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이나 해방은 감격과 자부심을 담고 있긴 하지만, 미래와 주체가 부족
우린 이 날의 정체성에 대해 아직도 헷갈리고 있다. 72년이나 지난 지금에도 말이다. 이날은 8.15 해방 기념일일까. 광복절일까. 해방이라는 것은 구속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고, 광복이라는 것은 암흑기에서 벗어나 빛을 되찾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해방이라는 말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라는 질곡에서 벗어났음을 강조한 말인데, 여기엔 일제의 탄압이나 가해행위가 강조되는 느낌이 있다. 8월15일에 일어난 일을, 오직 일제에서 벗어났다는 개념만으로 푸는 것은 지나치게 소극적인 관점으로 보인다. 그날의 기분으로 보자면 이 말 속에 담긴 후련함이 먼저이겠지만, 역사적인 '랜드마크'로 삼을 그 지점에 대한 적합한 무게가 부족하다는 인식이 있었을 것이다. 그 인식이, 해방이란 말 대신 광복이란 말로 옮겨가게 했을 것이다.
광복이라는 말 속에는 '일제 암흑기'라는 시대 상황이 정상적이지 않았다는 비판이 숨어있다. '어둠'은, 우리 민족이 지니고 있던 국가적 독립성을 유지하지 못한 채 다른 나라의 강제와 폭압에 가려져 있어야 했던 36년(1910-1945)의 실체를 규명하는 표현이다. 그 어둠의 대척에 있는 '빛'은, 해방 이후 창조된 것이 아니라, 식민지 이전에 있었던 것을 회복한 것으로, 역사적인 정체성을 천명한 것이다. 광복이란 말에는 '국권'을 회복했다는 의미가 강하게 담겨져 있다.
그런데 식민지 이전의 '국권'과 해방 이후의 '국권'은 과연 같은 것으로 볼 수 있을까. 학자들은 3.1운동(1919년) 이전의 국권회복 운동은 모두 '대한제국'이라는 왕권국가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었다고 밝힌다. 국체의 근대화 개념이 아직 국민들의 마음 속에 인식으로 맺히지 않았다는 얘기다. 3.1운동은 왕권국가의 복귀를 주장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근대국가로 거듭나는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대한제국 독립만세가 아닌, 대한민국(공화국) 독립만세로 인식이 옮겨가고 있었다는 얘기다. 독립선언서는 '현대 국민국가건설'에 독립운동의 목적이 있다고 천명하고 있다.
3.1운동은 하나의 이벤트가 아니라, 식민지 하의 독립운동이 정치적으로 성숙한 가운데 전개된 '민의의 체계적 표출'에 가까웠다. 1919년 2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한인단체가 '대한국민의회'를 만들었고, 4월10일 상하이 임시정부가 수립된다. 국무원이 구성되고 대한민국임시헌장이 선포된다. 국내에서도 4월23일 13도 대표자 국민대회에서 임시정부 선포문을 발표했다. 이 세 '임시정부'의 수장은 모두 이승만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선 국무총리, 상하이에서도 행정수반 국무총리, 서울에서는 집정관 총재였다,
'광복(光復)'이라는 말은 1915년 대구에서 결성된 '대한광복회'라는 명칭 속에 이미 보인다. 1940년 중국 중경에서 창설한 '한국 광복군' 이란 말에도 들어있다. 그러나 흔히 쓰이는 말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나 학자들 중에는 '광복'이란 말의 타당성을 이렇게 주장하는 이가 있다.(명지대 진태하교수)
"독립이란 용어는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것과 같이 신생국이 다른 나라로부터 처음으로 자립하게 되는 경우에 사용하는 말이며, 광복이란 용어는 종전에 독립국이었던 나라가 일시 주권을 강탈당하였다가 끈질긴 항거로 되찾은 경우에 사용하는 말이다. 유구한 독립국이던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35년간 주권을 강탈당했다가 다시 찾은 것은 광복이라고 해야지 독립이라고 할 수 없다. 광복이란 말은 일제 침략에 대하여 항거의 역사가 강조되는 말이지만 독립이란 말은 예속의 역사가 전제되는 말이라고 주장한다. 해방(북한은 조국해방 기념일이란 명칭을 쓰고 있다)이란 말은 '해방되다' '해방된 날'과 같이 쓰이는 말로 능동보다 피동의 의미가 강조되어 선조들의 항거와 투쟁의 결과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독립'이란 말이 과연 진교수가 의미하는 그런 의미로 제한되어야 하는 까닭이 있을까. 신생국이 아니더라도 주권을 회복하는 경우라도 독립이란 말을 못쓸 이유가 없다. 일제 때 박은식이 펴낸 '한국독립운동지혈사'나 홍범도가 활약한 대한독립군, 1920년대 임시정부 산하의 독립당, 군자금 모집을 위해 발행한 독립공채, 동경 유학생 조선독립선언서, 3.1 독립선언서, 독립문과 독립신문, 독립협회 등등에 쓰인 독립이, 과연 신생국 독립을 의미하는 말이었을까. 독립은 외세에 의존하지 않고 자주 자립하여 국가를 바로 세우는 일을 가리키는 것이지 신생국에만 한정할 일은 아니다.
