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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 Jun 28. 2017

Understand: 이해하다

누군가의 아래에 서다. 나를 낮추고 상대를 받아들이다.    (=어렵다)

사람들은 외로움에 지쳐 있다
누구도 누굴 이해하지 않는 곳에서
이렇게 춤을 추면서
외로워 몸을 흔들며
서로를 그리워하며
아무도 몰래 혼자서

- 언니네 이발관 6집 앨범 수록곡 <혼자 추는 춤> 중


언니네 이발관의 6집 티저 이미지


카세트 테이프가 있던 시절이었다면 '테잎이 늘어지고 또 늘어질 정도로 들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노래, '혼자 추는 춤(of 언니네 이발관)'. 멜로디, 비트는 물론이고 그 가사. 가사가 마음에 쿡 박힌다.


파편화되고 개인화된 생활 속에서 우리는 한켠 외로움에 지쳐 있다. 가사처럼 서로를 그리워하며 춤을 추지만, 만나지 않는다. 혼자가 편하기도 하니까.


공동의 우리보다 개인적 내가 중요해진 사회에서 '자기 위주'의 자의식은 강해질 수밖에 없는 듯하다. 내 머릿속 가득 빈틈 없이 들어찬 자의식들은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 이미 팍팍한 나의 삶에는 누구에게 내어줄 자리 하나 마련되어 있지 않다. 그 결과 우리는 서로를 강요한다. 그러곤 내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외로워한다.


그래서 위로보다는 이해가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한다. 위로에는 왠지 모를 우월감이 스미기 쉬우니까. 같이 서서, 또는 아래에 서서 서로를 받아들여줄 마음이 필요하다.


강요하지 않는 이야기. 강요하지 않는 이해. 그저 함께 나눌 그런 말들.

.

.

.

아,

<혼자 추는 춤>의 마지막 가사는 이렇다.


다들 여기 아닌 곳에 있고 싶어
한 사람도 포기하지 않는 곳에
끝까지 포기 않는 곳
누구도 포기 않는 곳

한 사람도
그런 곳을 꿈꾸네

누구도
그런 곳을 꿈꾸네


그렇다. 이 앨범이 이들의 마지막 앨범이라고 한다. (나에게는 시작이자 인생음반)


나를 보듬기에도 벅차서 서로를 이해하기 어렵더라도,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 사람도, 누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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