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적 상상력과 역사적 사실, 그리고 객석의 논란 총정리
1. 실화와 영화 : 스포 상당
전범기업 미쓰비시의 신제품 전함에 비유해 '군함도' 호칭..14살에 끌려간 한국인 징용자는 하루 16시간 해저 300m에서
100마디 말보다, 일본의 '군함도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를 피의 스토리로 항의한 영화 '군함도'
▶ 일본 최초의 콘크리트 아파트섬이 생겨난 까닭
일본 나가사키에서 18km 떨어진 작은 섬. 끝섬(端島, 하시마섬)이라고 불렸다. 일본은 1897년부터 1931년까지 6차례에 걸쳐 이 섬 주위를 매립해 길이를 120m 더 늘려, 총 길이 480m, 폭 160m의 섬(둘레 길이 1.2km)으로 넓혀놓았다. 영화에서도 인상적인 섬 둘레를 에워싼 파도벽(방파제)은 높이가 10m에 달한다. 전범기업 미쓰비시는 1916년 이곳에 일본 최초의 콘크리트 아파트를 건립한다. 처음엔 4층으로 지었으나 나중엔 7층, 9층, 10층으로 증축한다. 이곳엔 극장과 종교시설(신사), 유치원, 중학교, 기숙사, 체육관, 수영장, 병원, 이발소와 파찡꼬까지 갖춰져 있었다.
이렇게 공을 들인 까닭은, 1810년경 지역어민들이 이 섬에서 노천석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어민들은 어업 생계를 하면서 부업으로 석탄을 캐다 팔았다. 일본이 채굴을 시작하는 것은 1871년부터이다. 메이지 유신이 개막되는 1868년이라는 연도를 감안하면, 이 탄광의 역할을 암시하는 타이밍이 아닐 수 없다. 하시마섬 탄광은 일본 제국주의 근대화의 한 축이었다. 4년 뒤엔 1875년 양질의 석탄이 쏟아져, 제철 시설과 선박의 연료로 쓰이기 시작했다. 전쟁의 불쏘시개였던 셈이다. 1887년 처음으로 수직갱도를 파서 내려가기 시작해 해저탄광이 된다. 미쓰비시가 이곳을 인수하는 것은 1890년이다. 이 해저탄광은 87년간 운영되다가 1974년 폐광되고 섬은 무인도가 된다. 그런데 2009년 나가사키 시에서 일부 지역을 손 봐 관광코스로 개발하면서 일반인에 공개하기 시작한다. 이 무렵, 일본 정부는 군함도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군함도의 실제 모습.
▶ 다카시마섬과 군함도엔 한국인 4만명
하시마섬 옆 2.5km 떨어진 바다에, 다카시마섬(高島)이 있다. 그곳은, 1869년부터 서양기술자까지 모셔와 채탄을 하기 시작했던 일본 최초이자 최대의 해저탄광이다. 다카시마는 본래 3개의 섬이었는데 그 사이를 메워서 둘레 6.km의 섬으로 만들었다. 이곳에서 석탄이 발견된 것은 17세기(1695년)였다. 유입되는 바닷물 때문에 석탄 채굴이 쉽지 않았다. 미쓰비시가 1881년 이 탄광을 인수해 근대적인 해저탄광으로 개발한다. 한때 이 섬에는 1만8000명이 거주했다. 일본 근대화의 토대가 다카시마섬에서 나왔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 탄광은 1986년까지 운영되다가 폐광되었다.
다카시마섬과 하시마섬 탄광에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한국인은 약 4만여명으로 추산된다. 영화 '군함도'는 1945년경(나가사키 원폭 투하 장면으로 보건대) 하시마섬에서 일어난 사건을 역사적 사실과 영화적 상상력으로 재현한 스토리텔링이다.
영화 속에서 재현한 군함도.
