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축하합니다. 백수저 이균입니다!
오늘 공개된 흑백요리사 최종회에서는 세미파이널과 파이널 미션이 펼쳐졌다.
지난 편의점 미션에서 결승에 오른 자를 제외한 세미파이널은 '두부'를 주제로 1명이 생존할 때까지 30분마다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내는 무한 요리 지옥이다.
에드워드 리는 그중에서 가장 다양하고 창의적이면서 완성도까지 높은 요리들을 선보이며 결승에 진출했다.
솔직히 형평성과 공정성 문제가 불거진 팀전을 제외하면 그나마 요리 경연 대회답고 난도가 높은 미션인데 이를 건너뛰다니, 결국에는 운이구나 싶었다. 편의점 레시피로 결승전 티켓을 일찌감치 거머쥔 자도 '개꿀'이라고 표현하는 걸 보면 나만의 생각은 아닌 듯싶다.
에드워드 리는 52세의 나이로 밤을 지새우고 아는 거래처도 없어서 재료 수급마저 어려운 팀전에서 살아남아 이제는 30분마다 창작 요리를 만드는 지옥에 갇힌다. 그러나 개인의 아이디어와 기술이 담긴 요리를 선보인다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미션이리라. 과연 우승자다운 마음가짐으로 '모 아니면 도' 정신으로 안전한 요리대신 위험을 감수한다.
떡을 갈아 퓌레를 만들고, 이탈리안 머랭과 생크림을 섞어 세미프레도라는 이탈리아의 아이스크림을 생각해 낸다. 홈베이킹을 해봐서 흰자에 설탕을 섞는 머랭과 끓인 시럽을 넣는 이탈리안 머랭의 차이를 알고 있고, 또 한국에는 떡 아이스크림이 있다. 그런데 떡볶이 맛 아이스크림이라니, 억지스럽지 않으면서 기발하다. 누군가의 뷔페 한 접시 같은 퓨전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에드워드 리가 우승할만하다고 느낀 점. 식재료의 특성과 아는 맛의 감성을 재미있게 비튼다. 아쉬웠던 출연자 대부분 먹어본 요리와 해본 요리를 그대로 하거나 비슷한 맛을 내는 재료로 치환하는 정도에 그쳤다.
한국적인 재료로 현대적인 디저트를 만든다는 점에서, 백종원의 한결같은 심사 기준이었던 한식의 세계화에도 부합한다.
저번 인생 요리 미션에서 나만의 비빔밥을 선보였을 때도 느꼈지만, 프레젠테이션을 영화처럼 잘한다.
이영숙 셰프님의 1:1 대결에서 느꼈던 '덜어냄의 미학'이 에드워드 리의 마지막 요리에서도 보인다.
떡볶이 아이스크림 옆의 참외 막걸리 한 잔이라니. 백수저 셰프답게 주재료가 하얀색인 것도 눈에 띈다. 백의민족이 아니던가. 전통주와 전통요리의 백색에 우리 민족의 정신성과 얼이 깃들었다면 과장일까.
이미 아이언셰프 우승자면서 백악관 국빈 만찬 셰프로도 유명한 그가 '여러분을 위해 요리할 수 있어서 영광'이라고 말한다. 누구들처럼 자신 있는 정도를 넘어서, 상대를 잘근잘근 밟아줄 준비가 됐다거나 이만하면 완벽해서 솔직히 자신 있노라고 자화자찬하지 않는다.
서툰 발음으로 '말씀하고 싶은 거 썼어요.'라며 주섬주섬 자필 편지를 꺼내는 순간, 그동안 등한시했던 진정성과 진심을 발견했다. 요리할 수 있어서 영광이라는 겸손도 평소의 나라면 마치 취업을 준비하면서 면접에서 뱉는 약간의 절실함을 담은 인사치레라고 여길 테지만, 이제는 아니다. 도가 지나친 시건방과 오만을 수없이 보고 나니 연륜의 셰프가 하는 말이 절절하게 와닿는다.
사실 에드워드 리에 대해서 잘 모르기도 했고, 한국 이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마침내! 결승전의 미션인 '이름을 건 요리'와 함께 최종 우승자의 '이름'이 공개된다. 여기서 흑백요리사의 진정한 언더독 서사가 완성됐다.
이균 셰프가 만든 떡볶이 디저트는 떡볶이의 감성과 특성을 다 살리면서 완벽에 가까운 맛이라고 극찬을 받는다. 그가 설명한 의도는 더 완벽하다. 한국에서 음식 먹으면 항상 많이 줘서 배부르고 다 못 먹는데, 특히 떡볶이를 시키면 항상 떡이 남아서 아깝다고 생각했단다. 그런데 바로 그 풍족함과 사랑과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가 바로 한국 음식이라면서 '나머지 떡볶이 디저트' 소개를 마친다. 언어에 담긴 사고도 감동적인데 표현은 정교하다. 한식이 푸짐하고 상다리가 휘어지고 고봉밥이고 9첩 반상이고 인심이고 정이고. 그런 사실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는 처음이라 눈물이 났다.
먹기 좋은 떡일 텐데 보기에도 좋으니, 먹어볼 기회가 있으려나.
떡볶이도 훌륭한데 참외 막걸리의 소개조차 그다워서 좋았다. 왜 막걸리를 같이 주셨느냐는 심사위원의 질문에 "왜냐하면 이균은 옛날 사람이고, 옛날 사람은 그런 거 좋아한다. 에드워드는 위스키 마시는데 이균은 막걸리 마셔요."라고 답한다. 담백하며 위트 있다. 그리고 한국 정서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 이를 지켜본 MZ세대의 셰프들도 '찢었다'며 환호한다. 세대를 아우르는 증거이다.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지켜보는 한국의 요리 경연 프로그램에서 한국인 셰프가 자신의 한국 이름을 건 한식으로 우승했다고, 내 마음속의 우승자 이균 셰프에게 박수를 보내며 흑백요리사 리뷰를 마친다.
마무리는 나의 원픽이신 이영숙 셰프님으로, 언젠가 다른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으로 뵙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