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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쑤 Oct 07. 2022

싸움의 정석

나는 명확한 이유 없이 사람을 미워하는 악한 이가 아닐까. 갑자기 인선은 한없이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러니까 나는 남편이 주워대는 수많은 결점과 게으름을 고치려고도 안하고 그저 요지부동인 채로 이상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는지도 모른다. 남편이 비웃으면서 “너는 진짜 그런 게 안되지~ ”라고 시작하는 잔소리에 반박할 말도 못찾고 가만히 듣고 있었다. 자기 입장에서 왜곡해서 하는 소리일 뿐이야라고  주장하기엔 사실이 적절히 섞여있어 인선도 어디서 어떻게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었다.

 “그니까 너는 왜 이혼을 안해줘? 너 나 괴롭히고 싶어서 안해주니?” 늘 머무리로 꺼내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머리 속에 안개가 자욱하게 낀 것 같았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고 저런 말을 할까. 마치 고문을 하듯 나를 몰아세우며 말한다.

“왜 이렇게 질질 끌어? 너 때문에 나도 일이 안풀려 뭘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 그는 돈을 그렇게 갖다 쓰고 날리고도 무슨 일을 벌이려고 하는 걸까?

“니가 날짜를 잡아. 너는 니 갈 길 가고 나는 내 갈 길 가자. 왜 아직도 애들 타령이야? 언제 해줄건데! 당신도 내가 싫겠지만 나도 당신이 보기 싫어. 내가 더 싫어 알아?“

원래 화가 나면 아무 말이나 폭언을 하는 사람이지만 이럴 땐 그래도 수십년 산 부부에 대한 존중이라곤 없다. 인선은 그가 얼굴을 있는 대로 찡그리고 던지는 그 말들이 마치 오물이나 침처럼 얼굴이 묻을까봐 자기도 모르게 움찔대고 있었다. 그래 정말 나를 싫어하는 게 맞구나.

 

 사실 싸움의 발단은 인선이 시작한 게 맞다. 식탁 위에 둔 세금 고지서를 남편이 휴지 케이스 아래에 뒀고 하필이면 그걸 발견한 건 납부 기일이 하루 지나 버린 후였다. 하루 차이로 버린 돈이 아까워 그녀는 남편에게 잘 보이게 둔 고지서를 왜 치웠냐고 했다. 그때부터였다. 그렇게 중요하면 니가 챙겨라 내가 정돈한 게 잘못이냐. 여기 뒀는데 왜 모르냐고 소리를 지르기 사작한 거다. 그녀도 지지 않고 자꾸 잊어버리니까 잘 보이게 둔 건데 그걸 안보이게 치웠으니까 그러지 말라고. 그래 그 입에서 나온 말은 평생 들은 말이었는데. 나는 왜 또 그 싸움의 문을 열었을까. 그래 그녀도 자꾸 걸고 넘어지고 싶었던 게 맞다. 물건을 정리한다면서 버려버리거나 마음대로 치우는 남편의 버릇은 늘 인선에게 고약한 기분을 불러 일으켰다. 공간을 같이 사용하는 사람에게 법은 내가 정한다 식의 독단처럼 느껴져 신혼 초부터 싸움의 발단이 되곤 했다.

 인선은 생각했다. 남편의 말처럼 내가 잘못한 걸 남편 탓을 한 게 맞다. 그런데 그 생각이 들면서도 수긍이 안된 거는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이 집에선 남편에게 불만이나 지적 비슷한 말, 아니 이건 불편하니까 말아달라는 말이 금지되어있다. 말하면 안되는 그 말을 인선은 가끔 부르르 떨면서 시도하게 된다. 아니 사실 그 세금 고지서는 최근 부쩍 적게 가져다준 남편 월급으론 감당이 안 되는 액수였고 그래서 인선도 보란 듯이 올려놓았다. 최근 파트 타임으로 하던 일을 늘려서 낮밤 없이 교대 근무를 나가는데 나도 벌어서 집안 경제에 도움된다는 걸 남편도 보면 알겠지 싶어 부러 식탁에 펼쳐 놓았다. 그 얘기까지 했으면 아마 지금의 배는 지랄발광을 했을테니 본 게임은 그녀가 막은 셈이다. 남편은 후렴구처럼 너는 내가 집에서 설거지도 하고 음쓰도 버리고 청소 빨래도 하는데 왜 칭찬은 커녕 뭐라 하냐며 쪼아댔다. 자신이 왜 그러고 있는지 너무 잘 알텐데 비난을 쏟아붓는 그 얼굴은 정말 진심이었다. 자격지심이라곤 없이 상대에게 화살을 정확히 꽂는다.

 그녀는 미친 개나 떠돌이 늑대를 떠올렸다. 남편이 현관문을 닫고 나갔다.


발목에 묶인 돌과 함께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다. 아무리 멀쩡한 척을 해도 같이 사는 사람과 싸우고 나면 나란 인간은 정말 형편없는 인간이 되고 만다. 싸움이 시작되자 큰애는 방문을 쾅 닫아버렸다.

형편없는 엄마, 형편없는 아내, 형편없는 사람.

형편없이 바닷 속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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