▶ 군함도라고 호칭한 건, 미쓰비시 전함 '도사'를 언론이 비유
하시마섬을 군함도라고 호칭하게된 계기는 언론 보도 때문이었다.1916년 아사히신문은 하시마섬을 멀리서 보면 군함과 닮았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5년 뒤 미쓰비시는 나가사키조선소에서 전함 도사(土佐)를 건조했다. 당시 일본인들에겐 이 전함이 큰 자랑거리였다. 나가사키의 일일신문은 미쓰비시를 예찬하면서 전함 도사와 하시마섬이 닮았다면서 이 섬을 군함도(軍艦島, 군칸지마)라고 명명한다.
KBS '취재파일K'는 2015년 7월5일 하시마섬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 직전인 6월8일 "일본 강제징용 유적 현장을 가다"라는 제목으로 역사적 진실을 알리려는 다큐 기획물을 방송했다.
지금은 관광지가 된 군함도로 가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나가사키에서 다카시마섬까지는 배로 2시간 40분이 걸리고 다카시마에서 군함도까지는 40분 걸린다. 안내원 스기코토 히로시는 이렇게 설명한다.
영화 '군함도'포스터.
▶ 당시 세계최고 인구밀도의 섬, 일본안내원 '한국 강제징용' 언급은 쏙 빼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철근 콘크리트 아파트입니다. 건립된 것은 1916년이니까 거의 100년전입니다. 지금은 건물 뼈대만 덩그라니 남아 음산한 기운마저 감도는 무인도지만 100년전 군함도는 그야말로 최첨단도시였습니다. 섬은 대기업 미쓰비시의 소유였고 아파트는 물론, 학교와 어린이집, 영화관과 수영장까지 지어졌습니다. 당시 도쿄는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곳이었습니다. 그 도쿄의 9배가 넘는 인구밀도가 이 섬에 펼쳐져 있었던 것이죠. 석탄산업의 최전성기인 1945년, 축구장 2개 면적의 이 섬엔 무려 5300명이 거주했습니다. 당시 이곳엔 사람이 살고 소리가 나고 생기가 있고 일본의 미래라고 불리던 마을이 있었습니다."
일본인 안내원의 설명은 여기까지였지만, KBS는 1943년 군함도에 끌려가 2년반 동안 강제노역을 한 한국인 최장섭(일본명 야마모토 쇼쇼,당시 14세, 현재 88세)옹의 얼굴을 비춘다.
영화 '군함도'의 한 장면.
▶ 14살 조선인 소년은 해저 300m에 하루 16시간씩 들어가 있었다
"매일 바다밑으로 3백m('1천척이라고 표현했다)를 들어간단 말야. 그래야 석탄이 나오거든. 여름 겨울 없이 팬티 하나 차고서는 땀으로 며칠을 해버려 그냥. 거기서 나오면 귀신같다고, 목욕탕에 와서 자기 얼굴 형상을 쳐다보면 귀신 같아."
14세의 소년은 300m 채광을 증언했지만, 군함도의 수직갱도는 지하 600m까지 바로 내려가고, 다시 수평갱도와 경사진 사갱을 몇 개 거쳐 1000m 막장에서 일하는 시스템이었다. 땅 속은 열기와 가스가 극심했고, 8시간씩 2교대로 하루 16시간을 일해야 했다. 먹는 것도 시원찮았다. 다시 최장섭옹의 말.
"시래기국에 콩깻묵 한 덩이 주는데 그거 먹고 어떻게 살겠어? 영양실조로 쥐가 나서 꺽꺽 우는 소리...참혹했어."
▶ 탈출하다가 붙잡히면 밧줄을 채찍삼아 살이 터지도록 때려
탈출하려는 이들도 있었는데...
"도망가다가 50리 못가서 잡혀오고 30리 못가서 잡혀왔지. 잡히면 밧줄로 그냥 후려갈겨서 피가 묻어나오고 살이 묻어나오고...참혹해서 보지를 못했어."
