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만 헤어지기로 했었다. 사랑하지 않아서는 아니었다. 오래 함께 했었고, 서로에게 편해졌기 때문에, 내 영혼이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그를 떠나겠다고 말했을 때 그는 며칠 동안 말이 없었다. 며칠이나, 아니 몇 주나 지난 후 다시 만난 그는 핼쑥해져 있었다. 그는 커다란 가방을 가져와 내게 주며 그랬다. 아프지 말고, 밥 잘 먹고 다녀. 허튼짓 하지 말고. 옷과 신발, 책과 노트를 담고 또 담아주었다. 나는 울었고 그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미안하다고 말하면 그의 마음이 약해질까 봐서 나는 이를 앙다물고 짐을 챙겼다. 결국 나는 그를 떠났다.
나는 바쁘게 지냈다. 일을 했고 글을 썼고, 자주 아팠고, 마음이 시렸다. 몇 번의 밤이 계절처럼 스쳐갔다. 외로운 건 아니었지만 혼자인 것이 두려웠다. 절벽에 내몰리다 떨어지는 꿈을 꾸었다. 아침은 추웠고 밤은 스산했다. 그를 다시 만난 건 많이 아프던 한 밤중이었다. 그의 전화가 유난히 반갑게 느껴졌다. 그는 아프냐고 묻고 밥은 먹었냐고 물었다. 잘 지낸다고 나는 대답했다. 벌써 다 나았어. 아무 일도 없이 바빴어. 네가 그리웠고 미안했고, 이것밖에 안 되는 내가 미웠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내가 한심했어.
그는 언제 한 번 밥 같이 먹자며 웃었다. 지난겨울이 너무 길었다면서 이젠 봄이라고, 봄에는 같이 꽃을 보러 가야 한다며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가 좋았다. 봄인데, 우리는 아직도 헤어지지 못한 채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거라고, 그래서 참 다행이라고 나는 그에게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