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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시 Jul 26. 2016

나의 면접 체험기 2

#33 면접 같은 세상

첫 회사를 털고 재활에 성공한 나는 두 번째 구직 활동을 시작했다. 전보다는 다닐 만한 회사들이었다.


스타트는 모닝글로리라는 문구 회사였다. 나팔꽃 문양이 그려진 연습장을 써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추억의 문구점으로 남을 수 있던 그곳은 안 좋은 인상만을 안겨줬다. 다 채용할 것도 아니면서 1차, 2차, 3차에 걸쳐 사람을 오라 가라 하며 재기 불능할 지경으로 진을 빼놓았다.


2차는 역시나 실기시험이었는데 종일 부려먹는 것은 아트박스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더 가관인 것은 최종 면접이었다. 꽤 많은 지원자들을 그룹으로 나누어 대기시켰다. 기나긴 시간 낭비의 시작이었다. 사람들은 차례를 기다리며 저마다 신세한탄을 해댔고, 그 와중에 도청장치가 없는지 의심하기도 했다. 모닝글로리가 면접비를 지급할지 아닐지에 대해서도 토론했다. 한참을 기다리고 반나절은 지나서야 실무진과 경영진들을 볼 수 있었다. 하루에 두 차례의 면접을 치르고 나니 딱 죽을 맛이었다. 마지막 대기를 하던 중 누군가 일렬로 놓인 쇼핑백을 발견했다. '설마'하는 우려와 함께 '그럼 그렇지'하는 체념과 동시에 비속어가 터져나왔다. 그 쇼핑백이 지원자들의 몫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자기들이 파는 공책이나 연필 따위가 들었을 게 분명했다. 면접 당일에 알게 된 채용 조건 또한 기가 막혔다.


죄 없을 담당자가 엄격하게 말했다. '신입사원 초봉은 여자는 2600, 남자는 2800'이랬나 '2400과 2600'이랬나. 아무튼 똑같은 일을 할 여자와 남자의 임금이 이만큼 차이 날 거라고 했다. 대기인원의 과반수는 여자였음에도 토를 다는 사람은 없었다. 남자 디자이너와 여자 디자이너의 일이 어떻게 다른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러나 차라리 채용되지 않는 것이 나을 정도인 이유는 다른 조항에 있었다. 수습 기간인 6개월을 모닝글로리 영업점에서 근무해야 한단다. 디자인을 하든 떡을 썰든 간에 반년 동안 공책을 팔며 순종적인 노예로 거듭나라는 것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채용되지 않았다.


두 번째 면접 축하 문자를 받았을 때는 긴장했다. 치즈스틱 먹을 때나 갔던 롯데리아였다. 난생처음 접하는 대기업의 문자에 감격도 잠시, 공포가 엄습했다. 뜻하지 않은 좋은 기회가 두려운 것은, 놓쳤을 때를 상상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다. 실패해도 더 좋은 기회가 올 거라는 낙관도 어렵다. 가장 큰 이유는 1차 합격이지, 최종 합격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엄청난 관문을 통과해야만 합격할 수 있고, 합격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면접이라는 고난을 겪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노력을 울며 겨자먹기로 하는 것은 끔찍하다.


때마침 나는 대학입시를 위해 상경한 사촌동생을 돌보는 중이었다. 그래 봤자 학원 셔틀에 불과했지만, 수험 생활에 최대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살신성인하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 면접 통보가 더욱 버거웠다. 그러나 둘 중 어느 것도 무를 수 없었기에 그저 해치워야 했다. 대기업인 만큼 절차도 까다로웠다. 지능 검사 같은 시험과 프레젠테이션 면접이 과제였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접하지 못했던 언어, 수학, 과학 문제를 풀어야 했다. 채용에서 얼만큼의 비중을 갖는지는 모르지만, 그 시험을 대비하기 위해 거금을 들여 온라인 모의고사를 봤다. 백수였을 때라 죽을 만큼 아까운 돈이었다. 그러나 두 번 다시없을 기회인 만큼 모든 것을 쏟아붓기로 했다. 모닝글로리 면접에서 아무렇게나 주워 입고 간 것이 신경 쓰였던 나는 브랜드 의류 매장에 들어가 깔끔한 정장 한 벌을 샀다. 입어보고 고르는 건 일도 아니었다. 돈 쓰는 건 그렇게나 쉽고 재밌었다. 재고가 없어 며칠 기다려 재방문해서 받아왔으니 정말 애썼다.


