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봄 떨어지는 꽃잎만큼 아득한
내가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전혀 몰랐던 것들이라고 여겨질 때가 있다. 혹은 내가 이해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나는 사실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는 회의가 들 때도 있다. 내가 사람들을 기억하는 방식이나, 그들에게 쥐어준 키워드 같은 것들이 사실 전혀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내 멋대로 움켜준 것이 아닐까 하는 후회들. 또 영화를 보고 너무 개인적인 감상에 젖은 것은 아닌가 싶지만, 아무튼 그런 생각들을 했다.
중경삼림을 보았다. 금성무가 나왔고, 양조위가 나왔다. 임청하와 왕비는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금성무는 만우절의 이별을 신뢰하지 못하고, 자신의 생일인 5월 1일이 될 때까지 딱 한 달만 기다려보자는 순수한 남자로 나왔고, 양조위는 실연 뒤에 주변 사물들을 위로하는 방식으로 스스로의 이별을 극복하려는 남자로 나온다. 금성무의 이야기와 양조위의 이야기 모두에 대등한 매력이 있지만, 배우로서의 매력으로는 양조위의 승이라고 본다.
영화는 저마다의 매력을 가진 네 배우의 내레이션을 통해 주로 진행된다. 영상과 색감은 네온사인의 빛과 붉고 푸른 골목의 등빛으로 아름답고, 때때로 셔터스피드를 깊숙이 떨어뜨린 주변 인물들의 잔상 속에 천천히 움직이는 주인공들의 동선은 늦봄 떨어지는 꽃잎만큼 아득하다. 하지만 이런 영화적 아름다움 외에 거의 문학적 성취라고까지 볼 수 있는 그 대사들, 그 문장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예컨대 이런 문장들,
'난 실연당할 때면 조깅을 하죠. 온몸이 젖을 정도로 땀을 빼내면 눈물이 다 빠져나가요.'
'사랑이 통조림에 들었다면 유통기한이 없기를 바란다. 만약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면 나의 사랑은 만년으로 하고 싶다.'
'그녀가 떠난 뒤로 이 방의 모든 물건들이 슬퍼한다. 나는 그들을 위로한 후 잠든다.'
'사람은 휴지로 끝나지만 방은 일이 많아진다.'
'어딜 가고 싶어요? 아무 데나, 당신 좋은 곳으로'
이 영화에 담겨있는 수많은 은유와 사랑스러움을 굳이 이야기하진 않아도 될 것 같다. 만일 그것들이 어떠하였는지 다시 궁금해진다면, 또 한 번 다시 이 영화를 보면 그만이니까. 영화를 보며 행복에 빠진 것은 오랜만의 일이었다. 첫 번째 이야기처럼 파인애플을 서른 통 먹고 조깅을 하며 눈물을 뽑아낸 후, 두 번째 이야기처럼 식탁보부터 이불보까지 천천히 나를 잠식해가는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싶다.
+ 내가 만일 이 영화의 시대에 자라나던 사람이었다면, 아마 왕비를 사랑하고 양조위를 쫓으며 살았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