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IR을 진행하는 어떤 창업자와 미팅을 하면서 사업과 투자금 유치에 대해 이것저것 여쭐 기회가 있었다.
원하시는 투자금 규모가 상당히 커서 해당 투자금의 목적과 집행 계획 등에 대해 아주 자세하게 여쭸다. 처음에는 해외 진출을 위해 큰 규모의 투자 유치가 필요하다는 설명을 주셨는데 사업의 우선순위와 논리가 쉽게 이해되지 않아 조금 귀찮아 하실 정도로 계속 질문을 드렸더니 대화의 말미에 "솔직히 나도 해외 진출이 반드시 필요한지, 필요하더라도 지금이 최적의 타이밍인지 등에 대해 확신이 있는 건 아닌데, 이 정도의 규모와 방향성을 제시하지 않으면 투자를 받기가 어려워서 투자자들에게는 투자유치의 목적으로 해외 진출을 주로 언급하고 있다."라는 대답을 들었다.
나는 사업을 잘 모르고,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경우 사업에 정답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아주 적은 경우 확실한 오답은 있다고 믿는다. 내게는 창업자가 발견한 문제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품이 최상위의 독립변수이고, 창업은 창업자가 발견한 문제를 창업자의 제품으로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론이다. 투자유치를 포함한 나머지는 '창업'이라는 문제 해결의 방법론을 지원하는, 창업자가 스스로의 가정을 증명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여러 요소 중 하나에 불과하다.
창업 후 큰 성과를 내신 창업자나 큰 성과를 낸 창업자들에게 투자한 명망 있은 투자가들이 종종 유동성이 풍부할 때 미리 투자를 받아놓는 것이 좋다고 조언을 주시는 경우가 있는데, 행간의 의미를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건 돈이 필요 없어도 무조건 투자를 받으라는 의미가 아니라 '창업자가 나중에 사업을 키우기 위해 큰 돈이 필요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데 멀지 않은 미래에 시장의 유동성에 문제가 생길 징후가 있다고 생각하면, 그 때 투자금을 유치하기 어려울 수도 있으니, 유동성이 풍부할 때 안전하게 투자를 미리 받아 놓아도 좋다'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보험의 목적으로 투자를 받아야 한다면, 투자자들이 보기에 그러듯한 그러나 실제 투자 유치의 목적이 아닌 아젠다들을 말씀하시기 보다, 진짜 목적을 솔직하게 말씀 하시는게 단기적, 장기적으로 더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럴듯한 가짜의 목적은 단기적으로 투자 유치 논리를 전개하거나 방어하는데 한계가 있고, 장기적으로는 실현되지 않을 경우 회사의 파트너이고 우군이 되어야 할 투자자들로부터 불신을 살 수 있는 위험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는 고객들이 고통스러워 하는,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있는데 이미 존재하는 회사들이 그 문제를 발견하지 못하거나 발견했더라도 잘 해결하지 못하는 것 같을 때, 내가 그들보다 더 잘 해낼 수 있다고 믿을 때 창업을 하고, 창업은 했는데 내 가정을 검증하기 위한 여러 자원, 대표적으로 사람과 돈이 없을 때 내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사람을 동업자로 영입하거나 채용하고 또한 내 문제의식과 제품에 공감하는 투자자로부터 투자를 받는 것이 순서라고 믿는다.
반대로 채용하기 위해, 투자를 받기 위해서 무엇을 계획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고 너무나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투자는 수단일 뿐 절대 목적이 될 수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