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1) 사물은 없다 사건만 있다
다시 말하면 변하지 않는 실체는 없다. 움직임만 있을 뿐이다. 실체가 있고 그 실체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그냥 모든 것이 움직이고 있으며 우리는 어떤 테두리를 따라 실체라고 묶을 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변화의 척도로 시간을 들었지만 우주의 변화에는 시간의 특성이 고려되지 않는 것이 허다하다.
그러므로 너와 나도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변화한'다. 열역학 제2법칙이 의해 결국 우리는 먼지가 되어 허공과 구별되지 않을 것이다.
즉 우리도 실체가 아닌 사건일 뿐이다.
세상은 그저 사건일 뿐이다. 사건들의 총체이다.
그러므로 우주를 이해하려면 변하지 않는 실체가 아닌 변화를 보아야 한다.
무엇이 어떤 존재인가는 그것의 움직임을 연구할 때 드러난다.
결국 시간은 사건이고 고로 모든 사물도 시간이다.
2) 현재주의? 영원주의?
철학자들은 시간 개념에 대해 크게 두 가지로 설파한다.
첫 번째는 현재만이 실제이고 과거나 미래는 실제가 아니며 '실재성'이 현재에서 그다음 현재로 연속적으로 진행한다고 보는 '현재주의'. 이렇게 되면 우주의 각기 다른 현재를 어떻게 연속선상이 놓을까?
두 번째는 흐름과 변화는 환상이며, 현재, 과거, 미래가 모두 똑같은 실제이고 똑같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보는 '영원주의'이다. 그렇다면 모든 시공간은 하나의 닫힌 세계로 따로 온전히 존재하는 블록 우주가 된다. 그러나 결코 변화와 사건은 허상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아는 세계의 질서대로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것뿐이다.
세상의 변화와 사건들 사이에는 시간 구조가 존재하며 이것은 단일한 시간 순서로 정리되지 않는 지역적이고 복합적인 사건이다.
3) (뉴턴의) 시간은 없다
뉴턴은 우리에게 시간 변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확신시켜주기 전까지 우리가 알던 세상에는 시간 변수가 없었다. 나무의 높이, 이마의 온도, 빵의 무게, 하늘의 색, 밤하늘에 걸린 별의 수, 대나무의 탄성, 기차의 속도, 상실의 아픔, 이 모든 것을 이젠 변하지 않는 단위로 표현한다.
그러나 약속을 정할 때 우리의 조상들은 다음 보름달이 뜬 뒤 사흘 후 태양이 하늘에 가장 높이 떠 있을 때 만나자고 했다. 시간 변수는 필요 없었고 세상 안에서 사물들이 서로 어떻게 변화하는지만 알면 되었다.
브라이스 다윗과 존 휠러도 처음 자신들의 휠라-다윗 방정식으로 양자중력을 설명했을 때 시간 변량이 없는 자신들의 방정식의 참 의미를 알지 못했다. 이 방정식은 세계를 발생 가능한 사건과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변화하는지로 설명한다. 다른 것은 없다.
입자들은 시간 속에 살지 않는다. 공간 속에 담겨져 있지 않고 스스로 공간을 형성한다. 또 상호작용을 의거해서만 진실로 존재한다. 이 상호 작용이 세상의 사건이고 방향도 없고 선형적이지 않은 시간의 최소 형태다. 기본 양자들의 상호작용이 만든 유동적인 캔버스가 공간의 확장과 시간의 길이를 결정한다. 그리고 이 네트워크들은 하나에서 다음으로 비연속적인 점프를 통해 변화된다. 이것을 거시적으로 묶어 보면 매끄러운 시공간 구조가 된다.
기초 물리학에선 시간은 없다. 오직 사건과 상호 관계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