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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래 Nov 06. 2016

'카페 소사이어티'를 보고

파란만장한 인생사에 대한 우디 앨런식 회고

 염세적이고 자기변명적이며 뒤틀린 심사에 비꼬는 언사를 낯선 이에게도 툭툭 던지는 이 작은 아저씨의 영화를 오래도록 좋아하고 있다. 미국을 벗어난 우디 앨런의 최근작들, 그러니까 '미드나잇 인 파리'나 '로마 위드 러브'같은 작품들도 정말 재미있게 봤지만, 그래도 역시 그의 뉴욕 예찬 영화들이 더 좋다. '애니 홀'이나 '맨하튼'같은 70년대 작들에서 우디 앨런 본인이 연기하는 그의 수다스럽고 유머스러운 모습이 좋다.


 그의 가장 최근작인 이 작품은 다시 뉴욕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늙어버린 우디 앨런 대신에 그의 새로운 페르소나인 제시 아이젠버그가 주인공을 맡았다. 이 두 가지 사실은 이 영화를 보는 시점에 꽤 많은 영향을 준다. 예를 들면 바비가 뉴욕 생활에 무기력감을 느껴 할리우드라는 꿈의 도시로 벗어나지만, 결국 그곳의 실상에 염세를 느껴 다시 뉴욕으로 돌아오는 일련의 과정은 우디 앨런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또한 엉클 필의 불륜과 그의 이기적인 결정은 과거의 우디 앨런을 보는 것 같지만, 젊은 바비의 다른 선택은 현재의 우디 앨런이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이야기는 전형적인 우디 앨런식의 이기적인 로맨스로 진행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사랑을 한다. 그리고 이기적으로 그 사랑에 열심이다. 누군가는 25년간의 결혼생활을 종결지을 결심을 하고, 누군가는 새로 사귄 젊은 남자친구와 이미 부와 성공을 이룬 중후한 중년의 남성 사이에서 갈등한다. 자신의 옛사랑과 같은 이름을 가진 여성과 결혼하고, 다시 찾아온 자신의 과거와 아슬아슬한 비밀 데이트를 한다. 여전히 사람들의 일반적인 윤리관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지만, 그것들에 긍정할 수는 없더라도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이지적인 수다와 유머러스한 매력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그것이 우디 앨런식 인물들과 그들 대사에 숨겨진 치명적인 매력 이리라.


 그의 영화에는 경험치가 풍부한 노인이 스카치를 마시며 뱉어내는 중후한 농담이 가득 담겨있다. 그리고 인생의 황혼에 선 사람만이 들려줄 수 있는 교훈적인 이야기가 그리 진부하지 않게 영화 전반에 깔려있다. 그 무수한 수다들 속에서 종종 기억할 만한 대사들이 튀어나올 때면 나는 잠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인물들이 주인공 무리들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화 곳곳의 어느 누가 될지 모른다는 점에서 그의 영화는 더욱 매력 있다.


 그중 하나. 극 중 바비가 이렇게 말한다. '평생 지워지지 않는 감정들도 있나 봐요. 이게 좋은 걸까요, 나쁜 걸까요?' 늙은 우디 앨런은 이미 선택했다. 그로 대변되는 엉클 필은 25년 간의 가정생활을 정리하고, 자신의 진심이라고 믿는 모든 것에 새로운 인생을 걸었다. 하지만 그의 새로운 페르소나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이게 좋은 걸까요, 나쁜 걸까요? 라고. 그리고 또 다른 인물은 이렇게 말한다. '소크라테스가 말했지, "음미하지 않은 인생은 살 가치가 없다" 근데 음미해버린 인생은 딱히 매력이 없어'


 염세적이고 이지적이고 지극히 자기변명적인 데다가 유머러스한 할아버지가 파란만장한 자신의 인생을 굽어보며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이 이 영화의 주제다. 그리고 난 딱히 그것들이 불편하지 않다. 나 역시 자기변호에 특화된 인간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나를 포함한 그 누구라도 자신의 인생 마지막에는 지나간 과거를 미화하고, 적당히 후회하고, 그것들에 연민의 시선을 던지며 인생을 마무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당장 지금의 나 또한(아직 너무나도 젊지만) 내게 지나간 모든 것들을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이 그렇다. 나는 그런 이야기들을 그만의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우디 앨런의 이 영화가 그러므로 퍽 마음에 들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참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 제시 아이젠버그는 정말 엄청나다. 우디 앨런이 정말 다른 젊은 이의 육체를 빌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맘껏 떠드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 게다가 그만의 연기력 역시 탁월하다. 영화 후반부에 달라진 위치의 바비를 연기할 때, 그의 디테일한 몸짓과 표정과 말투 모든 것들이 감탄을 자아냈다. 정말 대단하다.

++ 이 영화의 영상미 역시 언급해야겠다. 아주 선명하게 빛나는 한 때 같은, 따듯한 빛으로 가득한 할리우드와 아련한 듯 뭉그러진 뉴욕의 서늘한 새벽녘까지. 아름답다.

+++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시기의 할리우드에 대해 아는 바 없다. 그래서 분명 알았다면 보였을 카메오나 인물들의 이름이나 사건 같은 것들을 볼 수 없었다. 이것이 조금 아쉬움.

++++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 이별 후 엉망이 된 얼굴로 바비의 집에 찾아온 보니가 울면서 바비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장면. 이 장면에서 우디 앨런식 롱테이크(까지는 아니고 아무튼)에 방안의 전기가 나가며 촛불만 남게 되는 화면 전환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위로와 함께 자신의 기쁨을 조심스레 알리는 바비의 대사들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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