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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Mar 27. 2023

모든 일에는 행복이 있다

다시 돌아온 일상에 대해

  2023년 1월, 엄마께서 교통사고를 당하셨다. 여느  일요일 오전처럼 미사참례를 위해 성당으로 가시던 길이었다.  부슬부슬 내리던 눈과 비에 흠뻑 젖어 얼어가던 횡단보도에서 속도도 줄이지 않고 달리던 우회전 차량에 치이셨다고 했다.  마루를 산책시키고 돌아와 느지막이 커피 한잔을 즐기던 나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갔던 동생은 짐을 풀 새도 없이 서울로 돌아왔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 때문에 병원에서는 환자들에 대한 면회가 철저히 제한되었고, 가족들은 중환자실 문 앞에 모여 엄마 상태를 걱정하며 시간을 보냈다. 보호자로서 엄마 곁을 지키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내가 경찰서에 가서 사고 상황 설명을 들었다. 경찰은 사고 후 상황이 찍힌 사진을 여러 장 보여주었다. 아스팔트 바닥에서는 피가 흥건했고 엄마는 머리를 많이 다친 상태로 의식을 잃었다고 했다.


  엄마의 사고 전 주에 나는 본가에 들러 엄마가 해주시는 LA갈비를 먹었었다. 김치를 싸주시겠다고 하셔서 아직 많다고, 나중에 가지러 오겠다고 했었다.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엄마의 김치를 떠올렸다. 어쩌면 그 김치를, 짜지도, 맵지도 않지만 아주 깊은 맛을 내던 엄마의 김치를 다시는 먹지 못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백하게 질려 옆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를 바라보며 와르르 뭔가 무너지는 느낌도 들었다. 엄마와 아버지, 두 분이 함께 하는 일상이 당연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분리될 수 있다는 걸 상상도 못 했었다. 상상하기도 싫었던 어둠이 현실을 덮어버렸다.


  엄마는 많이 아프셨지만 낯선 사람이 당신을 만지는 것에, 곁을 지키는 것에 유난히 예민하셨다. 여러모로 보나 엄마 곁을 지킬 사람은 나뿐이었다. 동생은 직장에 다니고, 아버지는 어쩔 줄 몰라하실 뿐이다. 결국 내가 엄마 병실에 합류했다. 매일이 느리게, 지루하게, 정신없이 흘러갔다. 엄마는 갑자기 수술을 받아야 했고, 수 없는 검사를 위해 피를, 타액을 뽑아내야 했다.  아무 때나 불려 가 MRI와 CT scan, X-ray와 Bone scan을 찍었다. 나는 엄마 침대 곁, 보호자 침대에서 시간 나는 대로 잠을 청했고 아주 불규칙한 식사를 했으며, 꿈도 없는 밤을 보냈다. 수술과 수술 사이에 병실이 바뀌었고, 겨울이 깊어졌다가 얕아졌다가 했다. 다행스럽게도 엄마는 많이 나아지셨다.


  병원에서 퇴원하신 엄마는  오늘 나와, 아버지와 함께 외래 진료를 다녀오셨다. 사고 이후 처음으로 병원이 아닌 외부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엄마는 예전처럼 농담을 했고 아버지는 역사적 사실을 한참 이야기 하셨다.  마치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는 웃으며 먹고 마셨다. 이런 것이었지, 행복이란. 함께 마주 보고 밥을 먹는 것, 예전에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고 이야기하는 것, 주름진 엄마의 손을 잡을 수 있는 것, 사소한 잔소리를 들으며 적당히 말대꾸를 하는 것, 그리워하던 이를 곁에서 그리워하는 것....

 

   엄마의 사고가 있기 전, 나는 일상과 겹친 결핍으로 항상 불안했다. 내가 뭔가를 더 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뭔가를 잘 못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갖가지 생각들로 소용돌이치는 밤을 보내며, 숨차는 매일을 보냈었다. 그러나 엄마의 사고를 겪은 후, 아주 당연하게 느꼈던 매일이 사실은 선물이었다는 것을 깨달으며 많은 생각이 씻겨져 나갔다. 선물을 받으면 행복하고, 감사하고, 즐겁게 되는 법이다. 일상이라는 선물을 돌려받은 나도 예전보다 행복하고 감사한 순간을 즐기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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