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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마주 May 17. 2023

이혼이 쉬운 줄 알아?

그 쉽지 않은 걸 제가 해냈습니다.


다시 살 수 있지 않을까?

저런 남편이라도 있는 게 나은 거였을까?


이혼하길 잘했다 생각하며 씩씩하게 살고 있지만 한 번씩 내 선택에 의문을 갖게 되는 순간들이 온다.


이혼 전, 그 사람은 다른 여자와 살고 있으면서도 아이를 핑계로 계속 집에 드나들며 이혼은 생각할 수 없도록 나를 설득했다. 주말이면 집에 와서 아이를 데리고 셋이서 동물원이며 미술관이며 다니다보니 오히려 이게 더 좋은 게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같이 살 때는 혼자 놀러다니느라 주말이고 평일이고 집에는 밤늦게 들어와 잠만 자고 나가거나 새벽부터 나가기 일쑤였는데, 집을 나가더니 어느새 착실한 아빠인 척 주말마다 집에 들어와 함께 뭘 하면 좋을지 일정을 계획하고 있었다.

분노도 상실감도 어느새 희미해지고, 나도 모르게 같이 밥을 먹다가 그 사람한테 갑자기 평소처럼 말을 걸기도 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는데 이대로 내가 조금만 참으면 그냥저냥 다시 보통의 가정인 것처럼 살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다들 사이 좋아서 사는 것도 아닌데 정말 저 사람 말대로 나만 조금 참으면 되는게 아닐까.

이런 생각이 피어올랐다.


“나하고 헤어진들 세상에 대단한 남자 없어. 그나마 내가 나아.”


가출한지 얼마나 되었을까, 자기가 집에 돌아오려면 이 사실을 아무도 몰라야 한다며 부모님한테도 얘기하지 말라는 말에 나는 바보 같이 모든 고통을 혼자 떠안고 밤마다 잠못들고 있었다.

그 고통이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질 무렵 나는 이혼하자고 말했다.

나를 진정으로 사랑해주는 사람 찾아서 나도 내 인생을 찾고 싶다고.

(저렇게 진심으로 생각했던 건 아니고 이렇게 계속 살거면 그냥 다 말해버리겠다는 협박에 가까웠지만.)


근데 그 사람은 나의 말을 비웃으며 얘기했다.


"그런 사람이 있을 것 같아? 세상 남자들 다 비슷해. 나는 그래도 술도 안먹고 돈도 잘 벌어다 주잖아. 이혼 그거 쉽지 않아. 그냥 지금처럼 너가 조금만 참고 살면 애한테는 더 좋을걸? 이혼하고 혼자 애 키우면서 어떻게 살려고 그래? 주변 사람들도 다 떠나가고 외롭게 사는 거 견딜 수 있겠어? 너 여태 편하게 살았잖아. 지금처럼 조금 참고 내가 주는 거 누리면서 편하게 살아."


저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나의 무기력한 상황 때문에 저 말이 너무나 맞는 말 같았다.

여태 집을 얼마에 샀는지, 대출이 얼마나 있는지, 돈이 얼마나 있고 얼마를 더 쓸 수 있는지, 이런 고민이 없이 살기는 했으니까. 이런 삶을 살면서 밖에서 딴짓하느라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남편한테 보여줄 수 있는 화내는 방식이라고는 '밤늦게 남편카드로 쇼핑하기'가 전부였다.



저런 말을 듣고도 반박도 못하고 화낼 수도 없는 내 자신이 너무 비참하고 서글펐다.

이혼은 정말 쉽지 않고 불가능한 선택지인 것처럼 보였다. 여태 참고 살았으니 앞으로도 내가 참는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나는 무딘 사람이었고, 정말 어지간한 고통도 참아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 때는 그게 내가 가진 유일한 능력인 것처럼 보였다.



지나고보니 정말 이혼은 쉽지 않았다.

주변을 돌아봐도 이혼은 쉽지 않다.



이혼이 쉽지 않은 이유는 


첫번째, 홀로서기가 어렵고

두번째, 주변의 시선과 반응이 두렵고

세번째, 서로의 의견을 맞추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 모든 과정을 지나고 나니 이혼은 안하는 것이 백번 낫다.

그리고 제일 좋은 건 애초에 이혼이 우려되는 결혼을 안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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