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나랑 안 맞는 사람
회사를 다니며 이런 사람을 참 많이도 만났다. 누군가 어떠냐고 물으면, 첫마디는 늘 그러했다.
'나쁜 사람은 아닌데…' 라고 조심스럽게 운을 떼고, 최대한 객관적이거나 긍정적이려고 노력한 시선을 말했다. 그게 그 사람을 욕하고 싶지 않아서인지, 다른 사람을 욕하는 나쁜 사람이 되기 싫어서인지, 혹은 내가 욕할 만한 사람과 일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었던 건지. 뭐 이런저런 이유로 말을 삼갔다. 아, 섣불리 적으로 단정 짓고 싶지도 않았다. 계속 볼 사람을 싫어해서 좋을 게 뭐 있겠는가.
나쁘진 않은데, 싫은 건 아닌데. 확실한 건 좋지도 않다는 거다. 사실 호불호만큼 알기 쉬운 감정도 없는데, 성숙한 성인인 만큼 판단을 보류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첫인상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거나, 사람은 겪어봐야 아는 것이므로, 더 겪어보는 것. 그리고 알게 된다. 서로 맞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적당히 만났으면 될 일이다. '적당히'라는 게 선 긋고 마음 주지 말자, 주더라도 덜 주자는 의미는 아니다. 애초에 전혀 다른 인간을 온종일 부대끼게 만들어 놓은 이 닭장 같은 시스템이 에러란 말이다. 아무리 잘 맞는 타인이라고 해도, 여행이나 동거 따위의 장기간 합숙을 한다면 어떨까. 사실 여행이나 동거는 적절한 예가 아니다. 정확한 비교를 위해서는 팀 프로젝트, 협업, 동업 따위의 일로 만난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즐겁지 않은 일을 함께, 하루 종일, 매일매일…. 서로 다른 분야, 같은 분야, 또는 경쟁적이거나 수직적인 관계라면.
대학에서 조별 과제만 해도 잡음이 많은 마당에 불 보듯 뻔하다. 원래 사람이란, 각자 개성이 어마어마하고 무시무시해서 퍼즐처럼 들어맞기가 어렵다. 나랑 꼭 맞는 타인이 있길 바라는 건 욕심이고, 서로 안 맞는 것이 당연하다. 유난히 잘 맞는다면 감사할 일이다. 누군가 더 배려하거나 희생하거나 마음을 썼을지 모르므로. 어쨌거나, 머리로는 알아도 가슴으로 실천하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라서, 차이를 인정해도 차오르는 분노는 어찌할 수 없다.
이런 복잡한 내적 갈등은 대체로 아무래도 좋을 사람보다는 상대적으로 가까운 관계에서 발생한다. 가깝기 때문에 그렇다. 오래 있다 보니 몰라도 되는 것을 알게 되고,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게 된다. 당장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는 경우, 예컨대 무능하고 양심 없는 상사라든가, 꼰대, 변태, 오지랖,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도 광범위하며 대놓고 문제인 경우에는 신속한 무시가 답이다. 접근 금지하고 최소한의, 반드시 필요한 소통만 남기는 것이다.
무시할 정도로 나쁜 사람은 아닌데, 묘하게 마음에 걸리는 구석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걸리다 보니 불편해지고, 불편하다 보면 싫어지는 그런 관계. 명쾌한 답은 없다. 그저 이해할 수 없는 걸 이해하려 애쓰지 않는 것, 어차피 이해할 수 없으므로. 또한 그 원인을 나 자신에게서 찾지 않는 것. 그 사람이 그런 말과 행동을 나에게 한 것은 나를 싫어하거나 악의를 품은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별생각 없었을 거다. 안 맞는다는 건 맞춰주고 싶지 않다는 걸지도 모른다.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 싫은 배려를 억지로 하지 말고 기꺼이 좋은 사람 되기를 포기하는 것. 잠시 왔다 가는 세상 쿨하게 사는 것.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