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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시 Jul 26. 2016

나의 면접 체험기

#32 싼 게 비지떡

그간 회사나 퇴사 이야기는 지겹도록 썼는데 면접에 대해서는 써본 적이 없다. 면접도 회사 다니는 것 못지않게 큰 스트레스이자 불행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다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면접이란 다닐 회사에서 겪게 될 모든 불합리하고 부당한 일의 체험 축소판이라는 걸 알았다. 지푸라기를 잡는 사람은 그런 걸 따질 여유가 없다.


신기하게도 여태 봤던 면접은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난다. 가는 곳마다 어찌나 별스럽던지, 한 군데도 평범하지 않았고 사람이 하는 일이라 그래서인지 개성도 제각각이었다.


여덟 번의 면접을 보고 첫 회사를 다녔고, 네 번의 면접 끝에 두 번째 회사를 다녔다.


졸업을 앞두고 가장 처음 간 곳은, 청와대였다. 이름만 들어도 무슨 일을 하게 될지 감조차 잡을 수 없는 그곳은, 어쨌거나 '행정실 인턴'을 모집 중이었다. 제대로 된 직장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특별한 대외 활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잘하면 당시 대통령이던 이명박 씨를 뵐 수도 있었다. 만나서 셀카를 요청하는 것 정도는.


기껏해야 대학에서의 프레젠테이션 경험이 고작인 나는 처음으로 자기소개서며 면접 과제를 청와대 직원들 앞에서 낭독하게 되었다. 장소가 장소인지라 마치 나랏일 하는 높으신 분들께 읍소 하는 천민이 된 것 같았다. 평소 발표를 특별히 잘한다고도 못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날 내 목소리는 스스로 듣기에도 비참할 정도로 떨렸다. 한 문장을 잇는 것도 불가능할 정도로 사시나무 떨 듯 떨었기 때문에 면접관의 안타까운 시선이 느껴졌다. 자기소개도 최악이었지만 과제 발표와 질의응답은 더욱 최악이었다.


청와대 홍보용 콘텐츠를 제작하라는 과제였고 선택지는 웹툰과 UCC였다. 영상 전공도 아닌데 단시간에 UCC는 무리다 싶어 말도 안 되는 가식적인 내용의 웹툰을 그렸다. 그림이야 자주 그렸지만 만화는 그려본 적도 없었는데 말이다. 틀에 박힌 생각밖에 하지 못했고 결국 애국주의에 빠져 이명박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는 듯한 무언가를 만들어냈다. 그걸 본 면접관은 나에게 대통령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고, 뜻밖에 나는 재밌으신 분 같다는 감상을 뱉었다. 그저 면접을 위해 검색하다 본 웃긴 사진이 떠올랐을 뿐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아쉽지만 인연이 아니라는 문자를 받았다.


첫 불합격의 고배를 마시고 이후로도 쓰라린 경험의 연속이었다. 졸업식 당일에도 그럴싸한 기관의 면접을 봤는데, 한국의 집이었나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었나 전통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이곳에서의 면접은 내가 일할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허접한 대학생에 불과하다는 걸 알았다는 것 외에는, 졸업식을 마치고 무리하게 면접을 본 후 다시 친구들을 만나기까지 과정이 피곤의 극치였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다.


졸업하고도 별다른 좋은 소식을 만들지 못하자 조급해진 나는 묻지 마 지원을 했다. 나를 받아줄 곳은 어디라도 좋다는 듯 지원서를 투척한 결과 몇 군데 면접이 잡혔다. 규모로만 따지면 괜찮은 곳도 있었고 전혀 이름 모를 곳도 있었다. 왜 신생 벤처기업이나 소기업 같은 곳에 얼씬도 하면 안 되는지 깨달은 경험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다녀보지 않고 알게 된 것 정도일까.


