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완전히 붕괴되었어요”
“그 친절한 형사의 심장을 가져다주세요” 그렇다.
해준은 친절하고 따뜻하다.
이 영화는 첫 장면부터 해준이 속한 세계를 보여준다. 장가계에 가면 저런 산들이 즐비하던데. 마치 중국 어느 곳이 있을 법한 산봉우리를 그가 쳐다본다.
거대한 남근과도 같은 그 산에 그는 우직하게 오른다. “사람이 이런델 꼭 걸어 올라가야 돼요?”
그의 대답은 이렇다 “그래야 하는 거니까”
다시 말하면 그건 당위이거나 정언 명령과도 같다.
날마다 바위를 굴려 산을 오르는 시지프처럼 그가 하는 일은 체제가, 제도가, 아버지의 세계로 불리는 phallus가 명령한 일이다. 거기엔 쾌락이 없다. 알다시피 허락받은 일엔 이미 기쁨이 없다.
유일한 기쁨이 있다면 그것은 꼭대기에 오르는 것 정도?
엘리트인 그는 제도의 사다리에서 맨 꼭대기를 밟고 있다. 의무를 정확히 수행하면 문명은 그를 보호한다. 그러나 금지한 일을 마음이 시킬 때 그는 추락하고 세계는 붕괴한다.
서래를 만났기 때문이다.
서래는 말 그대로 서쪽에서 온 여자다.
그녀는 이질적이고 신비롭다.
그녀는 정체를 모를 여인이다. 이 세계의 문법으로 알수 없는 존재다.
제도의 꼭대기에서 보았기 때문일까? 해준에게 그녀는 선하고 약하고 불쌍해 보인다. 그녀가 웃을 때 “마침내 우는” 것으로 보이고 절제가 안돼서 자기 자신도 못 지킬 것만 같다. 제도의 보호를 알려주고 싶다. 그러나 그녀는 어딘가 위험하다. 알 수 없는 것은 위험하므로.
숨겨진 단서를 찾아 연결하는 해준은 처음부터 그녀를 알고 싶어했다. 그의 의식은 매뉴얼대로 알리바이를 찾고 있지만 그의 마음은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한다.
슬픔이 잉크처럼 퍼지는 사람이길 바라면서 말이다.
붕괴는 사랑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성실하게 수행하던 제도의 삶, 석류를 까고 일주일에 한 번 섹스를 하는 부부 관계나 필요한 철장갑을 적시에 꺼내어 칼을 든 범인과 맞대결하는 준비된 안전한 삶에서 그는 천천히 자신을 소외시켜 오지 않았나. 갑자기 자기감정을 고백하듯 용의자에게 호소하다가도 정신을 차리고 의무를 수행하는 이 남자의 강박적인 삶은 소외된 자신을 만나면서 기도수보다 빨리 꼭대기에서 아래로 추락한다.
그리하여 살인 증거물을 건네주면서 “나는 완전히 붕괴되었어요 “라고 고백한 말은 사랑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세계 밖으로 나올 수 없다는 선언이었고 자신의 감정을 믿었던 자신의 실수를 처벌한 것이기도 하다.
반면 상대를 위한 것이라면 살인도 할 수 있는 서래는 사랑이 두렵지 않다.
그가 보고 싶으면 화재 경보를 누르고 먼발치에서 그를 바라보기라도 해야 한다. 헤어지기 위해 또 다른 남자의 품 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안전을 위한 제도를 그녀는 비웃는다.
사랑은 살과 살이 맞닿는 일. 경찰과 피의자로 묶인 수갑은 둘을 갈라놓앆지만 두 사람의 손은 마침내 맞닿았다. 차가운 금속의 틀 사이로 해파리처럼 모양을 바꾸며 넘어가는 살은 상대를 만난다.
해준은 사랑을 원했을까. 해준은 서래를 자신의 세계로 인도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 세계를 한 발짝이라도 벗어나면 그는 추락하여 기도수처럼 죽을 것 같았겠지. 그는 안전한 그곳에 사랑은 없다는 걸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