 편하게 살 수 있는 길은 아내를 여의거나 이혼한 나이든 돈많은 남자와 결혼하는 것입니다. 범인인 할머니에게도 그게 유일한 방법이 아니었을까요? 그런데 결혼을 하고보니, 남편이 젊은여자와 바람을 피웁니다. 남편들에게 필요한 것은 잠자리를 같이 해주고 청소와 빨래를 도맡아주는 도우미였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내가 된 여성에게 가사도우미와 성적도우미를 원하는 남성을 부르는 특별한 단어는 없습니다. 돈을 보고 결혼한 여성을 '후처업 여자'라고는 불러도 말이죠.


할머니는 재판에서 남편들이 자신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증언합니다. 젊은여자에게 수천만엔씩 가져다 주면서 생활비를 아끼라는 남편에게 그녀는 배신감과 분노를 동시에 느낍니다. 더불어 자신이 착취 당하는 느낌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저는 살인자의 편을 들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여성들이 나이가 들어 꿈을 안고 한 재혼에서 여전히 이전 결혼과 똑같은 딜레머를 느끼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 치매 할머니 살인 사건은 나이든 여성의 경제적 불안을 현실적으로 전혀 해소하지 못한 일본 사회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더불어 초고령화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치매에 걸린 범죄자를 위한 그 어떠한 장비도 역시나 마련하지 못한 일본의 제도적 부족에도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치매에 걸린 범죄자를 재판소는 어떻게 다루고 어떻게 그 죗값을 받도록 할 수 있을까요? 더불어 어떻게 하면 나이든 여성들이 '후처업'을 자청하지 않고도 자립해서 먹고 살 수 있을까요? 일본정부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은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참고로, 고령노인의 돈을 노린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후처업의 여자>란 작품으로, 주연인 오오타케 시노부는 작년에 일본 영화 아카데미상 우수여우주연상을 받은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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