방송은 1943년부터 1945년까지 3년간 군함도에 최대 800명의 조선인이 있었으며 그중 122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영화 '군함도'에 나오는 참상은, 저 숫자들에 근거한 셈이다. 군함도의 다른 이름이 왜 '지옥도'인지, 이 지옥도를 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것이 인류의 보편가치에 옳은 것인지에 대한 심문 또한 영화에 담겨있는 셈이다.이 영화를 일본정부가 불편해하는 이유도 이것과 맞물려 있다.
영화 '군함도'의 한 장면.
▶ 일본은 군함도를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지옥도'를 숨기나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인 김민철씨는 이렇게 말한다.
"국제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전쟁포로에 대한 강제노동이라든지 중국인이나 한국인에 대한 강제동원과 강제노동, 그럼 부분들은 전혀 이야기하지 않은 채 단지 동양에서 처음으로 산업혁명을 일으켰던 시설이라는 그 명분만 가지고..."
일본은 강제동원 논란을 차단하기 위해 등재 대상의 시기를 1910년 이전으로 제한해서 신청했다. 만들어진 시기를 중심으로 본 것인데, 그 이후 이용된 상황의 참혹함을 감추려는 속내였다.
▶ 역사학자가 지적한 '영화 군함도'의 팩트와 허구 부분
영화 '군함도'가 흥행 돌풍 속에서도, 역사 왜곡의 논란의 역풍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역사학자 심용환(역사교육연구소 소장)은 이 대목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28일 페이스북)
"영화 초반부에 나온 강제징용의 실상은 우리 영화 역사에서 처음, 그리고 비교적 잘 묘사가 되었어요. 아무것도 아닌 듯 스쳐지나가는 장면 하나하나에 고증적 요소가 들어있는데 이 부분을 캐치하는 영화 기사 하나 보기 힘들더군요. 선대금 형식으로 징용자들에게 이동경비를 부담하게 하는 것부터 소지섭이 젖은 다다밋장 들면서 화내는 모습 같은 것들은 모두 정확한 역사적 사실이고 우리 영화에서 처음 나온 것들이죠. 허구 또한 있습니다. 광복군이 핵무기 사용을 알았다던지, 유력 독립운동가가 징용현장에서 노동을 했다던지, 광복군이 그를 구하러 침투하려 했다던지, 노동자들이 대탈출을 했다던지 하는 것들은 모두 영화적인 상상력이죠."
영화 '군함도'의 한 장면.
▶ 우리가 군함도 징용의 참상을 그간 제대로 알고 있었나?
그는 조선인 내부의 갈등과 배신을 부각시킨 것이 오히려 일본의 거대한 가학행위를 숨기는 결과를 낳았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이렇게 주장한다.
"위안부 중개 민간업자의 대부분이 조선인이다? 역사적 사실이죠. 하시마섬 말고도 숱한 곳에서 기생형 친일파들이 같은 동족 등쳐먹은 거? 역시 사실이죠. 소지섭, 황정민 등을 사용해서 매우 어설프게 이 문제를 건드렸기 때문에 설득력이 떨어졌다라는 말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선과 악의 구도로 식민지배 시대를 바라볼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매우 애국적이고 바른 역사관이라고 생각할 것인지 저는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일본 잘못했죠. 누가 잘못하지 않았다고 했던가요. 하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이 순응했고, 악용했고, 같은 조선인을 괴롭혔다는 사실 같은 것에 대해서 왜 이야기 못하죠? (......)모든 영화가 그렇듯 저 역시 이 영화를 보면서 이래저래 아쉬운 것이 많아요. 하지만 매우 도덕적인 견지에서 영화를 '심판'하는 듯한 태도에 대해서는 도무지 동의가 안 되네요. '이미 알고 있었고, 애도하고 있었다'식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 모두 모르고 있었고, 국가건 국민이건 누구도 징용에 관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죠. 어떤 의미에서건 전 자기반성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 영화 '군함도'가 욕먹는 7가지 이유
<스포 주의>
영화 '군함도'가 큰 논란을 불러 일으키면서도 개봉 나흘만에 관객 300만(올해 최단기 흥행 신기록)을 불러들이는 괴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 영화는 특이하게도 여러 가지 측면에서 비판을 받고 있는데, 그 논쟁 자체가 한국 사회의 '가치' 지형을 말해주는 의미심장한 풍경이라 할 만하다. 논란의 소용돌이를 일으킨 7가지 쟁점을 정리해보자.
