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람들은 죽을 줄 알면서도 그 길을 걸어가는가
내가 모르는 세계는 아주 많이 있다. 나는 내가 상상하는 단 하나만의 세계를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대와 문화와 인종과 성별과 종교 같은 것들을 넘어선 실존하는 세계에 대해 내가 아는 바는 없다. 그러므로 나는 '밀정'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정신세계를 도저히 짐작조차 못하겠다. 그들은 어째서 죽기 위해 직진하는가. 그들이 숱하게 겪은 사건들은 그들을 어떤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나는 그것들을 상상할 수가 없다.
영화를 비롯한 예술분야의 주된 책임 중 하나는 이곳에 있다. 내가 겪지 못할 세계를 작가의 눈으로 펼쳐 보여주는 것. 그것들을 어떤 방식으로 어떤 눈으로 보여주느냐가 그 예술의 예술성을 담보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이 영화가 아주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한다. 김지운의 방식과, 그의 눈과, 그리고 그의 페르소나가 된 훌륭한 배우들이 모두 좋다.
그의 방식은 그만의 것으로 우아하다. 그의 영화 중 어두운 작품들이 종종 생각났다. 그중에서도 달콤한 인생, 악마를 보았다 같은 것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시대를 포함한 이야기에 흔들리는 눈빛들이 부유하며 새로운 분위기를 만든다. 이것은 순간의 흔들림으로 인생 전체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폭주해버리는 이야기도 아니며, 복수를 위해 악마가 되어가는 인물의 이야기도 아니다. 그러므로 김지운은 다른 방식을 택한다. 도처에 의심이 깔려있는 이 시대에서 김지운은 아주 현실적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영화는 그 주인공을 쫓아가지 않는 듯 보이나, 결국 무언가가 바뀌고 선택하게 되는 인물은 그가 된다. 이 과정이 아주 우아하게, 그리고 아주 매섭게 흔들리며 내달린다.
이 시대를 빌려 이야기한 숱한 영화들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인물이나 사건에 기대어 스크린을 독점하고 흥행에 성공한 영화들이 여럿 있었다. 하지만 그중 누구도 시대 속 인물들의 미시적인 이야기들을 핍진하게 보여준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나는 이 영화의 주인공에 집중한 이 영화에 감탄을 보낼 수밖에 없다. 마지막에 두 번 우는 그 인물의 눈물 성분은 두 번 다 같았다고 생각한다. 그 농도 역시 마찬가지. 따라서 마지막에 라벨의 볼레로와 함께 진행되는 김지운식 피날레는 전혀 아쉽지 않았다. 아주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설득력 있는 엔딩. 그리고 그제서야 눕게 되는 인물의 작은 방까지. 하지만 그 마지막의 컷은 보여주지 않는 편이 나았으리라 생각한다.
왜 사람들은 죽을 줄 알면서도 그 길을 걸어가는가. 그것에 대한 답이 아주 명료하게 이 영화에 있다.
+ 송강호는 이제 반열에 올랐다. 넘버3부터 이어온 그의 연기는 복수는 나의 것에서 정점을 찍고 사도에서 무언가를 뛰어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역시, 송강호는 그만이 할 수 있는 연기를 한다. 공유를 비롯한 한지민과 신성록 등은 나무랄 곳 없는 호연을 펼치고, 특별 출연한 두 인물은 굵고 강렬하게 등장하여 인상을 남긴다.
++ 어쩔 수 없이 약간 암살과 비교하게 되는데, 이쪽이 훨씬 월등한 수작이라고 본다. 음악과 연출과 시나리오, 연기까지 전부 다 해서.
+++ 김지운의 다음 영화는 어떤 장르가 될 것인가, 팬으로서 두근두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