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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야, 가을비 감성

비를 보다가, 메마른 땅을 생각하고, 또 나를 성찰한다.


집 바로 앞에 예쁜 카페가 하나 있다. 시골에서는 드물게 늦은 시간인 11시까지 그것도 일주일 내내 오픈하는 카페다. 이 카페 앞에는 늘 따뜻한 주황빛 전구가 주렁주렁 켜져 있다. 


술공장 팀장으로 발령 나면서 낯선 이곳으로 이사 온 날 밤, 대충 이삿짐을 정리하고 문득 창밖을 바라 보고는 이 주황빛 전구를 발견했다.


겁내지 마.
이곳 생활은 이 불빛만큼이나
따뜻하고 포근할 거니까.


새카만 밤하늘과 어둑한 골목길을 밝혀주는 따뜻한 색감만큼이나 얼마나 안심이 되고 위로가 되던지.. 지금도 간혹 갑자기 고독해지거나 문득 혼자인 게 어색할 때, 습관처럼 창문을 열고 이 불빛을 바라보곤 한다. 그럼 마치 내 마음에 작은 촛불이 켜진 것처럼 온기와 따스함이 번지기 때문에.




주말이나 평일 저녁엔 항상 책 한 권과 노트북을 들고서 창가에 앉아 2~3시간을 보낸다. 일기를 쓰거나,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주로 브런치 글도 여기에서 쓴다. 집중도 잘되고 글도 잘 써지고 공부할 땐 도서관보다 더 좋다. 무엇보다 내 공황장애는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집과 멀리 떨어질수록 불안도가 올라가기 때문에, 이렇게 가까운 곳에 늦은 시간까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건 나에게 대단한 행운이다. 


오늘도 여느 때처럼 카페에 앉아 일기를 쓰고 한 주의 마무리와 다음 주의 계획을 다이어리에 정리하고 있을 때, 옆 테이블의 손님이 내 어깨너머의 창 밖을 보며 "비가 오네"라고 작게 말했다. 


그녀의 말처럼 창 밖에는 오랜만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반가운 가을비.


카페 라플레르, 프랑스어로 '꽃'이란 뜻


창 밖 비 내리는 것을 가만히 보다가, 두 가지 타입의 땅에 물의 흡수 속도를 비교하는 실험을 본 것이 떠올랐다. 물기를 머금은 촉촉한 땅과 물기가 전혀 없어 푸석하게 메마른 땅에 동일한 양의 물을 주는 실험이었다. 어느 쪽 땅에 물이 더 잘 스며들었을까. 메말라 쩍 갈라진 땅이 더 빨리 흡수할 거란 내 예상과 달리, 물기를 어느 정도 머금은 촉촉한 땅이 몇 배 더 물을 잘 흡수했다.


자연이 표현하는 방식을 가만히 바라보며 삶의 통찰과 우주의 진리를 발견할 때가 종종 있다. 메마른 땅에는 물이 더 필요할 것이라 생각해 많은 양의 물을 한 번에 쏟아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땅이 천천히 물을 흡수할 수 있게 또 생기를 되찾을 수 있게 대지의 속도에 맞춰 물을 주는 게 더 중요하다.


대상의 속도를 맞춰주는 것이
더 중요한 것


상대를 위한답시고 섣부르게 행동한 적은 없는지. 

상대의 상황이나 성향은 고려하지 않고 

내 기준의 속도로 행동한 적은 없는지. 


오랜만에 내리는 비를 보다가

메마른 땅을 생각하다가 

나를 돌아보고 성찰하는 짧은 시간을 보낸다.


오랜만에 내리는 가을비에 

메말랐던 대지와 나무, 꽃들이 

각자의 속도로 촉촉해질 것을 상상하며 

기분 좋아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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