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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Mar 27. 2021

비 오는 날이면

걷기를 멈추고 돌아서서

걸어오던  그 길이 흐릿해졌다.   다시 돌아갈 생각은 없었지만  사라지는 그 길을 보는 것 만으로도 가슴이 아득해진다.  글은 쓰기 위해 존재하는 것,  글자는 읽기 위해 숨 쉬는 것,  종이는 펼쳐달라 아우성 친다.  자박 자박, 찰박 거리는 물 방울 소리가  곳곳 물 웅덩이에  차고 넘칠때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서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다.  그 곳에 섞인 그대의 목소리,  밥 먹다 문득 마주치는 눈빛이나  시니컬한  한숨소리를.  빙긋 웃을때 마다  내 오른쪽 팔에는 소름이 돋는다고,  앞서 걷는 큰 걸음에  가슴이 무너진다고  나는 비밀스럽게 속삭인다.   


모든 것을 선택했다 믿었는데  사실은  탕진하고 있었다.  소비하고 또 소비하며  뭔가를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닌데,  혹은 그럴리가.  의심하고  주저한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고쳐 쓴다.  그러다 엎어져 잠이 든다.  다시 일어나 쓰기가 두려워  눈을 감은채 컴퓨터를 끈다.  어기적 어기적  소파에 누워  창문에 흐르는 빗물을 센다.  이만 이십 일 방울,  이만 이십 이 방울,  그리고..... 또,  그리고.


식탁에 음식을 차려놓고  그대가 좋아한다던  냉이 된장국을 한 그릇 담는다.  허영이다.  사치다.  그대와 함께  마주 앉아 수저를 들고  도란도란  예전 그날처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면,  소원처럼  빌어보면  비가 그치려나.  궁금해도  무척이나 궁금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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