예상 질문에 대비하는 것, 포트폴리오를 제본하는 것, 준비란 준비는 다 했다. 사실 질적인 준비보다는 돈을 아끼지 않기로 했다. 질적인 수준을 높이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어서 상대적으로 쉬운 노력을 택했다. 제본하는 데도 돈이 들었고, 정장을 맞추는 것도 돈이었고, 면접용 머리와 메이크업까지 투자했다. 없는 형편에 할 만큼 했다는 것이 최선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했는데 안 되면, 그다음은 생각하기도 싫었다.


본사 건물은 기대보다 낡았다. 아니나 다를까 면접관이 그것부터 물었다. '좋은 건물이 아니라 실망하지 않았느냐'고 했다. 롯데를 떠올릴 만한 어떤 것도 없는 곳에서 면접은 시작됐다. 순서대로 회의실에 들어가 단독으로 실무진 면접을 치렀다. 어쩌면 그날 나는 처음 쇼를 하는 광대 같았을 것이다. 새로 산 정장이며 잔뜩 치장한 머리와 얼굴이 감출 수 없는 긴장과 뒤섞여, 단정함을 넘어서 어딘가 요란한 인상을 줬음이 분명했다. 면접관들이 신기한 동물을 보듯 재촉했다. 어서 재주를 부려보라는 것 같았다. 최초의 면접에 비해서는 안정된 상태로 수준 낮은 발표를 마쳤다. 내가 생각해도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애초에 채용 조건 경력에 미달하는 내 지원서를 통과시켰다는 것이 의아했지만 그저 따르는 수밖에. 면접관들은 아무 질문이나 물었고 나도 아무렇게나 답했다. 마지막으로 궁금한 것이 없느냐는 말에는, 점심시간에 롯데리아를 가느냐고 물었다. 모범 답안이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 것도 생각나지 않았고, 진짜 궁금한 것은 차마 물을 수가 없었다.


실무진 면접이 끝나고 인성 면접이 이어졌다. 지원자 서너 명이 동시에 들어갔다. 전에 다니던 회사를 왜 그만뒀는지 같은 것을 묻기도 했다. 막장으로 다니다 잘렸다고 할 수는 없어서 진정한 자아실현을 하려는 사람으로 포장했는데, 별 도움은 되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전 회사를 비난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반항적인 기질이 있는지 아닌지를 감별하려는 면접관의 덫에 번번이 걸려들었다. 게다가 면접관 중 한 명과는 반박에 반박을 하며 팽팽하게 의견을 주고받기도 했는데, 마치 말대꾸하는 기분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 인간이 대기업 입사를 위해 면접 보러 온 나에게 '디자이너들은 채용해도 경력이 쌓이면 프리랜서로 전향하던데, 그럴 생각이 없느냐'며 충절을 의심했기 때문이다. 이미 답을 정해놓고 묻는 데는 아무리 반박해도 변명처럼 들릴 뿐이었다. 뽑을 것도 아니면서 언제 그만둘 건지는 왜 따지는지 모르겠지만, 생각해본 적도 없는 프리랜서를 들먹이니 어이가 없었다. 묻는 저도 듣는 나도 프리랜서는 해본 적도 없는데, 그게 뭔지나 알고 묻는단 말인가. 프리랜서를 선언하면 일이 저절로 쏟아지기라도 하는 줄 아는지,  프리랜서라면 회사 안 다니고 사회생활 안 해도 되고 편하게 돈 버는 줄 아는 머저리 같았다. 그랬으면 이미 회사 다녀본 내가 프리랜서를 하지 뭐하러 너희 회사에 돈 들이고 시간 들여서 면접 보러 왔겠느냐 하는 말이 차올랐지만 역시 뱉을 수는 없었다. 뭐가 됐든 성공하고 잘 나가는 사람이나 할 만하다는 걸 굳이 남의 입으로 들어야 직성이 풀리려나. '롯데리아'라는 로고타이프가 인쇄된 봉투에 든 만 원을 쥐고 탈출했다.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그러나 다음 기회는 당연한 수순처럼 빠르게 찾아왔다. 불행 끝 행복 시작인지, 그 반대인지 모를 일이었다. 마지막 면접 또한 고생이었다. 불편한 신발을 신고 차갑게 얼어붙은 길을 미끄러지듯 달렸다. 나이 든 팀장과 젊은 팀원 하나가 나와 다른 지원자들을 안내했다. 일일 근무라고 했다. 출근부터 퇴근까지 실무 능력을 테스트했고 면접도 봤다. 그때 속내를 감추며 '다른 지원한 곳은 없느냐'고 묻던 팀장의 덜떨어진 면모를 눈여겨봤어야 했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하루 일당이 계좌로 입금됐다는 것이었다. 계산은 제대로 하는 회사였다. 몇 주가 지나서야 합격 전화를 받았고, 짧고도 긴 여정의 시작이었고, 지금은 끝이 났다. 면접 같은 이야기도 이걸로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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