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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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이렇게 어렵고 복잡하게 말하는 걸까. 혹시 원서로 보면 언어로서의 의미전달 외에 단어의 형태 문장속에서 운율, 리듬감 이런 걸로 예술적이 아름다움이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아마도 '사랑하지 않을 권리, 리퀴드 러브'라는 제목에서 나는 뭔가 기대를 했던 것 같다. 고전이지만 제목에서 뭔가 contemporary한 느낌이랄까. 전문용어로 편집자가 제목 잘 뽑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은 굉장히 읽기 불편하고 '안' 가벼운 책이지만 마음 먹었으니 나는 불굴의 의지(!)로 성실하게 마무리 해내(?)었다. 익숙치 않은 무언가가 남기는 유익한 경험이 있다는 걸 아니까. 항상 내가 걷던 길이 아닌 낮선 경험이 주는 지혜와 여운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죽음'보다 더 적절하게 '다른 사람의 경험은 진정 경험으로 학습될 수 없다"의 케이스가 있을까? 소위 '뼈 친다" 하는 느낌.
죽음의 경우 (죽음에 관해) 배우는 것은 잘 알려진 대로 다름 사람의 경험에 한정되며, 따라서 그것은 임종시의 환상이다. 다른 사람의 경험은 진정 경험으로 학습될 수 없다. 어떤 대상에 대한 배움의 최종 산물에서는 그에 고유한 체험을 주체가 상상력으로 거기에 창조적으로 덧붙인 것으로부터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타자들의 경험은 타자들이 체험한 것을 가공하고 해석한 이야기로만 알려질 수 있다...(중략)...하지만 죽는 것은 태어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직 한 번만 일어난다는 사실은 그대로 남는다. 결코 두 번 경험할 수는 없는 사건으로부터 다음번에는 제대로 할 방법을 배울 수 없다. (34 page)
사랑이 정말 쉽고 가벼운 시대에 이렇게 심오한 사랑 철학이라니! 주말 혹은 불금에 압구정동 골목길을 걷는다면 바로 이해할 것이다. 얇고, 짧고, 가벼운 그들의 옷차림처럼 쉽고 가볍고 소모적인 인스턴트 사랑. 혹은 관계. 또는 유희. '그러한 방식을 부정적이 거나 혐오한다는 의미로 말하는 게 아닌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라는 사족을 덧붙이겠습니다. (저 압구정동 좋아해요. 미니스커트 많아요)
사랑이라는 포괄적인 표현 안에 섹스, 관계, 욕망 등등 마구 마구 모든 것을 적용해버려서 정말 '사랑'이 소모되버린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린 마치 다 자유롭게 가질 수 있어서, 그리하여 하나도 가지지 않은 것과 같은 느낌.
'사랑'을 '죽음'만큼 심오하고 깊이 있게 보는 관점. 이게 내가 이 책의 진지함을 이해하는 포인트이다.
그런데 복잡하고도 복잡하게 '사랑'을 이해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깊이 생각하고 사유하고 나서 단순함을 선택하는 건 처음부터 해맑은 것과는 way too far 하는 이야기니까. 사실 난 샴페인 한잔 하면서 입을 가리지 않고 하하하 웃어 버리고 ''행복하네?' 내뱉고 살고 싶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