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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시 Jul 06. 2022

따뜻한 아이스라테

#61

한겨울에도 차디찬, 얼어 죽어도 아이스만 고집하는 내가 이 여름에 따뜻한 아이스라테를 마시게 된 이야기.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gs25에 커피머신이 생긴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시골에 몇 안 되는 점포를 찾아 헛걸음만 치던 중 집에서 조금 먼 gs25에 들르게 되었다. 읍내의 gs25는 서너 번 넘게 찾아가도 라테는 안 된대서 큰 기대 없이 아이스라테 되느냐고 물었는데 당연히 된다는 시원한 대답이 돌아왔다.


나를 비롯해 요즘에 하도 모바일 어플이나 키오스크를 두고 헤매는 경우가 많아서 미리 긴장하며 gs25 어플을 켰는데 여자분이 시원시원하게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하면 된다고 알려주시는 게 아닌가. 편의점만이 아니라 빵집이든 카페든 직원조차 모르는 행사와 메뉴를 손님이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자주 있었던 터라 막힘없는 일처리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커피를 여러 잔 구매할 때는 얼음컵의 절반은 나에게 뜯어달라고 부탁하는 것마저 굉장히 센스 있게 느껴졌다. 좁은 편의점에 뒤에 선 손님이 덜 기다리고 나도 커피를 빨리 받을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또 다른 카페를 이용하다 보면 컵홀더를 빠뜨리거나 여러 잔을 사도 캐리어를 안 주고, 받는 나도 뒤늦게 알아차려서 불편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그분은 척하면 척이었다. 또 양손이 차있으면 자동문 버튼을 눌러주기까지 해서 마치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듯했다. 언뜻 보면 당연하게 느껴지는 배려지만 실제로 여러 곳을 이용하다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편의점에서 커피를 사는 동안은 내색하지 않았지만 문을 나섬과 동시에 동생에게 '저 사람 일 엄청 잘한다, 그렇지?'라고 물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동생도 자기도 그렇다고 생각했다며 야너두? 야나두! 거리며 역시 일 잘하는 사람은 누가 봐도 일을 잘하며 티가 난다고 신기해했다. 그런 경험은 좀처럼 흔치 않기에 감명받은 나는 집에 오자마자 고객센터에 장문의 칭찬글을 남겼고 며칠이 지나 대수롭지 않게 고객님의 칭찬글을 공유하겠으며 앞으로도 많관부라는 답변을 받았다. 진짜인지 의심하긴 했지만 그 일을 잊어버렸다.


그 후로도 저렴하고 맛있는 데다가 한 잔을 사면 한 잔을 더 주는 gs25의 카페25를 계속해서 이용했다. 제대로 된 고객 만족이 지속적인 고객 경험으로 이어진 셈이다. 커피를 마실 일이 있으면 카페가 아니라 편의점으로 향하던 어느 날이었다.


제법 오랜만에 그분을 마주하고 나는 평소처럼 얼음컵 네 잔을 들고 와 아이스라테를 주문하였다. 그러자 항상 내가 말하기도 전에 '아이스라테죠?'하고 알아보던 그분이 한 박자 느리게 '오랜만이라 몰라봤어요!'라며 반기셨다. 평소에도 최소한의 인사와 주문 외에 말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라 가볍게 대답하고는 익숙하게 얼음잔을 뜯어 커피를 내릴 수 있도록 준비했다. 커피를 거의 내리고 계산을 위해 폰을 내밀었는데 글쎄 그분이 그러는 게 아닌가. '오늘은 제가 살게요!'


예? 왜, 왜요? 칭찬글을 적고 꽤 시일이 지났으므로 이유조차 짐작하지 못하고 당황해서 되묻자 그분이 글을 쓰시지 않으셨냐면서 덕분에 본사에서 찾아와 칭찬도 받고 기분이 너무 좋았다고 하셨다. 호의를 받지 못하는 병이 발동하여 한사코 만류했으나 몇 번이고 살면서 그런 칭찬을 처음으로 받았다고 하시길래 나는 도리어 진심이 되어 소리쳤다. 정말 일을 잘하셔서 칭찬글을 적은 거고, 그렇게 일 잘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고, 처음 봤다고 말이다. 더 이상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 황송한 기분이 되어 양손에 커피를 들고 문을 나섰다.


이상한 건, 감동을 받고 신기해서 주변에 이야기하자 오히려 나에게 착한 일을 했다는 칭찬이 돌아왔다. 내가 착해서 착한 일을 한 게 아니고 사실이 그러해서 그렇게 적었을 뿐이라 어리둥절했다. 인색하고 이기적이라 주는 것을 꺼려서 다른 사람이 나에게 주는 것을 굉장하게 여기는 탓인지도 모른다. 남에게 주는 것을 어려워하는 내 성격에 콤플렉스마저 느낄 때도 있어서 그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들이 대단하다. 본의 아니게 착한 사람이 되어, 나도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면 앞으로 더 착해져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그렇고 gs25는 묵묵히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분에게 더 각별히 보상하길 바란다. 그런 분이 보상을 받아야 회사에서 일을 열심히 해야 한다는 주장에 설득력이 생기지 않을까. 나를 포함해 월급 도둑을 자처하며 시곗바늘이 달리길 기도하는 이 시대의 일꾼들에게 일을 열심히 잘하면 보상을 받는다는 귀감이 필요하다. 기업이 바라는 인재상은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려 등잔 밑을 밝히자. 알아주지 않아도 성실히 일하는 사람은 외적인 보상과 함께 존경을 받아 마땅하다. 가뜩이나 한탕을 노리고 진 빚을 나라가 탕감해준다는 소식으로 흉흉해진 세상에 한여름의 아이스라테 같은 사람이 사준 가장 따뜻한 라테를 마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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