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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nsom Lee Aug 17. 2017

당신은 죽은 사람과 연결되었습니다

죽기 전에 벗어날 수 없다, 영화 '위고온'

































(스포 조금 有)



2016년 개봉한 영화 '위고온(We go on)'. 클락 프리먼(마일즈 역)이란 배우의 화면 가득한 표정연기를 인상적으로 기억하게 된다. '위고온'은 무슨 뜻일까. 우리는 삶은 그때 뿐이며 죽고나면 아무 것도 남지 않고 사라져버린다는 신념을 '과학'이란 종교를 통해 습득한뒤 그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위고온은, 죽음 뒤에도 뭔가 계속되는 것이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인간은 태어나고 죽지만, 태어나고 죽는 것 바깥에도 무엇인가로 진행되고 영속되는 것이라는 생각은, 많은 종교들이 제시하고 있는 비전이기도 하고, 불교 같은 수행이나 노자의 사유나, 심지어 단군 천부경의 일종무종일에도 드러나는 생각이다. 


영화는 사후세계가 존재한다는 증거를 보여주는 사람에게 3만 달러를 주겠다는 광고와, 그를 보고 몰려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세 살 때 아버지를 잃고 광장공포증, 폐소공포증, 고소공포증, 흔들림 공포증 등 복합공포증을 앓고 있는 마일즈는, 유산으로 받은 돈을 다 써서라도, 죽음과 그 뒤의 문제에 대해 알고 싶었다. 


비교적 빠른 전개와 군더더기 없는 빼어난 영상들, 관객의 생각을 추동해가는 스토리텔링 솜씨 등이 B급영화답지 않은 몰입도를 선물한다. 첫딸이 중학교 시절 내게 심각한 말투로 물었던 기억이 난다. "아빠,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거야? 내가 없어도 세상은 그냥 멀쩡하게 잘 돌아거는 거지?" 


그 질문이 어찌 사춘기 시절 한때의 궁금증이기만 하겠는가. 나 또한 삶의 빛 아래로 스며드는 죽음의 그림자를 요즘 가끔 떠올리며, 살았다는 것이 누구의 기억에 찍히는 것이며 나의 소멸로 사라지는 나의 생의 기억들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응답없는 질문들을 해보고 있는 중이라, 이 영화가 나를 터칭하는 게 있다.


유령이나 귀신이나 임종 장면에 대한 공포는 모두, 죽음이 임재하고 있는 생이 한사코 그것을 피하려는 방어기제라는 것을 영화도 웅변한다. 죽고싶지 않다는 것보다 더 간절한 것은 사라지고 싶지 않다는 것일지 모른다. 


살았다는 이 모든 것이 고스란히 지워진다는 완전한 무화에 대한 두려움이, 삶을 질투하는 죽음들의 이미지로 진열되기만 해도 우리는 소스라치며 도망치는 것이다. 귀신은 우릴 공격하지 않는다. 귀신을 보고 그것을 없애야겠다는 우리 내부의 적의가 우릴 공격하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영화를 통해 다시 읽게 된다. 


영매(靈媒) 조세피나는, 마일즈에게 죽은 사람(넬슨)이 연결되었다고 말해준다. 그리고 연결된 살아있는 사람이 죽기 전까지는 넬슨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마일즈는 이 망령을 어떻게 떨칠 수 있을까. 이것은 이 영화를 생기있게 하는 흥미로운 질문이다. 


또 하나, 어린 시절 부모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마일즈는 아침마다 서로 자신을 유치원까지 데려다주겠다고 입씨름을 하는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선택을 하곤 했다. 행복한 시절의 이미지를 만들어낸 한 컷이지만, 여기엔 복선이 있다. 두 사람은 왜 자신이 아이를 데려다줘야 하는지 그럴 듯한 이유를 내놓는 게임을 했다. 이후 아빠는 자살을 했고 엄마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살인까지도 마다 않겠다는 심경으로 그를 지키고 있다. 마일즈를 데리고 가야할 사람은 누구였을까. 죽은 사람이었을까, 살아있는 사람이었을까. 그 선택은 생사를 결정하는 리모콘처럼 느껴져 소름이 돋는다. 




(제35회 브뤼셀 판타스틱 영화제 은까마귀상 수상작.)/빈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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