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의 일상다반사(33)
영화 <빛의 비>(히카리노 아메)
혁명을 하겠다던 젊은이들이 혁명은 안 하고 동지만 죽인 이유는 무엇인가. ‘빛의 비(히카리노 아메)’는 일본 영화의 거장인 다카하시 반메이 감독이 연출한 영화다. 내가 아는 가장 무서운 영화 중 하나이다. 여간한 호러 영화보다 훨씬 더 무섭다. 왜냐하면 인간이 그것도 나와 같은 편인 아군이 나를 적으로 몰아가는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1968 년은 혁명의 해로 불린다. 체 게바라가 볼리비아에서 혁명을 일으키려다 체포되어 죽은 이듬해였다. 68 년, 베를린에서 또 샌프란시스코에서 베트남 전쟁 반대 시위가 대대적으로 열렸고 프랑스에서는 역대 최대 규모의 총파업에 학생들이 동참했다. 그러나 그 열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정부의 진압이 시작되면서 젊은이들을 살아남기 위해 뿔뿔이 흩어지거나 더 과격한 노선을 택했다.
일본의 학생운동은 1960 년에 시작되어 1972 년까지 이어진다. 1960 년 5 월 20 일 일본 국회는 미일안보 동맹을 통과시켰고 반대 운동은 점점 열기를 띈다. 6 월 15 일 학생들과 경찰대가 극심한 몸싸움을 하던 중, 도쿄대생 간바 미치코가 사망했다.
이 간바의 죽음 이후 학생운동은 더욱 치열해졌고, 다양한 분파들이 생겼으며 그들은 진압대라는 권력과 싸우기 위해 무장투쟁까지 결심하게 된다. 그리하여 1972 년 아사마 산장에서 인질극을 벌이게 된다. 이 인질극으로 경찰 2 명, 민간인 1 명이 사망했고, 27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아사마 산장 사건’은 경찰에 지명수배된 학생들 5 명이 산을 떠돌다가 아사마 산장에 들어가 관리인 여성을 인질로 잡아 9 일간 벌인 인질극으로, 텔레비전에서 생중계되어 시청률 50%를 낸 여러모로 엄청난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 아사마 산장의 5 명의 학생들이 체포되기까지, 그 뒤에 더 큰 사건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영화는 아사마 산장 사건을 소재로, 학생들이 어떤 경위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아사마 산장까지 가게 되었나를 그리고 있다.
학교 비리 투쟁으로 학교를 점거한 학생들은 진압대와의 싸움으로 점점 학교 밖으로 몰리게 되었고, 권력과 싸워 이기려면 무기가 필요하다며 경찰서를 털어 총을 손에 넣는다. 이렇게 과격해진 학생들의 대부분은 지명수배자가 되어 일상생활이 곤란해진다. 누군가는 혁명을 하겠다며 비행기를 납치해 북한에 가기도 하고, 어떤 학생들은 중동으로 날아가 중동에서 투쟁에 협력하기도 한다.
일본에 남아 어떤 식으로든 혁명을 하려고 했던 젊은이들은 아무도 오지 않는 산 속에서 집을 지어 지내게 된다. 여러 단체 학생들이 산 속에서 추위에 떨며 단체생활을 하다보니 불편한 게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아무도 산 속 생활이 불편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이제 학생이 아니고 혁명전사였기 때문이다.
혁명전사는 절대로 불평을 말하지 않으며 자기를 위한 생각은 모조리 버려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엔 반드시 자기 비판을 해야 하며, 자기 비판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소카쓰(총괄)이란 이름으로 다른 학생들로부터 비판을 받고 폭행을 당해야 했다. 처음에는 산에서 도망을 친 학생들을 중심으로 하던 총괄이 점점 아주 소소한 일들에 적용되기 시작한다. 속세에 있을 때 남녀관계를 가졌다는 이유로, 산에서 내려갔을 때 음식을 사 먹었다는 이유로 혁명전사로서 부족하다며 폭행을 하고, 죽을 때까지 나무에 묶어둔다. 화장을 했다는 이유로 나중엔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폭행을 일삼는다. 사람들은 아사마 산장 인질극만을 기억하지만 겨우 5 명만 살아남아 아사마 산장에 가기까지 학생들은 겨우 두 달 동안 무려 12 명의 동지를 폭행하고 극한의 날씨에 밖에 두고 나무에 묶어두어 죽음에 이르게 했다.