이미지 원본보기영화 '군함도'가 촛불 집회를 연상시키는 장면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사진=CJ엔터테인먼트
#1. '국뽕' 논란
박근혜 정권을 비롯한 10년간의 보수 정부는 일본과의 해묵은 역사적 앙금을 정리하고 새로운 국가관계로 나아가겠다는 의욕을 보인 바 있다. 이 때문에 정상적인 '과거사 청산'을 더욱 꼬이게 했다는 평가를 받은 전 정권들과 차별화를 꾀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 초기에 나온 영화 '군함도'는 묘한 정치적 뉘앙스를 함께 지니게 된다.
일본이 이미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신청을 해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은 '군함도'가, 인류문화가 내세울 가치와는 다른 얼룩진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다는 내용이 드러날 수 밖에 없는 영화 '군함도'는 일본 정부를 불편하게 할 수 밖에 없었다. 해저탄광에서 있었던 일제의 잔혹행위와 강제노동 실상이 현실감 있는 영상으로 비주얼화한다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이었을 것이다.
영화 전체의 스토리는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시키는 것이 사실이다. 임금과 노동의 부당한 착취 현장이 그려지고 안전에 대한 부방비의 작업환경으로 어이 없이 죽어가는 노동자의 모습들이 적나라하게 노출된다. 영화의 말미에 가서, 일제의 패색이 짙어지면서 군함도의 참상을 감추기 위해 일본이 섬 안의 조선인 전부를 갱도에 넣고 폭파시켜 죽이려 한다는 첩보가 등장하는 건, 물론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영화적 상상력이다.
따라서 이 전멸의 위기를 탈출하기 위한 조선인들의 극렬한 저항 또한 '기록'에 없는 이야기일 뿐이다. 이 대목이 '국뽕'논란의 핵심일 것이다. 관객의 '실소'를 불러일으킨 조선인들의 촛불시위는 지난 겨울의 광화문에 대한 '추억 서비스'같은 느낌이었다. 촛불민심이 탄생시켰다고 스스로 자임하고 있는 이 정부가 이 장면을 어떻게 읽어낼지 궁금할 정도다.
갑작스럽게 최정예 솔저로 '변모'한 조선인 탄광노동자와 위안부들의 맹활약도 비현실적인 기분을 돋운다.어리숙한 일본인 감시병들을 속이고 죽이는가 하면 총알이 난무하는 전투 가운데서 스펙타클한 대탈출의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욱일승천기를 배를 가르듯 잘라내는 장면, 일본인 관리자를 불로 태우고 그것도 모자라 목을 쳐내는 잔혹한 처단을 하는 모습도 영화의 카타르시스 장치라고만 보기에는 개운찮은 기분이 있다.
이미지 원본보기영화 '군함도' 스틸 컷
#2. '친일영화' 논란
두 명의 조선인 악당이 등장한다. 독립운동 진영의 인사로 알려진 윤학철(이경영)은 실제로는 군함도의 조선인을 착취하고 이용하는 친일파였다. 또 조선인 광부들을 잔혹하게 관리하는 노무계원 종구(김민재)도 조선인이다. 이 두 사람은 순수하게 영화 제작자들의 상상력에서 빚어진 캐릭터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들이 실제 인물이 아니기에 발생하는 것 같다.굳이 군함도에 이 두 사람을 투입한 류승완감독의 의도가 뭐냐는 점이다. 군함도 문제가 담아낼 수 있는 비교적 상식적인 스토리 구도는 일제의 착취와 조선인 징용자들의 저항일 것이다. 그런데 감독은 그 사이에 조선인 친일파를 집어넣어 대결 구도를 복잡하게 만든다.
