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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최고의 히트 개그, 바보를 연기하다

너와나의 소녀시대(14)

by 김민정

1988년 한겨례 신문은 남자 연예인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타로 최불암, 조용필, 심형래를, 여자 연예인으로는 김혜자, 주현미, 김미화를 꼽았다. 최불암, 조용필과 같은 라인에 서 있던 개그맨 심형래를 우리는 ‘영구’ 캐릭터로 기억한다. 영화 <여로>의 영구를 채용한 이 캐릭터는 ‘덜 떨어진’ 또는 ‘모자란’이란 부연 설명이 붙어있다. 더벅머리에 윗니가 하나 빠진, 한복을 입은 청년이 바로 영구다. 영구는 부모님 집에 살며 서당에 다닌다는 설정으로 아내와 아이도 있다. 조금 ‘모자란’ 구석이 있지만 정의감도 있고 재치가 넘친다. 어른으로서 어른들과 당당하게 대화를 나눈다. 하지만 자잘한 실수가 끊이질 않고 어른들로부터 손찌검을 받기도 하는데, 당시에는 이런 손찌검이 꽁트에 자주 등장했고,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준다고 지적하는 신문도 있었다.


그 시절 모르는 사람이 없던 심형래의 <영구야 영구야>. 반려견의 이름은 땡칠이, 취미는 깨구락지 잡기며, 통성명을 성명통이라고 부르고, 담임교사가 “영구”라고 부르면 “네”하고 대답하는 대신 “영구 없다!”하며 책상 밑으로 숨는다. “(고려 충신)정몽주를 죽인 사람이 누구냐?”라는 교사의 질문에 영구는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저는 그 사람이랑 관계 없는 사람이에요”라고 부정한다. 말을 안 듣는 아이에게 교사가 “내일 어머니 오시라고 해”라고 하면 영구는 바로 “선생님, 어머니만 부르면 아버지가 얼마나 섭섭하시겠어요. 두 내외 다 오시라고 하세요”라고 제멋대로 끼어든다. 영구는 평범한(?) 사람들보다 재치가 넘친다. 이런 재치있는 대사를 왜 꼭 바보 캐릭터가 맡을 필요가 있었을까?


굳이 시대적 상황을 불러오자면, 80년대는 쉽게 말하지 못하는 시대였다,고 풀이할 수 있다. 바른 말을 하는 것도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입 밖으로 내뱉는 것도 어려웠다. 사회적 지위가 낮을 수록 그러했을 것이다. 지금도 다르지 않지만 그 시절에는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른에게 엉뚱하지만 자신의 지론을 펼치는 역할을 영구에게 맡겼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구 역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심형래식 코미디에 사람들은 배꼽 잡고 웃었다. 영구는 말할 수 없었던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로 해석할 수 있다. 자신의 속내를 드러냈다간 불이익을 얻을 지도 모를 시대에, 바보라는 가면을 쓰고 말을 더듬어가며 어른들과 어깨를 겨누고 할 말을 다 하는 캐릭터가 통괘함을 안겨 주었을 것이다. 그는 <영구야 영구야> 코너 이외에 <변방의 북소리>에서도 바보 역을 연기했다. 바보 연기는 ‘영구’이후 연극배우 이창훈이 ‘맹구’라는 역으로 배턴을 이어받았으나 영구도 맹구도 오래 가지 못했다.


그 시절 우리는 영구를 ‘바보’라고 불렀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바보’를 찾으면 ‘지능이 부족하여 정상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적혀있다. 어떻게 봐도 차별적인 단어다. ‘낮잡아 이르는 말’인 것이다. 그렇다면 ‘평범하게 이르는 말’은 있을까? 영구의 모습은 웃어넘겨도 좋은 것일까? 도대체 어디가 웃기다는 것일까? 영구라는 캐릭터가 가진 엉뚱하면서 정곡을 찌르는 말들이 재치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모자란’이란 설명이 붙은 캐릭터 그 자체는 쉽게 웃어넘길 수 없는 것이었다.


영구와 맹구, 소위 ‘바보’ 캐릭터는 개그로 소화되어도 되는 걸까? 영구와 맹구의 캐릭터에 감춰진 해학에서 그칠 일이 아니라, 미디어는 영구와 맹구를 웃어도 되는 역으로, 시청률을 따내기 위해 도구로 활용했고, 사회가 그들의 특성과 능력에 무지하며 조금더 신중하게 다가갈 기회를 지속적으로 무시했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영구와 맹구를 코미디 소재로 삼아도 된다고 생각했기에 영구를 소재로 한 다양한 코너가 생기고 차후 영화화까지 되었던 것이다.


김지혜 작가는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통해 영구와 맹구에 대한 감정을 이렇게 적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오늘날 중요한 변화의 하나는, 이런 개그가 “웃기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잘못하면 그냥 웃고 넘길 일을 지나치게 예민하게 받아들여 확대해석한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고 영구에 맹구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어려움에 대해 토로한 후, “누군가를 비하하는 유머가 재미있는 이유는 그 대상보다 자신이 우월해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라고 명확하게 지적했다.


‘조금 덜 떨어진’으로 묘사된 영구와 맹구의 캐릭터가 미디어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어떤 식으로 등장하든 조금더 신중한 접근성을 필요로 하는 시대가 왔다는 의미다. 더 많은 ‘조금 다른’이 붙은 사람들이 아주 평범한 모습으로 더 많은 작품을 통해 그저 존재하는 시대가 오기를 바랄 뿐이다.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우리는 모두 다 ‘조금 다른’ 사람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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