혁명을 하겠다던 젊은이들이 모여서 혁명은 안 하고, 자기들끼리 치고 박고 서로를 죽이고 있었다니, 이걸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지 사건이 드러난 1972 년의 일본인들도 난해해했고 실은 아직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고 있다.
영화만 봐도 끔찍한데 실제로 거기 있던 젊은이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런데 왜 그들은 다같이 동지들을 폭행하고 그들이 죽을 때까지 구해주지 못했을까. 이 사건을 어떻게 보면 좋을까.
“혁명을 하고 싶었다.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각자 가지고 있는 능력을 100% 발휘하고, 부의 분배가 공평하고 직업 차이는 있어도 상하관계는 없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다툼이 없으니 전쟁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이념을 가지고 시작한 투쟁은 자신과 같은 이념을 가진 동지들을 무참하게 살해한 사건으로 막을 내렸다. 아사마 산장 사건과 그 후로 밝혀진 동지 폭행치사 사건은 일본의 학생운동 자체의 종말을 선언하게 된다. 권력만이 내 편이 아니라 동지조차 내 편이 아닌 상황에서 누가 감히 또 다시 학생운동에 뛰어들 수 있겠는가. 는 순수한 열정으로 산으로 들어간 젊은이들이 아주 사소한 잘못을 꼬투리 잡아 서로를 비난하고 폭행하고 결국 죽이는 모습을 액자형으로 담고 있다.
당시의 상황을 영화로 찍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통해 2000 년대의 젊은이들은 1972 년의 젊은이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에 중점을 뒀다. 왜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왜 비극만 쌓였을까.
주연은 현재 레이와 신센구미 당의 대표인 야마모토 타로다. 카리스카 있는 악역에 적격인 그는 적군파 두목으로 나와 학생들에게 자기 비판을 강요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학생들을 폭력으로 깔아뭉개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연기의 신으로 불리던 야마모토 타로는 동일본 대지진 이후 원전 반대를 외쳤다가 모든 배역을 잃고 결국 현재는 정치가로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혁명의 꿈을 꾸고 있었다. 아직 이 세상에 출현하지 않은 이상적인 세상을 만드는 꿈에 푹 빠져 있었다. 그런 꿈을 꾸던 시대였고 나는 그런 젊은이 중 하나였다”는 내러이션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연기, 연출, 배우, 소재, 메시지 뭐 하나 빠질 것 없는 수작이다. 한국에는 개봉이 되지 않았지만, 일본의 현대사를 가까이서 들여다 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일본에서는 쓰타야 서비스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다.
야마모토 타로가 영화계의 터부가 된 지금, 동영상 다운로드는 아무래도 풀리지 않을 테고, 그래서 이 작품은 숨겨진 명작이 되어 버렸다.
2022 년, 아사마 산장 사건으로부터 50 년이 지났다. 혁명은 성공하지 못했다. 우리는 우리의 뒷세대에게 무엇을 남겨줄 수 있을까. 다카하시 반메이 감독은 한 노숙자 여성의 이야기를 영화로 발표했다. 얼마전 버스 정류장 의자에 몸을 기대어 앉아 있던 한 여성 노숙인이 그 근처에 사는 남성의 공격으로 사망한 사건을 다뤘다. 2025년에는 기리시마 사토시라는 학생운동으로 대기업 폭발 사건을 일으킨 인물을 그린 작품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