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는 왜 끔찍한가
흑돼지를 사육하는 농가를 한 여성리포터가 찾아갔다. 리포터는 수다스럽게 돼지농장의 주인과 얘기를 나눈다. 농촌스럽게 생긴 농장주는 흑돼지를 키우는 방법에 대해 열심히 설명한다. 그걸 왜 듣고 있어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리포터는 시종 고개를 끄덕이며 놀라기도 하고 재미있어 한다. 그녀는 그런 틈틈이 어린 돼지의 등을 쓰다듬기도 하고 돼지의 꿀꿀거리는 소리를 흉내내며 익살을 떨기도 한다.
저 돼지 너무너무 귀엽죠? 어머나 정말 귀요미.
그녀는 모성애 가득한 목소리로 시청자들에게 동의를 구한다.
그런데 화면이 바뀌고 그녀는 김이 모락모락나는 음식상 앞에 앉아 있다. 방금 저 앞에서 꿀꿀거리던 돼지 중의 한 마리가 요리가 되어 올라와 있다. 아까 돼지와 친구였던 리포터는 이제 그 고기를 뜯어먹는 시식자가 되어 군침을 꿀꺽 삼킨다. 벌겋게 양념을 친 흑돼지 구이 앞에서 그녀는 다시 시청자에게 동의를 구한다.
와아, 정말 푸짐하죠? 너무 맛있겠죠?
그러더니 젓가락으로 한 점을 집어서 입을 쩍 벌리고는 밀어넣는다. 카메라는 리포터 입 속의 혀가 움직이는 모양, 그리고 고기를 꼭꼭 씹느라 입 속이 우물거리는 모양까지도 리얼하게 잡아낸다.
이제 그 리포터의 피와 살이 되어가는 흑돼지를 보면서 나는 몹시 민망한데 그녀는 아까의 일을 금방 까먹은 것 같다. /빈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