객석의 비평자들은, 스토리 속에 친일파를 집어넣어 부각시키는 바람에 오히려 일본의 폭압을 희석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한다. 일본과 조선인의 긴장 구도에서 조선인과 조선인의 갈등구도에 주목하게 함으로써, 사실상 일본의 원초적인 죄악을 '사면'해버린 듯한 인상을 받았다는 얘기다. 이런 논리가 뜀박질을 하면서, 이 영화는 결국 일본을 도와준 '친일'영화라는 논점을 만들어낸다.
물론 이런 친일파 투입에 대한 옹호 논리도 만만찮다. 우선 일제의 조선인 노동자 학대만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은 너무 단조로울 가능성이 있기에 다른 이야기 장치가 필요했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끌어갈 경우, 일본의 군함도 문화유산 등재에 대한 원색적이고 단선적인 비난의 메시지만을 담게 되어 오히려 영화적인 상상공간이 축소되면서 '사실 관계'에 예민해지고 외교적인 역풍을 부를 우려도 있었다.
개연성 논리도 등장했다. 일제 당시에 조선인 친일세력들이 조선인을 괴롭히는 사례는 일상 속에서 비일비재했으며, 그런 역사적 사실을 참고해 스토리 공간을 꾸미는 게 지나친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미지 원본보기영화 '군함도'가 개봉 이�z날까지 150만을 불러모았다./사진-CJ엔터테인먼트
#3. '친일파'가 꼭 필요했나
이 영화가 '반일'보다 '반친일'을 부각시킨 것은 정치적인 함의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 보수정권이 친일과 절연하기 어려운 역사적 기반을 지니고 있다는 인식과, 그것을 새로운 정부에서 다시 바로잡아야 한다는 의견이, '반일' 영화인 '군함도'에서 슬며시 부전지로 첨부됐다고 보는 것이다. 정권이 뒤집힐 때마다 '과거사 청산'은 익숙한 화두로 떠오르는 경험에 우리 모두는 익숙하다.
과거사 청산은 왜 끊이지 않는 문제가 될까. 정의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은 나라의 비극이라고 볼 수 있다. 정의가 단지 텍스트 속의 이론일 뿐, 교과서 바깥에서 현실화하지 못한 나라에서는 누구도 자신있게 정의를 권장할 수 없는 '가치체계의 이중성'에 시달릴 수 밖에 없다. 교과서에 기록된 정의가 신뢰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미지 원본보기영화 '군함도'의 윤학철을 연기한 이경영.
진상을 규명하고 부당 이익이나 권리를 취한 자를 문제 삼고 피해를 본 사람의 현실적인 명예를 회복하는 일이 친일파와 관련한 문제의 핵심이다. 과거사의 가치가 정상적으로 매겨지지 않은 채 매몰되어 있는 이 나라에서 우린 무엇을 위해 살 것이며, 무엇을 지키며 살 것인가. 그것이 공허해지면 삶은 정상적인 지표를 지니기 어렵다.
중국에서 10년 전에 만든 영화 '색계'(2007)는 보기 드물게 친일파에 대한 중국인의 고뇌를 담고 있다. 1942년 일제 감점하의 상하이에서 활동하는 대학생 항일단체는 친일파 처단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국력의 열세로 나라를 빼앗긴 상황에서 끓어오르는 증오를 직접적인 원인제공자에게 퍼붓지 못하고 비열한 동족에게 퍼붓는 현상은 중국 또한 다르지 않았다. 왕치아즈는 구약성서의 유디트처럼 나서 친일파 이대장에게 자기의 몸까지 내주며, 중국인들의 증오에 기꺼이 복무한다.
