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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Oct 22. 2021

여행

부모님과 함께 갔던 그곳에서

  솔직히 말해서 나는 당황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엄마와 통화하던 중이었다.

  "거기, 우리가 묻힐 묘원에 가보려고. 처음 분양받았을  때 한 번 가보고는 다시 안 가봤는데 벌써 삼십 년도 넘게 지났잖아."

  엄마는 점심때 새로 담은 김치를 드셨다는  말 끝에서  불쑥 그러셨다. 내가 잠시 침묵하자 엄마는

  "같이 갈래,  너도?"

하셨다.  부모님의 연세를 알고 있다. 두 분 다 건강하시고 연세도 아직은 높지 않으신 탓에 부모님과 묘원을 연관 지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사랑하는 분들에 대한 일이라 더더욱 그런 생각은 못했던 듯하다. 아니, 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10월에 가고 싶어. 같이 가보자."

  "네."

  나는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싫다고 대답할 수 없어서 그러겠다고 한 것이다. 결국 나는 어쩔 줄 모르는 기분이 되어 전화를 끊었다. 어딘지 뒤숭숭한, 딱히 정의할 수 없는 씁쓸함이 뒤따랐다.


새벽까지 소설을 쓰다 잠들었던 나는 아침에 늦잠을 잘 뻔했다.  다행히 제시간에 깨어 늦지 않게 약속 장소에 닿을 수 있었다.  묘원은 생각보다 멀어서 지하철역에서도 택시로 20여분을 더 들어가야 했다.  비가 내렸으며 세상은 차분히 깨어 있었다.   


부모님은 분양받은 묘지 번호를 보여주셨다. 당신들이 어디쯤 묻힐 것인지 살펴보고 싶다고 하셨다. 묘원에 들어서자 아주 가까운 곳에서 죽음이 느껴졌다.  가파른 계단을 돌고 한참을 찾은 끝에 그 장소를 찾아냈다.

"계단이 너무 험하고 생각보다 높은 데라 허허, 참나. 여기까지 들어올 때는 타고 오니까 괜찮은데 계단 오르는 데가 미끄럽고 힘들 텐데 올 때마다 고생스러워서 걱정이다."

아버지는 내 걱정을 하신다.  


묘원에서 나오는 길에 공지사항을 읽으신 엄마는  묘지 사용기한이 45년인데 분양받은 지 30년이 넘어서 15년밖에 안 남은 건지 걱정을 하신다.  관리소장님께 여쭤봤더니

"그 45년이란 게 묘를 쓰고 나서 45년이란 뜻입니다. 죽고 나서 45년 후에는 뭐, 어떻게든 되겠지요. 허허."

하고 대답하신다.  덕분에 나와 부모님도 따라 웃고 말았다.  당신들이 묻히실 묘원을 둘러보면서도 남겨질 우리들을 걱정하시는 걸 보면  그동안 얼마나 우리를 걱정하셨을까 싶다.


택시를 불러 묘원을 빠져나왔다.  아침 일찍 서두른 탓에 아직 점심 식사 시간이 안 되었다.  결국 서울까지 와서 점심 식사를 했다.   부모님은 언제 묘원에서 죽음을 이야기했을까 싶은 얼굴로 이번에는

"으슬으슬 추운데 따뜻한 걸 먹어라."

하며 내 건강을 챙겨주신다.  그 무덤덤함에 주눅이 든다.  두 분은 무척 열심히 사셨고  죽음에도 참 의연하시다.  그 여유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나는 그분들의 평안을 아직 모르고 감히 가늠할 수도 없다.

부모님과 함께 갔던 그 여행에 대해 뭔가를 적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얽힌 감상을 풀어내지 못해 쩔쩔맸던 이유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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