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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래 Feb 20. 2017

'컨택트'를 보고

결국 하나로 와 닿는 온전한 사랑이야기


 영화에 대한 이야기 이전에, '언어결정론'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 언어결정론이란, 인간은(혹은 지적 생명체는)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에 의해 사고의 수준이나 인지능력의 작동방식, 범위 등이 제한된다는 이론이다. 이는 이론에 불과하고, 확실하게 증명되거나 임상적인 성취가 없기 때문에 이를 믿건 말건 문제는 개인의 자유다. 원작 소설에서 나온 페르마의 최단시간의 원리와 마찬가지로, 뒤집어 얘기해도 같은 말이 되기 때문에 반박될 여지는 충분해 보인다. 예를 들면, 인간이 언어를 사용하며 인지적 능력이 향상되었다고 말하는 것과, 인간의 인지적 능력이 발달하며 언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사이에는 같지만 다른 묘한 차이점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론은 논증하기에 쉽지 않다. 

 하지만 나는 언어결정론을 믿는 쪽에 속한다. 사실 이 흥미로운 이론에 대해 조금 관심이 있어서, 이 영화를 보기 전에도 이런저런 세계의 흥미로운 기삿거리를 찾아 읽은 적이 있었다.(뉴스페퍼민트에게 감사합니다) 시베리아의 부족들에게는 눈을 가리키는 명사가 몇백 가지나 되어서 그들이 바라보는 눈 내리는 풍경은 우리와는 다를 것이다- 정도의 간단한 이야기를 넘어서, 나는 흥미로운 사례들을 몇 가지 더 알고 있다. 예를 들면, 어딘가의 소수부족들에게는 수사가 7(이었던가?) 이상을 표현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부족에게 사과 8개와 9개를 보여준다면? 그냥 '많다'고 생각하고 같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 이상도 마찬가지. 그들에게 7 이상의 수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또는, 다른 부족에게는 왼쪽, 오른쪽, 앞, 뒤와 같은 상대적 위치를 설명하는 어휘가 없다. 대신 그들은 '동쪽, 남쪽, 서쪽, 북쪽'이라는 절대적인 방위로 서로에게 정보를 전달한다. 이 부족은 신기하게도, 망망대해에 표류해있을지라도 거의 정확히 동서남북의 방위를 인지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언어에 의해서 체내에 불가사의한 나침반이 새겨지게 된 것이다. 이 정도 이야기를 듣는다면, 언어가 인간의 어떤 잠재력을 제한한다는 점을 쉽게 부정할 수는 없지 않을까?

 이런 지루한 이야기들을 늘어놓았지만, 이 영화는 매우 세련되고 감각적인 이미지들로 아주 간결하게, 그리고 정말 독창적으로 서사를 진행한다. 아니, 서사라고 말해도 좋을까? 이동진의 말마따나 이것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임에 분명하다. 

 영화의 줄거리나 해석 같은 것들은 뒤로 하고, 내가 놀랐던 점들을 몇 가지 이야기해보자면 이렇다. 일단은 드니 빌뇌브의 이미지가 좋다. 그가 보여주는 미니멀한 영상들(등장하는 개체들의 디자인을 포함해서)이 좋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감각적으로 섬세하게 그것들을 터치하는 세련미가 좋다. 낯선 우주선을 처음으로 조우하며 그것의 아래턱을 높이 든 손끝으로 쓰다듬으며 나아가는 카메라가 대표적이다. 건축적으로 우주선의 아름다움을 표현하자면, 모던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모든 의장과 양식을 지우고 어떠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구조물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모던하고 이보다 독창적인 다른 디자인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의 구성 방식이 놀랍다. 앞과 뒤가 없고 원인과 결과가 혼재되어있는, 이 비선형적인 이야기를 주제를 넘어서 형식으로 치환해 보여주는 감독의 연출 방법이 놀랍다. 더 이어 붙이자면 에이미 아담스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게 훌륭하기도 했다. 드니 빌뇌브가 그녀의 연기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말했다는데, 나 역시 그렇다. 

 하지만 역시 내가 이 영화를 정말 좋아하게 된 것은, 소통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도 아니고, 실제 우주선이 등장했다면 이러겠다는 사실감 때문도 아니고, 그 아름다운 영상미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지극한 사랑, 그러니까 순간순간에 대한 사랑과 삶에 대한 사랑, 그리고 한 사람을 위해서 자신의 많은 것들을 포기하는 그 일자에 대한 사랑이 결국 이 이야기의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영원회귀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실제로 그것을 초극한 초인의 입장이 되어본다면, 그리고 모든 것을 기억한다면, 과연 나는 이 인생을 같은 선택을 통해 살아갈 것인가? 이 질문을 통해서 우리는 지금까지의 인생을 반추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나라면, 아마 인생의 어떤 순간에 분명 후회했을 법한 선택을, 그러니까 그 사건을 목도한 나의 가까운 타인의 의견에서도, 나의 현재 모습을 봐서도 후회했을 법한 그 선택을, 아마 다시 또 반복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니 또 쓸쓸해지고 슬퍼질 수밖에. 하지만 나는 그 순간들을 사랑했고 지워버리고 싶지 않기에 어쩔 수 없다. 그러니 나는 이 영화 속 루이스의 입장을 온전히 이해한다. 하지만 이안 역시 이해한다.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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