'군함도' 감독은 이런 근원적인 감정을 일제 강점기의 스토리 속에 넣어 깊이를 부여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암살'이나 '밀정'이 지닌 흥행공식을 참조했을 가능성도 있다. 문제의 핵심은, 친일파 소재 자체가 부적절했다기 보다는 그것이 제대로 스토리에 녹아들지 못함으로써 겉절이 분노를 자아내게 했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노무계원 종구는 많은 역사적 기록이나 스토리 속에서 낯익은 일제 앞잡이로 생계형에 가까운 '저열한 친일만행'을 일삼는 존재다. 그는 아마도 목욕탕 결투에서 경성 깡패 최칠성(소지섭)에게 나가떨어지는 순간, 그 배역의 핵심을 다 했을 것이다.
윤학철은 군함도의 조선인 노동자를 대표하는 '정신적 리더'로 행세하고 있지만, 그 실상은 일본과 결탁해 노동자 착취와 부당한 관리를 일삼는 인물이다. 이 지식인 리더의 이중성을 영화가 부각시키는 과정에서, 조선노동자들에 대한 학대가 '일본'에게서 직접 나온 것이 아니라 이 친일파의 계략과 술수에서 나온 것으로 읽히게 된다. 윤학철에 대한 공분은, 이 영화를 격렬한 '반친일파' 영화로 변형시켜놓은 셈이다.
굳이 군함도 속에 '역사적 증거기록'도 없는 친일파 스토리를 이토록 비중 있게 넣었어야 했을까. 이것이 순수한 창작 의지에서만 생겨난 것일까. 아니면, 여러 가지를 고려한 '다탄두'의 모티프였을까. 종구는 목을 꺾어 죽이고 학철은 군중 앞에서 칼로 베임을 당하는, '친일에 대한 살벌한 단죄' 또한 대중적인 기분에 편승하는 영화적 장치였을 것이다.
류감독은 이 문제에 대해 이런 의견을 내놓고 있다.
"친일에 편승해서 이익을 추구하고자 하는 인물들이 있었습니다. 친일파들이 있었던 것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친일파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그려야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친일파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아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병이 난 걸 알아야, 어디가 아픈지 알아야 낫지 않습니까. 일재 잔재를 청산해야 한다고 생각으로 만든 부분이 있습니다."
이미지 원본보기'군함도' 스틸 /사진=CJ엔터테인먼트
#4. 상영관 독과점에 공분하다
수요일은 5000원으로 영화를 볼 수 있는 문화의 날이다. 7월 마지막 수요일은 '군함도' 개봉일이었다. 제작 배급사인 CJ E&M은 전국 2,575개의 스크린에서 2,168개의 스크린을 확보해 26일 첫날 97만 여명의 관객을 모았다. 멀티플렉스에 갔는데 한 편의 영화가 10개중 8개를 차지한 상황으로 관객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었다. 3대 멀티플렉스(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에서 개봉이 배제된 봉준호의 '옥자'는 111개의 스크린을 확보했다. 6월 29일 개봉한 이 영화는 한달 가까이 상영했으나 관객은 30여만명을 넘지 못했다.
영화 마케팅 관계자들은 한국에서 '1천만 관객 영화'를 만드는 것은 사실상 상영관 놀음이라고 노골적으로 말한다. '군함도'의 제작비는 220억원이었고 손익분기점은 700만 관객 정도라고 한다. 마케팅 비용을 더하면 1천만명 이상은 들어와야 수지 타산이 맞다는 결론이다. CJ E&M은 이런 상황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관객의 '볼 권리'를 제한하는 상영관 독식이 부를, 여론의 비난을 감수하고 무리수를 감행했다.
파문이 커지자, 류감독이 나서서 사과를 했다.
"이번 독과점 논란 중심에 제가 만든 영화가 서게 되서 대단히 송구스럽습니다. 저 역시 이 문제에 대해 오래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영화 단체들이 독과점 문제를 오래 논의하고 개선 대책을 세우고 있습니다. 저도 감독 조합이나 회원들과 같이 얘기를 하면서 이 문제의 개선 방향을 찾고 있습니다. '군함도'는 예술 영화 전용관까지 들어가는 만행을 저지르면 안된다고 봤습니다. 하지만 감독과 제작사가 미치지 못하는 문제들이 있더군요. 다들 당황하고 있습니다. 배급사 쪽에서도 이렇게 잡힐 줄 몰랐다고 하더군요."
