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퇴사 D-218
남은 출근일을 헤아렸다. 219일, 결코 짧지 않은 시간. 휴일이나 연차를 빼고나면 얼마나 줄어들까. 눈앞이 창밖의 어둠처럼 깜깜하기만 하다.
긍정 회로를 돌렸다. 연말연시에는 가속도가 붙으니까 눈 깜빡하면 수면마취처럼 끝나 있지 않을까.
작년까지 중등임용에 발만 담갔던 나는 집 근처에서 용돈벌이라도 해볼까 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일이 커지는 바람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지자체와 중소기업의 인재양성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정말이지 계획에 없던 취업이었다. 중등임용 역시 의도치 않게 유야무야로 끝나버렸다.
원래 하던 일과 다른 업종이지만 아주 관련 없지는 않아서 하나의 카테고리에 넣을 수도 있는 그런 일이었다. 그 일이 어떤 일인지 구체적으로 적어도 되는지 모르겠다. 나의 퇴사는 진행형이지 완료형이 아니므로 위험한 상황은 피하고 싶다. 미술 하는 사람이 할 만한 일을 대충 상상하길 바란다. 거기서 거기니까.
어쨌거나 일을 배우고 돈도 버는 기회라니. 불로소득의 향기가 나는데 어떻게 가지 않을 수 있을까. 내 판단은 반은 맞았다.
반만 맞았다. 2년의 계약 기간 중 1년은 천국이었다. 강의를 듣고 실습을 하고 월급을 받았다. 다른 회사에서 몇 번 굴러본 내게는 다시 대학생이 된 것만 같은 행복한 시절이었다.
게다가 코로나와 맞물려 재택근무가 생기고 회식은 사라졌다. 힘든 일이 없어서일까, 사람들은 모두 착하기만 했다. 어지간히 회사를 달가워하지 않는 나도 ‘이 회사의 상사들은 모두 천사가 아닐까’하는 기막힌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천국 같은 회사에 천사 같은 상사가 있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난 지금, 회사는 지옥이 되었다.
뭐, 천국이라고 해서 오래 다니려던 건 절대 아니다. 어차피 지자체의 지원 없이는 아무것도 아닌 중소기업일 뿐, 평생직장으로 삼기엔 어림없으며, 평생직장을 원하지도 않기에 호시절을 누리면서도 정해진 끝을 아련하게 상상하고는 했다. 물론 이렇게까지 돌변하리라고는 낌새를 감지하긴 했어도 이 정도일 줄은 짐작조차 못했다.
중견기업, 대기업을 다녀봐도 별로인데 중소기업은 안 다녀봐도 별로겠다라는 강한 확신이 있었는데 직접 다녀보니 과연, 상상을 초월하는 노동착취다.
그러나 여태까지의 충동적 퇴사, 무계획적 입사와는 다르게 좀 더 인내하며 느린 퇴사를 계획하고 있다.
이전 회사에서 퇴사를 결심한 지 한 달 이내로 퇴사하던 것에 비해 219일, 글을 쓰는 사이 218일로 줄어든 퇴사는 아득히 멀기만 하다.
언제 이 악몽이 끝날까. 꿈에서도 seed money는 모아야 하기에 어른스럽게 참아보자고, 입꼬리를 올렸다. 웃음은 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