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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잼 재판

김민정의 일상다반사(32)

by 김민정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집에 도착했는데 식탁 위를 보니 짜증부터 난다.

아니 도대체 왜 딸기잼이 자기 집에 못 가고, 식탁 위에 있는 거야? 딸기잼의 주거지는 냉장고입니다, 아버님, 그리고 우리집 보석 같은 아이들아. 딸기잼이 고스란히 놓여 있는 것만으로 분노가 치미는데, 아니 이건 또 무슨 일이야? 왜, 왜, 왜 딸기잼 뚜껑이 열려있는 건가요? 누가 대체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해주세요.

뚜껑을 딱 소리가 내게 닫아 냉장고로 돌려보낸다.


큰 아이가 돌아왔다.

“네가 이거 먹고 여기 두고 학교 갔니?”

“어, 아니 엄마 나도 먹었는데 내가 먹고 치우려고 할 때 둘째가 자기도 먹는다고 해서 그냥 둔 거야.”

큰애, 너는 무죄구나.

“근데 너는 둘째한테 딸기잼 치우고 가라고 했니?”

“아니, 근데 그걸 꼭 말해야 돼? 알아서 치우는 거 아냐? 다 먹은 사람이…….”

“둘째는 초2잖아. 네가 좀 알려줘야지.”

큰애가 황당한 표정을 짓는다. 그래, 나 같아도 그럴 것 같다. ‘딸기잼 뚜껑을 닫아 냉장고에 모셔두시라고 그걸 굳이 알려줘야 하나’와 ‘그게 내 일이란 말인가?’의 어딘가를 큰애의 의식이 오가고 있다. 그러다 큰애는 숙제를 한다며 자기 방에 콕 숨어버렸다. 사춘기를 보내는 큰애는 요즘 가족의 공동구역에 발을 디디는 일이 거의 없다. 자기방, 화장실, 욕실만 오간다. 식사할 때만 간신히 나와 식탁에 앉는 것 같다. 자기만의 세계. 큰아이 방에는 요즘 내가 못 보던 화장품도 놓여있고, 내가 모르는 머리끈도 놓여있으며 친구들에게 받은 편지 같은 것도 쌓여있는 것 같다. 나도 청소할 때 가끔 들어가서 슬쩍 보기만 했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용돈으로 이것저것 사모으는 것 같다. 네가 무엇을 사도 내가 터치해선 안 된다는 것만은 내가 어른으로서 지키고 싶은 선이다.


후우. 여하튼 딸기잼 뚜껑도 못 닫는 사람들이랑 살고 있다니! 이렇게 소소한 일에 이렇게 짜증이 올라오다니!

그때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둘째가 들어온다.

“다녀왔습니다!”

“어, 그래 잘 갔다 왔어? 근데 둘째야, 너 아침에 딸기잼 먹었지? 뚜껑은 닫았어?”

“엄마, 잘 모르겠는데. 나 아닌데…….”

아니긴 뭐가 아니라는 거야? 아직 대화 시작도 안 했는데. 뚜껑을 닫았는지 모른다고? 뭐 당연하다. 내가 먹었지만 내가 뚜껑을 닫았는지 아닌지 기억도 안 나고 알 바도 아니며, 그게 뭐라고 이러나 싶은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 본다.

“아니야? 그럼 누가 먹었어? 너 안 먹었어?”

“나도 먹었어.”

“근데 엄마가 와 보니까 딸기잼 뚜껑이 열린 채로 식탁 위에 있던데.”

“응? 진짜? 나도 먹었는데 아빠한테 내가 치우라고 했어.”

오냐, 너는 먹었는데 아빠한테 치우라고 했다? 왜? 네 발로 네 손으로 치우는 시늉은 했어야지.

“아빠한테 치우라고 했어?”

“응.”


둘째는 천진난만하게 웃는다. 너의 미모가 너를 살리는구나. 나는 그 미소에 같이 웃어줄 수밖에 없다. 아, 그래, 너도 무죄다. 그렇다면 치우라고 했는데 그것도 안 치우고 간 남편, 당신은 유죄야.

저녁상을 차리던 사이 남편이 퇴근해서 돌아온다. 남편이 현관 문을 여는 소리는 우리집 사람들 중에서 가장 요란하다. 남편이 신발을 벗자마자 묻는다.

“오늘 딸기잼 어디 있었는지 알아?”


아 꼭 이렇게 물어야 할까?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딸기잼 좀 치우고 출근하시오라고 해도 좋을 텐데. 하지만 꼭 이렇게 비틀어서 묻고 싶다.

“딸기잼 어디 있었는지 아냐고?”

“아후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남편은 인상부터 쓴다. 어후, 그 인생은 내가 쓰고 싶다.

“내가 와서 보니까 딸기잼 뚜껑도 안 닫고 나갔더라.”

“나 아니야, 난 안 먹었어.”

“그럼 누가 먹었어?”

“둘째가.”

“둘째가 아빠한테 치우라고 하고 학교 갔다며?”
“으잉?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남편은 들어본 적이 없단 투다. 그러자 둘째가 울먹인다.

“내가 아빠한테 꼭 치우고 가라고 했잖아.”

“언제?”
“아침에 밥 먹고 나서.”

“진짜?”

“야 안 되겠다. 가족 전원 집합!”

내가 모두를 부른다. 큰애는 모른 척 한다. “큰애, 너도 빨리 나와.”

가족 모두 식탁에 둘러 앉는다.

“엄마가 판사니까, 각자 아침에 있었던 얘기를 해 봐.”

큰 아이. “나는 먹고 치우려고 했는데, 둘째가 먹는다고 해서 주고 나갔어.”

둘째. “나는 먹고 치우려고 했는데 지각할 것 같아서 아빠한테 치우라고 했어.”

아빠. “나는 먹지도 않았다고. 내가 먹은 것도 아닌데 내가 치워야해?”

“이보세요, 어르신, 애가 초 2면 그것 좀 치워주세요. 그리고 당신이 제일 마지막에 출근했는데 식탁 위에 올려져 있는 게 있으면 치우고 가야지. 아빠에게 설거지형을 선고합니다. 이의가 있으실 경우엔 지금 말씀하세요. 아 네 없다고요, 쾅쾅!”

과연 딸기잼 뚜껑은 누가 닫아야 하는 걸까? 이름도 없고 정답도 없는 가사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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