반신반의하며 강남의 후미진 골목에 위치한 사무실에 들어갔다. 내 또래로 보이는 사람들이 나를 반겼다. 서너 명 정도 직원이라기엔 어린 학생들이 일하는 중이었고, 사장으로 보이는 기름진 남자가 나왔다. 첫눈에 그에게서 이상한 기류를 감지했다. 존댓말과 반말을 섞은 묘한 말투에서 부담스러운 자신감이 느껴졌고, 작위적인 연기를 보는 것 같았다.


그는 나를 시험하듯 '당신 같은 사람을 두 번인가 믿어봤는데 결과는 아니었어. 이번에는 어떨까?'라며 삼류 드라마 같은 대사를 던졌고, 그 위압감에 못 이겨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아무 말이나 던진 나는 즉시 채용당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혼미한 상태로 그들과 중국집에 갔다. 그 와중에 볶음밥을 먹었나, 아무래도 내가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사장이 호의를 베풀었다. 오늘은 이만 퇴근하고 더 생각해본 후 내일 결정하라고 했다. 지금 떠올려보니 그렇게 나쁜 사기꾼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다음은 3d 디자인을 배우며 사내 밴드의 일원으로 활동할 사람을 찾는 회사였고, 역시나 당일 합격 통보를 받았지만 가지 않았다. 합격도 좋지만 너무 쉽고 빠르다면 한 번쯤 재고하는 것이 좋다. 사실 뒤도 안 보고 도망치는 것이 낫다. 그렇게 합격해서 개고생 하는 사람을 몇 번이나 봤다.


그 뒤에 은행나무 출판사라는 곳에서 면접을 봤는데, 좋은 곳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왜 나를 불렀는지가 의문이었다. 당시 나는 지방의 본가에 거주 중이었는데, 면접을 보기 위해 상경해야 했다. 척 보기에도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쓸어 담은 대학생의 포트폴리오를 봤다면, 자신들이 원하는 경력자가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런 회사들이 꽤 있다. 원하는 사람이 아니면서도 불러놓고 구경이나 하자는 식이었다. 은행나무 출판사는 그런 점에서 경솔했다. 면접관들은 친절했고 면접 후에도 채용하지 못해 미안함을 잔뜩 담은 전화를 해준 것은 고맙지만, 버린 시간이나 돈을 돌려주지는 않았다.


다음으로 간 곳은 아는 사람은 아는 아트박스라는 회사였다. 마동석이 사장이라는 아트박스의 면접은, 실로 엄청난 재앙이었다. 아주 이른 아침에 지원자들을 본사로 불렀다. 기억이 맞다면 교통편도 복잡해서 한 번에 찾아가기 쉽지 않았다. 지하철과 버스를 번갈아 타야 겨우 갈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건물 안은 어둡고 감옥을 연상케 했다. 좀 많아 보이는 인원을 엘리베이터 한 칸에 꾸역꾸역 집어넣고 이동했다. 전날 야근했을 것 같은 파리한 안색의 담당자가 실기 시험을 안내했다. 직원도 아닌 지원자를 아침부터 퇴근 시간까지 부려먹는 회사가 여기 있었다. 점심을 먹은 기억은 없는데,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새벽부터 나와 밥도 못 먹고 오후까지 대여섯 개의 과제를 받고 감금당한 것이다. 어떤 보상도 받지 못했다. 다 끝났을 때는 거의 시체가 되어 있었다. 물론 불합격했다.


그 뒤 프레벨이라는 유아 출판사의 면접을 봤는데, 심심하니 면접 놀이나 하자는 듯한 태도의 무성의한 면접관을 만날 수 있었고, 마지막으로 면접 본 곳이 내가 처음 다닌 회사이다. 대단하지도 않은 회사의 면접을 1차로 떨어지고 패자부활 격으로 합격한 나는 보다 겸허한 마음가짐으로 입사하게 되었다. 그리고 2년 여의 세월을 썩혔다는 슬픈 이야기이다. 여기서 교훈은 '싼 게 비지떡'이려나.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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