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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Jul 09. 2024

나는

나는 매일 기도 한다

   그날도 나는 그곳에 갔다. 그녀는 창가에 서 있었고 나와 눈이 마주치자 빙긋 웃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에게 그런 말들을 하고 싶었다. 한숨이 말처럼 새어 나오는 오후와 베개가 흠뻑 젖은 아침, 죽은 동생이 떠오르는 한밤중이면 가슴에 맺힌 것들이 내 숨구멍을 막았다고. 오래 그런 날들을 겪었고, 어느새 그렇지 않은 날이 부자연스럽다고. 예전을 회상하면 왜 떠나보낸, 내가 떠나온 사랑이 부러진 대나무처럼 뾰족하게 나를 찔러대는지. 행복했던 순간을 기억해 내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 과거에서 온 어떤 이야기든 눈물이 섞여 있는 것인지.     

그렇지만 아무에게나 그런 말을 쏟아 놓을 수는 없었다.


  해결될 수 없는 덩어리들이 견딜 수 없어질 때 집을 뛰쳐나갔다. 걷다가 그곳에 닿았고, 그녀를 발견했다. 그녀는 사심 없는 표정으로 창가에 서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손으로 ‘이리 오렴.’ 비슷한 몸짓을 했다. 그녀는 무반주 첼로 조곡에 맞춰 플리에를 하고 있었다. 불규칙하게 심어진 지뢰밭을 걷듯 겅중겅중 그녀를 향해 걸었다. 그녀의 곁에 부서져 앉아버렸다.

내 속마음을 틀어놓고 싶어.’

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럴 만한 기력도 남아있지 않았다. 씁쓸한 침이 바짝 마른 공기와 함께 목구멍을 타고 넘었다.     

손을 내밀었고 뭔가를 잡았다. 그것은 실 끄트머리였다. 불규칙한 간격으로,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인 매듭이 진, 길고도 짧은 실뭉치가 있었다. 나는 그것을 잡아당겼고 곧! 첫 번째 매듭에 부딪혔다. 나는 그녀를 향해 하기 시작했다.



1980년 초 프란치스코 교황(당시 베르골료 신부)은 독일 유학 중 ‘매듭을 푸시는 성모’ 그림을 보고 감명받아 이에 대한 깊은 신심을 지니게 됐다. 귀국할 때 그는 그림의 복사본을 가져갔고, 남미 지역에 이 신심을 전파했다. 그가 부에노스아이레스대교구장이 되면서 신심은 더욱 널리 퍼졌다. 1988년에 이르러 9일 기도문이 일반 대중에게 퍼졌고, ‘매듭을 푸시는 성모’ 신심은 전 세계에 알려졌다.


성화를 살펴보면, 초승달 위에 올라서 있는 성모님은 12개의 별이 달린 왕관을 쓰고 있다. 성모님은 천사들에 둘러싸여 있으며, 비둘기 모습으로 형상화된 성령이 머리 위를 날고 있다.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묵시 12,1)이라는 성경의 내용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발밑에 달을 두고’는 원죄 없는 분을 상징하고,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것은 교회의 어머니임을 상징한다.손으로는 긴 매듭이 있는 줄을 들어 매듭을 풀고 있고, 발로는 뱀의 머리를 밟고 있다. 성화 맨 하단에는 토비야와 그의 아내가 될 사라에게 그를 인도하는 라파엘 대천사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토빗기 참조) 여기서 뱀은 사탄을 상징하며, 매듭은 우리가 해결방법을 찾지 못하는 어려움들을 의미한다. 「매듭을 푸시는 성모님」(프란치스코 교황/제병영 신부 편역)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매듭이란, 우리가 어떠한 해결방법도 찾을 수 없는 문제와 난관들입니다… 우리 삶에서 우리를 묶어 놓는 온갖 것들이 모두 매듭입니다. 그것들은 우리 마음과 정신을 숨 막히게 하고 지치게 만들며,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하고 우리를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뿌리입니다.”


‘매듭을 푸시는 성모님’을 아시나요 (catholictimes.org) 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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