이미지 원본보기3일부터 일주일간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 옥외 전광판을 통해 상영된 '군함도(정식명 하시마·端島)의 진실'이란 홍보영상에서 일부 사진이 잘못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다.[이미지출처=연합뉴스]
#5. 역사 왜곡 논란
(1)영화 '군함도'의 역사 왜곡 중에서 먼저 등장하는 것은 이곳의 참상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비좁은 갱도 속으로 진입하기 위해 어린 소년들을 잡아와 노동을 시켰으며 평균기온 40도에 습도 95%의 해저 갱도에서 메탄가스가 폭발해 천장이 붕괴되는 사태도 잦았다고 한다. 바닷물이 들이쳐 피부가 썩는 일도 있었다. 매일 구타와 학대가 있었고, 굶주림의 문제도 심각했다. 탈출하려 뛰어내렸다가 시신이 되어 둥둥 떠있는 경우도 있었다. 악단장 이강옥이 딸 소희에게 음식을 가져다 주거나, 일본인에게 뇌물을 바치는 장면은 당시 조선인들의 상황을 오해하게 했다는 지적이 있다.
일본 측에서는 당시 군함도에 상당한 수준의 복지시설이 갖춰져 있었고, 정상적인 광산업 경영이 진행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들은 오히려, 영화가 상황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만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월급에 대한 영화 속 언급은 사실이었다. 그들은 한달 50엔을 받았는데, 식사비, 숙소비, 속옷 구입비, 세금과 건강보험료, 작업 도구 대여비를 공제하고 실제로 받는 돈은 5엔이었다. 그 5엔마저 정부 채권구매 명목으로 떼어가 수입은 아무 것도 없었다고 한다.
당시 군함도에서 타계한 조선인 노동자는 100여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사망 뒤 장례식은커녕 시신을 소각해 버렸다. 위령비가 세워졌으나 현재 일본에 의해 폐쇄된 상태라고 한다. 군함도에 징용된 노동자와 그 후손들은 일본이나 일본 기업으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나 보상도 받지 못했다.
(2)군함도 속 조선인 노동자를 친일파 지식인이 갈취했다는 이야기 구도는, 영화적 재미를 넘어서서 '상상력'으로 조선인을 부당하게 모욕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볼 수 있다. 역사 속의 픽션 또한 대중적이고 상식적인 공감을 벗어나 사실을 오도할 가능성이 있다면 무한한 자유를 누릴 수는 없는 게 사실이다.
'군함도의 친일파 지식인'은, 식민지 환경 속에서의 갈등을 일제와 조선인의 구도에서 조선인과 조선인 구도로 각인시키는 측면도 지니고 있지만, 감독이 어떤 의지를 담아 친일파를 단순하고 잔혹하게 처단함으로써 어떤 메시지를 뿜어내도록 구성해놓은 점도 불편함을 준다.
(3)일본이 자신들의 군함도 만행이 드러날까 두려워해, 섬 안의 조선인들을 모두 갱내에 몰아넣어 죽이려고 하는 상황도, 역사 속에선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이다. 또한 이런 상황에 처하여, 400명이 대대적인 탈출을 감행하는 장면 또한 팩트가 아니다. 실제 군함도에서는 이런 학살 기도나 대규모 탈출이 밝혀진 바 없고 비슷한 사건도 일어난 바가 없다.
이와 관련해 일본인과 조선인이 벌인 치열한 '교전'도 없었으며, 살아남은 조선인들이 배를 탈취해 어디론가 떠나가는 상황 또한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것일 뿐이다. 군함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면서도, 이 영화가 표현하는 가장 인상적인 대목(조선인 대탈출극)은 모두 허구라는 점이 뭔가 허탈하다.
이미지 원본보기영화 '군함도'의 폭력배 칠성(소지섭)과 위안부 말년(이정현).
