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소용돌이를 품고 있는 사람이 소용돌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기는 쉽지 않다. 빙빙 돌려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도 어느새, 소용돌이에 대해, 소용돌이가 만들어 내는 물보라와 그 소용돌이 안에 들어앉은 모든 감정에 대해,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야 만다.
잠시 쉬자는 이야기를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왼손 약지 손가락에 생긴 물집을 감싼 방수밴드를 오른손으로 집요하게 만지작거렸고, 요리를 위해 사놓은 소주 두어 잔을 홀짝인 후에야 그에게 카톡을 할 수 있었다. 두어 달 쉬고 싶다는 말을, 조심스럽게 아니, 과감하게.
내 소설을 진심으로 읽어주는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한다는 건 실례인 걸 나도 안다.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싶은 존재에게 실례를 범하고 있었다. 그런 모든 것을 알면서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내 일이 너무 급하다고 변명하면서, 통보하듯 그랬다. 두 주일이나 아니, 두 달만 쉬고 싶다고.
"두 주일? 아니면 두 달?"
그가 확인하듯 물었다. 두 달이라고 대답했다.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내내 아침이면 사계를 들었다. 기분이 내키는 대로 봄이었다가 가을이었다 겨울이 되는 세상에서 살았다. 아무 책이나 잡히는 대로 읽으면서 내가 가야 할 길을 생각했다.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며 어디로 가야 하는가, 무엇보다, 무엇보다 유치하게도 아직 가야 할 길을 모르는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더더욱 그가 이 글을 본다면 겹쳐진 부사와 형용사와, 수준 낮은 명사와 동사를 야단칠 거라는 생각에 볼이 붉어졌다. 맥주를, 가끔은 칵테일처럼 과일 맛이 섞인 막걸리를 마시며 나라는 인간에 대해 생각했다. 그새 겨울이 가고 새해가 되었다. 이사를 했으며 집 근처 헤어숍을 찾았다. 강아지 미용샵도, 반찬 가게도 두어 번 드나들었다. 꿈마다 단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문장이 나를 향해 물었다.
'너는 무엇을 보고 있느냐?'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태양이 나침반 한 부분에서 솟아나 다른 부분을 향해 사라졌다.
나는 다시 소용돌이 안에 서서 내 글을 무심히 읽어줄 친구가 문득 그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