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의 가능성에 힘입은 촌극
많은 인물들의 관계들이 얽혀있다. 사사로운 정으로 얽혀있는 관계도 있고, 수직적인 관계, 이해타산적인 관계들도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 가운데서 모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정확히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움직인다. 그 가운데서 긍정할 수 있는 인물은 전혀 없다. 그렇다고 신선도있는 카타르시스를 안겨줄 수 있는 스토리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결과적으로는 이용당하던 주인공이 극을 어떤 판도 바깥으로 뒤엎는다는 점에서 얼마 전 본 '내부자들'과 연관지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와는 결이 다르고, 이끌어나가는 방식이 다르다. 시간순서를 뒤섞으며 관객을 주도적으로 끌고 나가다가 결국에는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들에게 큰 충족감을 주었던 내부자들과는 달리, 이 영화에는 결정타가 없다. 극중 안남시장이 숱하게 이야기한 '정치'를 모른다는 둥의 이야기와는 다르게, 정작 감독이 정치를 몰랐던 것은 아닌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전혀 내 주변의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인물들이 동작하는 방식에서의 개연성은 있으나 핍진성이 전혀 없다.
감독의 고리타분한 연출도 이에 한 몫 한다. 감독은 '태양은 없다' 이후로 그 시절의 영광을 다시 쟁취하려는 듯 보인다. 하지만 시간은 흘렀고, 그동안 숱한 명화들이 있어왔으며, 관객들의 눈과 수준은 이미 이전과는 천지차이가 되었다. 감독이 격세지감을 느끼기에는 아직도 시간이 필요한 것인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신파스러운 주인공 캐릭터의 설정과 더불어, 더욱 참을 수 없는 것은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터져나오는 전형적인 '느와르식'의 음악들이었다. 사건이 급속도로 진전되는 중반부의 음악과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엇갈린 선택으로 서로를 겨누고 해치는 순간에 터져나오는 음악은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게다가 그 순간의 이토록 진부한 대사라니. '내가 너 살릴거야' 라던지, '너 죽지 않아' 같은 대사들은 이 와중에 탁월했던 장소들에 공허하게 울려퍼진다. 자동차 추격전 씬 역시 마찬가지다. 그 와중에 주인공이 왜 그토록 분노해서 그 자동차를 추격했는지도 이해하지 못하겠는데, 거기에서 현란한 카메라 무빙이 돋보이는 것이 코미디다. 차라리 후보정이라도 완벽했다면 그 촬영에 어느정도의 감탄이 있었을런지도 모르겠다.
아이러니하게도 배우들의 연기는 기대한만큼 탁월하다. 비록 정우성의 깔끔한 이미지에 욕설을 뒤집어 씌운 것이 약간 보기 불편했을 수 있으나, 전체적인 주연배우들의 연기는 정말이지 탁월하다. 특히 곽도원과 주지훈의 연기가 압도적이라고 생각한다. 주지훈은 이전의 불편한 이미지를 벗고 재기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마지막 순간에 갈등하며 보여주는 그의 표정과 (아마도 애드립이었을)탄식과도 같은 대사은 아주 인상적이다. 정우성과 황정민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모범적이고 아주 사적인 그들만의 연기를 펼친다.
별로 줄거리에 대해 이야기하고싶진 않다. 최근의 정치상황이 영화보다 촌스럽고 영화보다 허구스럽기에 우스움이 터지던 것은 이야기할 수 있겠다. 다만 이런 촌극 속에서도 빛나는 인물들이 있었다면 긍정할 수 있을 영화였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부당거래나 신세계를 거쳐 내부자들을 지난 이후 이러한 영화들을 꿈꾸는 시도들이 자주 있어왔지만, 사람들이 그것들을 언제나 지루하다거나 신파적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이 영화 역시 어느정도의 가능성과 기대를 안고 시작하였으나 추락한 영화라고 볼 수 있다. 그것들을 계속해서 신선하게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와 연출을 고민해보아야한다.
+ 마지막에 만식이형이 조금 멋지게 나와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