1949년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제정할 때 정부안에서는 '독립기념일'로 되어 있던 것이 국회에서 '광복절'로 변경됐다. 왜 그랬을까. 국회 속기록에도 그 이유가 나와 있지 않다. 법제처 김기표 행정법제국장은 "광복절이란 용어가 독립기념일보다 나라를 되찾은 기쁨과 희망을 철학적 감성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추측한다.
나는 이 날의 명칭이 원안에 있던 대로 '독립기념절'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상 역사적인 팩트만으로 보자면 해방이나 광복이라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해방이란 말이 틀림없으며, 또 원래 빛의 역사 속에 있던 독립국가가 암흑기를 거친 뒤 다시 독립국가로 회복되었다는 점에서 광복이란 말이 정확하며 거기에 감격적인 울림도 키워놓았으니 이 말 또한 8.15를 표현하는데는 모자라지 않는다.
하지만, 광복이나 해방은 '과거'와 '상대'를 뿌리 깊게 의식한 '한' 서린 표현이다. 식민지를 벗어나는 일, 일본이라는 타국의 지배를 벗어나는 일. 당시로선 그보다 더 큰 의미 부여가 어디 있었으랴? 하지만, 그날은 과거의 '끝'이기도 하지만 미래의 '출발'이기도 하다. 비록 우리의 자력으로 자주독립을 이룬 것은 아니지만, 복잡한 열강 지형 속에서 다양한 고난을 치르면서도 결국 국가로서의 '진정한 독립'을 이뤄냈다.
독립이란 말은, 타자에서 벗어났다는 의미를 전제하고 있지만, 주체적인 홀로서기가 부각되어 있다. 해방과 광복은 8월15일 하루가 정점을 이룬 '감탄사'적인 개념이지만, 독립은 8월15일을 기점으로 우리나라가 자기 정체성을 구축해가는 위대한 출발을 했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또한 식민지 기간 동안에 벌인 수많은 독립운동이 이뤄낸 결실이란 점도, 그 두 글자 속에 말없이 녹아 있지 않은가.
해방의 환호와 광복의 감격은 이미 식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독립'이라는 생생한 현실만이 남아있다. 이 독립을 있게한 그날을 기념한다면 당연히 '독립기념절'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언어는 생물이며 낱말은 시간을 따라 숨쉰다. 김구선생이 소원의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라고 말했던, 그 뜨거운 소원을 지켜주기 위해서라도, 이 날은 '독립절'이어야 한다. /빈섬.
* 기념일을 '절(節)'로 표현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 '절'은 원래 중국 황제의 생일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천추절, 만수절 따위로 불렸다. 이것이 상징화하면서 최고의 기념일을 가리키는 표현이 된다. '절'은 삼일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등 4대 국경일이 해당된다. 성탄절과 석탄절이란 표현이 있지만 이것은 법률상 정식명칭은 아니다. 법령에는 기독탄신일과 석가탄신일로 명명하고 있다. 식목일, 현충일, 한글날 등은 '절'이 아닌 기념일이다. '절'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일본왕의 생일을 천장절이라 하는 관례를 보면,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있었으나, '절'이 한자문화권에서 나라의 경축일에 관행적으로 사용해온 표현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4대 국경일을 '국경절'로 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