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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정 Mar 30. 2021

합의없는 아메리칸 드림
영화 <미나리>

아메리칸 드림 VS 신에 대한 열망 VS 할머니의 미나리


 골든 글로브상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고 아카데미 상 후보작에 오른 미나리는 한국에서도 또 일본에서도 절찬상영중이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화면에 찍힌 영상에서 알 수 있듯 1972년에 결혼한 부부는 두 아이를 낳아 병아리 감별사로 근근한 생활을 하고 있다. 영화는 이 네 가족이 자동차로 이사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시골 마을은 고요하고 어디를 봐도 초록으로 가득하고 아이의 볼을 가볍게 만지는 듯한 바람이 솔솔 불어온다. 이 첫 장면만이 이 영화의 평화로운 풍경이다.


 일가가 도착한 곳은 근처에 병원은커녕 마트도 없고 아내의 타향살이의 지주인 교회도 없는 초원이다. 눈 앞의 집을 보고 아내는 경악하다. 그렇다 그녀는 몰랐던 것이다. 남편이 자신과 아이들을 데리고 설마 이런 시골마을을 선택하리라고는, 가족이 미국까지 와서 트레일러 하우스에 살게 될 것이란 사실도. 남편은 아내가 거절할 것을 미리 알았기에 다 숨기고 실행한 것이다.


 농지를 개척해 일확천금을 노려보겠다는 남편 제이콥에게 미국 아칸소의 시골은 꿈과 희망의 땅이지만, 아내 모니카에겐 허리케인이 와도 아이들을 지킬 방편이 없고, 병약한 아들을 데려갈 병원도 없는 깡촌에 불과하다. 게다가 근처에는 알고 지낼만한 한국출신자도 없다. 친구를 만들러 교회에 가보지만 백인들만 가득한 곳에서 “큐트하다”는 말을 들은 모니카는 어딘가 불편하다. 그렇게 병아리 감별사 부부는 병아리 감별과 농삿꾼이라는 두 가지 직업을 가지게 되고, 결국 모니카의 친정엄마가 미국까지 와서 아이들을 보게 되는 것이다. 모니카의 엄마, 그리니까 아이들의 외할머니는 아이들에게 화투를 가르쳐주고, 한국에서 가져온 미나리 씨앗을 물가에 심는다.


 이 가족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절망이다. 농작물은 잘 자라지 않고 자라도 팔 곳이 없으며(남편은 어쩌자고 이리 무계획인가), 모니카의 엄마는 건강 이상을 보인다. 주변에 사는 사람들도 대부분 가난하다. 농사를 도와주는 퇴역군인 폴은 담배를 악마 보듯하며, 주일에는 자기 몸보다 커다란 십자가를 지고 동네를 한 바퀴 도는 엄청난 괴력의 소유자(?)이자, 가난으로 인해 신앙에 푹 빠진 인물이다. 


 농업으로 한 건 올려보겠다는 남편 제이콥의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집착, 아픈 아이를 돌보는 아내 모니카와 가난한 폴의 신에 대한 집착, 그리고 모니카 엄마의 미나리에 대한 애정이, 묘한 삼각관계적 대비를 이루며 뒹굴다가, 결국 미나리의 승리로 끝맺어진다. 미나리는 자연이고, 하늘의 섭리고, 할머니의 애정이다.


 이 영화는 ‘미국에 이민간 한 가족의 치열하고 아름다운 감동적인 이야기’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남편 제이콥의 합의 없는 아메리칸 드림에 얽힌 가족의 이야기이다. 미국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틀림없이 이 작품이 문호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 테네시 윌리엄스의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지옥의 오르페우스>과 맥을 같이 하는데 있다. 광활한 농지, 가난한 노동자, 부조리한 세상을 그려낸 작품들의 연장선상에서 그 문학작품들을 계승하며 더불어 남부 노동계층의 계승 또한 이뤄내고 있다.


 마지막의 극적 장면도 문학적이다. 남편과 헤어지려고 했지만 그 사건 때문에 아내는 남편 곁을 떠나지 못한다. 결국 마룻바닥에서 네 가족이 함께 자는 씬으로 영화는 끝맺어진다. 바닥에서 잠든 가족을 바라보는 외할머니의 불안한 시선도 함께.


 폭력을 휘두르지 않고 바람도 피우지 않고 도박도 하지 않으며 농사에 전념하는 남편 제이콥은 과연 좋은 남편, 좋은 아빠라고 할 수 있을까? 아내에게 이사갈 장소에 대해서, 농업에 드는 비용에 대해서 입을 싹 다문 남편에게 아내는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나의 꿈은 그게 얼마나 허황되었든 이뤄야한다는 굳은 신념을 가진 남자는 아내의 꿈은커녕 아내와 사이좋게 지내는데 대한 노력은 금세 접어둔다. 떠나가려고 작정했는데 일어난 사고로 인해, 결국 또다시 발목 잡힌 그녀의 심정을 못 본 척 할 수만은 없게 된다.


 그래서 이 영화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꾼 남편, 아버지, 아들 또는 사위에게 헌신한 할머니로 대표되는 수많은 여성들에 대한 오마주이기를 바란다. 원더풀 미나리! 원더풀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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