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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래 Feb 20. 2017

'너의 이름은'을 보고

기억하지 못하는 누군가를 그리워할 수 있을까?


 본지 꽤 오래되어서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일단 나는 신카이 마코토의 팬이라고 해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왓차에서 그의 이름을 클릭하면 나는 '별을 쫓는 아이:아가르타의 전설'외의 그의 모든 영화를 다 봤다고 나온다. 고등학생 시절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를 보고 그에게 매료된 나는 '초속 5cm'를 통해 그의 팬이 되었고, 그 뒤로 계속해서 그의 신작과 옛 작품들을 찾아보았다. 아직까지도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가 갖는 러닝타임 5분은 내가 갖는 영화적 경험치에서 절대 빼놓기 싫은 소중한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영화는 그대로 해석하자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그리고 자아의 경계마저 뛰어넘은 일종의 소통에 대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설정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한국영화인 시월애나 동감 같은 영화들에서도 볼 수 있는 것으로, 그리 참신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극 중 벌어지는 어떤 사건을 막기 위해 미래의 인물이 분투한다는 점에서는 특히 시월애의 플롯이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에 새로 첨가된 것이 앞에서 말한 다른 설정, 그러니까 다른 시공에 사는 누군가와 초월적인 방법으로 소통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와 몸이 뒤바뀐다는 설정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는 앞서 말한 다른 비슷한 설정의 영화에서와는 다른 감동이 온다.

 기억하지 못하는 누군가를 그리워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나 역시 오래도록 생각해봤다. 소설 7번 국도에서, 가져보지 못한 것을 그리워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해서 생각해본 것처럼,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을 내가 간절히 원해볼 수 있느냐는 질문. 이 영화에서는 그 대답을 '꿈'이라는 메타포로 치환하여 보여준다. 모든 불편한 설정들이 '꿈처럼'이라는 수사로 손쉽게 설명된다. 왜 그의 이름을 잊는가? 꿈과 같은 기억의 처리과정을 통해 우리는 그의 이름을 잊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메타포가 정말 설명하려고 하는 것은, 타자이기 때문에 우리는 잊을 수밖에 없다- 가 더욱 정확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타키와 미츠하의 몸이 서로 바뀌어버렸대도, 그래서 서로 미묘한 동질감을 느끼다가 끝내는 서로에게 애정과 소중함을 느끼어버렸을지라도, 그들은 서로 다른 사람, 즉 타인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의 진심에 다가서지 못하고 언젠간 그들의 슬픔과 아픔을 잊어버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단절을 극복하려는 자세가 영화의 후반부를 내내 지배한다. 불가사의한 힘으로 초월했던 공간들에 가 닿으려는 노력, 그 시간들을 넘어서서 서로를 부르는 목소리, 그리고 끝내 진정으로 상대방의 반절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만나게 되는 그 시간들이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한 매듭이라는 은유처럼 서로 다른 둘을 이어 붙이고 만나게 한다. 

 그런 감동 끝에 만나게 되는 엔딩은 어쩐지 '초속 5cm'를 생각나게 한다. 아니 오히려 감독 자신의 작품에 대한 오마주처럼 보일 정도로 비슷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결국 시간이 지난 뒤 감독이 선택한 단절된 둘의 만남은, 결국 서로를 알아보고 다시 한번 이름을 묻는 과정으로 끝이 난다. 이 부분에서만큼은 이전작과 다른 결론으로 감독을 긍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역시 나는 초속5cm와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를 더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 보이는 어색한 구멍들과 불편한 장면들 때문만이 아니라, 영화의 연출과 흐름 자체가 그닥 매끄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전에 보여줬던 세련된 연출과 기억할만한 대사들, 문장들은 다 어디로 가버린 걸까.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사는 전혀 다른 둘을 이어 붙이는 데는 성공했을지라도, 그 이야기들을 관객이 납득할만하게 연결하는 것에 감독은 어느 정도의 실수를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예컨대 서로의 이름을 이구동성으로 묻는 교차편집에서의 어색함, 쉽사리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 동조해 걷잡을 수 없는 일대 사건을 주도하는 친구들의 납득할 수 없는 우정, 갑작스레 찾아온 눈물과 주인공들이 서로에게 느낀 애정 같은 것들. 긴 호흡의 만화로 보여주었으면 좋을 이야기를 장편영화 한 편으로 내기에는 부족함이 없지 않았다 생각한다.

+ 사실 그래서 이 영화의 국내 흥행성적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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