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영화 <우리들의 교복 시절> 리뷰
DIRECTOR. 촹칭션(CHUANG Ching-Shen)
CAST. 천옌페이(Yan-fei CHEN), 항첩여(Chloe XIANG), 치우이타이(Yitai CHIU) 외
PROGRAM NOTE.
1997년. 제1여고 입학시험에 실패한 아이는 엄마의 강압에 못 이겨, 제1여고의 야간 학생이 된다. 같은 교복을 입지만 명찰의 색이 다른 주야간의 학생들은 교실을 공유하는데, 아이는 주간 학생 민과 책상을 나눠쓰게 되면서 단짝 친구가 된다. 민과 함께 민의 교복을 입고 주간 학생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던 아이는 어느 날, 루커를 만나 미묘한 설렘을 느끼게 된다. 아련한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학업 성취도에 따른 계급 사회의 축소판이기도 했던 그 시절의 학교를 배경으로, <우리들의 교복 시절>은 십 대들의 사랑과 우정, 좌절과 성장의 스토리를 담백하고 솜씨 좋게 풀어 간다. <침묵의 숲>(2020)으로 금마장 신인배우상을 수상한 진연비(천앤페이)를 비롯한 대만의 연기파 신인배우들이 주연을 맡아 풋풋한 성장 드라마를 완성했다. (박선영)
생각해 보면 조금은 이상한 시절이었다. 모두 똑같이 소중하다는 말이 교과서 속 혹은 박물관의 유리벽 속에나 존재하던 시절. 모두 똑같이 소중한 제일여고 학생이라면서 주간반과 야간반 학생들의 명찰 색깔을 다르게 하고, 거기에 굳이 태양과 달이라는 의미까지 부여해 달이 발광체인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만드는 것이 정말로 "똑같은" 것일 리 없다. 역시나 주간반과 야간반에게는 입학 첫 날부터 사뭇 다른 공지사항이 주어진다.
입시를 대하는 1997년 대만 풍경은 한국 사람들에게도 꽤나 익숙하다. 구체적 양상은 조금씩 달라도 큼직한 정서만큼은 같다. 아이의 어머니가 아이에게 한 "여자는 사범대가 제일이야" 같은 말, 당시 훨씬 어린 나이였던 나조차 심심찮게 들었던 말이니까. 어른이 되고, 그 시절 그 분들이 진심으로 현실적인 조언을 해준 것임을 이따금 실감할 때조차, 내가 아이의 나이가 될 때까지 쭉 이어진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반사적으로 느꼈던 갑갑함을 부정하지 않는다.
어른들은 자꾸 사춘기의 아이들을 채근한다. 어른들의 마음도 이해는 간다. 당시 입시의 중요성이란,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손쉬운 기회로 보였을 테니까. 인생의 가치를 서열화하고, 그 계단에서 조금이라도 더 높은 곳에 올라,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 추후의 노력으로 뒤집기에는 너무 어려운 것. 요즘은 많이 무너지고 있다지만 90년대와 그 이후 꽤 오랜 시간, 학벌은 그런 의미로 많이 받아들여졌으니까.
대입도 아니고 고입 시험에서부터 그런 소외감을 느껴버린 아이는, 투명인간 취급을 받지 않기 위해 거짓을 쌓는다. 그런 아이를 누가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동경하는 친구 민, 자꾸 설레는 대상 루커... 그런 사람들 앞에서 발돋움을 해보려는 마음이었을 뿐인데. 그러나 이런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해도 거짓은 거짓이라, 결국 거짓들은 핑퐁핑퐁 튀어오르고, 누구도 못되게 굴지 않은 상황 속에서 아이들은 제각각의 상처를 받는다.
흔히 '친한 두 (여성) 친구가 동일한 한 남성을 좋아하게 된다'는 설정을 중심에 두는 구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우정과 사랑이 서로 경합을 벌여야 하는 게 싫고, 그 과정에서 더 소중한 감정들이 배척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이런 설정을 사용하면서도 과하게 중심에 두지 않는다. 우정과 사랑이 서로 경합을 벌이는 대신, 불평등한 현실의 감각과 퉁 부딪힌다. 이어폰으로 음악을 나눠듣고 탁구를 치며 90년대 청춘을 아름답게 회상하는 동시에, 그 아름다움보다 평등하지 못하다는 감각이 앞서는 슬픔을 보여주는 식이다.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청춘이 드러난다. 사실 아름답기만 한 청춘이 어디 있나.
우리가 대만 청춘영화에 기대하는 풋풋하고 싱그러운 정서들을 충분히 가진 영화다. 동시에 성인의 시각에서 청소년기를 산뜻하게만 그리며 얄팍해지는 대신, 내면에서 끊임없이 재난 경보가 울리는 시기라는 점도 명확히 짚는다.
"다 너희를 위해서 하는 말"이라는 말을 긍정할 수 있게 된 후에도, 나는 그 시절 내가 느꼈던 갑갑함을 부정하지 않는다. 사춘기가 그런 시기 아닌가. 나도 아직 나를 잘 모르겠는데 남들에게 내가 어떻게 보여야 할지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혼란스러움, 할 일은 많지만 지금 하고 싶은 일은 그게 아닌 것 같은 따분함, 마음의 가장 연약한 속살을 마주할 때마다 남들의 껍질은 참 단단해 보이기만 해서 계속 느끼는 초라함과 질투, 나 스스로도 내가 너무 어리고 서툴러 가끔은 나 자신을 견디는 게 벅차서 폭발할 것 같은 마음들까지.
이 영화는 그 나이의 모든 것을 끌어안는다. 다시 오지 않을 시절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듯이. 재난만 있던 시절도 아니고, 아련함만 있는 시절도 아닌 그 시절에게. 때로는 거짓으로 위로 받은 마음조차 거짓은 아니었다고 끌어안으며, 영화에 나온 대사를 축복처럼 건넨다. May the Force be with you!
10/05 20:0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6관 (상영코드 202)
10/06 12:0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6관 (상영코드 264)
10/08 17:00 영화의전당 중극장 (상영코드 3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