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상엽 Mar 23. 2019

승진

2015년 12월에 지금 회사에 합류한 이후 3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단언컨대 그동안 회사와 고객에 기여하는 과정에서의 배움과 성취를 목표로 일해왔다. 단 한 번도 어떤 보상을 바라고 결정이나 실행을 한 적이 없는데, 그 이면에는 이미 회사로부터 부족하지 않은 대우를 받고 있다는 감사함과 그에 비해 내 기여가 여전히 충분치 않다는 괴로움이 공존했던 것 같다.


그런데 보스가 공공연히 이런 기색을 보이고 관련한 발언을 하는 것이 동료들에게는 꽤나 큰 스트레스였던 것 같다. 꽤 오래전 언젠가 모두 불콰해진 술자리에서 술기운을 빌려 이런저런 서운함이 쏟아졌다. 그러면 우리가 회사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당신에 대한 평가가 우리 조직에 대한 평가인데 왜 그런 무책임한 말을 하는가, 당신 승진시키려고 우리들이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데 뭐 하자는 거냐, 당신이 승진해야 우리도 기회와 희망이 생기지 않겠냐, 그런 말 하나도 안 멋있다 등. 뒤통수를 살짝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나의 '승진'과 '평가'를 온전히 나 혼자만의 그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조직장에 대한 평가는 그가 채용하고 이끄는 사람과 자원에 기반해 그의 판단과 가이드에 따라 의사결정과 실행이 진행되는, 그가 책임지고 있는 조직에 대한 평가로 온전히 귀결된다. 내가 너무나 이기적으로 나 스스로의 평안함과 명분만 생각해 왔구나 하는 반성, 무엇보다 함께 애쓰고 있는 동료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는 깨달음에 미안함이 밀려왔다. 그 후로도 보상을 바라고 뭔가를 하진 않았지만 나에 대한 평가가 우리 조직과 동료들의 노력과 성취를 대변한다는 자각이 더 큰 책임감과 의욕으로 다가온 건 사실이다.


창업자가 어제 갑자기 어젠다 없는 1on1을 잡았다. 마음이 괜히 불편해져서 검토 중인 프로젝트 업데이트들을 싸들고 올라갔는데 갑자기 악수를 청하며 프로모션 레터를 건넸다. 나는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곤 바로 가져간 문서들을 꺼냈는데 악수를 청한 사람이 머쓱할 정도로 기쁘거나 들뜨지 않았다. 미팅을 마치고 동료들이 있는 자리로 돌아와 승진 사실을 공유하니 동료들이 기뻐하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는데, 그때서야 이런저런 감정이 밀려왔다. 예전 같았으면 내가 한 일들이 회사와 고객에게 도움이 되었구나 라는 마음뿐이었겠지만 지금은 동료들에 대한 감사함과 책임감이 그에 못지않다. 그들의 노력과 시간과 고민과 시도와 땀과 눈물과 성공과 실패와 그 모든 것을 헛되이 하지 않은 것 같아 안도했고 그들과 좀 더 많은 배움과 경험, 특히 성장과 성공의 경험을 함께해야 한다는 각오와 다짐도 하게 된다.


나만 잘하면 된다. 계속 이 마음을 잊지 않길, 내일 아침이 온 후에도.

작가의 이전글 투자유치는 수단일 뿐 절대 목적이 될 수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