#6. 경성 반도호텔 악단장이 군함도 슈퍼맨
뭔가 착오에 의해 비정상적으로 합류해, 스토리의 중심을 통과하는 주인공의 설정은 영화가 자주 쓰는 클리셰이기도 하다. 악단장 이강옥(황정민)과 그의 딸 소희(김수안)의 감초 역할과 빼어난 연기는 영화를 지루하지 않게 하고, 감성적 코드를 이어가는 핵심이다.
아빠를 따라왔다가 졸지에 위안부 자리에 앉게 된 소녀의 설정은 다소 불편한 이야기로 진행될 수도 있었지만, 그녀의 다채로운 연기력과 울고 웃기는 표정으로 배역에 생기를 더했다. 군함도 내에서 가장 요령 좋은 능력자로 활약하게 되는 이강옥을 마치 접신한듯 풀어낸 황정민의 내공 또한 눈부셨다.
그런데, 문제는 황정민의 캐퍼가 광복군 요원 박무영(송중기)의 실력과 합쳐지면서 거의 슈퍼맨처럼 활약하는 상황이, 이 영화를 '오락예능'에 가깝게 만든다는 점에 불만을 지니는 이도 있다. 그의 정보력과 행동력, 뇌물을 쥐여주는 섭외력과 때론 적재적소에 등장하는 상황 예측력, 거기에다 엑소더스 고공사다리를 다시 세우는, 모세 뺨치는 결단의 리더십까지.
하기야 광복군 측이 미군의 원자폭탄 투하를 일본 정보당국도 몰랐던 사이에 이미 꿰뚫고 있는 '놀라운 상황'까지 전개되고 있는 점에 비하면, 그 정도는 약과일지 모르겠다. 이강옥이 딸 소희에게 노래(희망가)를 부탁하며 눈을 감는 장면의 페이소스는 막판 대중적 흡인력을 극대화시킨 장치임엔 틀림없다.
이미지 원본보기영화 '군함도'의 종구 역을 맡아 열연한 김민재.
#7. 류감독이 너무 힘을 줬다?
중국에서 위안부를 전전하다가 군함도로 건너온 말년(이정현)과 경성 최고의 주먹인 칠성(소지섭)은 군함도에서 위안부와 탄광노동자로 생활하지만, 서로에게 연민을 느낀다. 원래는 유곽에서 말년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있었다고 한다. (이 장면은 편집됐다) 칠성이 빨래터를 지나며 그녀에게 슬쩍 과일을 던져주는 장면은, 이들 러브라인에 대한 놓칠 수 없는 암시였다.
그런데 대전투가 시작되자, 말년은 5kg이 되는 총을 들고 싸웠다. 위안부가 갑자기 전사로 변신하는 것은 좀 낯설 수 밖에 없었다. 총을 맞고 쓰러진 말년에게 팔베개를 해주고 그녀와 함께 전장에서 죽어가는 모습은, '팬터지'를 뿜어내는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이들의 사랑이 영화 '군함도'를 꽉 채울 순 없었지만, 갑작스럽게 순애보처럼 등장한 이 장면은 영화의 정체성을 물어보게 하는 측면이 있다.
송중기의 박무영 역은 눈빛이 좀더 무겁고 진지해졌다는 것을 빼면 '태양의 후예' 유시진대위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았다는 지적이 있다. 그의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이 군함도 탈출이라는 거대한 작전을 구상하는데에는 적절했다는 평가다.
다만 이렇게 이미 검증된 스토리들의 '흥행요소'를 제대로 풀어놓고자 하는 감독의 욕심과 강박이 오히려 영화의 맛과 재미를 줄였다는 혹평도 있다. 길고 어지러워졌다는 것이다. CJ E&M의 지원사격을 받고 황정민, 송중기, 소지섭에 이정현과 아역 김수안이 출격한 당대의 '역작(力作)'에서, 정작 류승완 감독이 발휘했어야할 미덕은 그 힘을 지금보다 조금만 더 빼는 것이 아니었을까 라는 지적들은 그래서 귀에 쏙 들어온다. /빈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