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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갠 Jun 04. 2018

비 갠 후 맑음

일본에서 이직, 긴 휴식 끝에 다시 또 '회사원'

내가 '회사원'이라는 타이틀을 다시금 달게 될 줄 몰랐다.

 

20대 중후반 광고대행사의 디자이너로 입사 후 3년,

30대 초중반 한국에서 2년여간 중소규모의 회사에 취직해 있었던 시기를 제외하고,

여러 세월, 개인 사업과 프리랜서로 주위로부터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험담인지 칭찬인지 모를 평가를 들어가며,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았다.

(물론 나름 바쁘게)


브런치의 구 필명 '욜로녀'도 그래서 지은 이름이지만,

'욜로'도 '웰빙'같은 구 시대 언어가 될 것 같아 펜네임을 변경했다.

또, 몇 주 전부터 새롭게 시작한 회사 생활(+이 회사의 이미지)과는 부합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나는 맑은 날을 좋아한다.

특히 '비 갠 후 맑은 날'


그래서 '비갠'이라는 필명으로 바꿨다.

'~하기 시작했다'라는 영어 동사도 연상되기도 하고...

서른 후반에 스스로 생각해도 유치하지만,


누가 뭐라 하든 난 계속 유치할 거다.




일본의 이직 시장


12월 말부터 일본 헤드헌터들의 도움을 받아 다양한 회사의 구인 정보를 제공받았다.

마이나비, 캐리어 트렉 등 이직 애플리케이션에서도 여러 곳을 체크했지만,

혼자서 수많은 회사들을 서치 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헤드헌터 에이전시들은 처음에 전화 면담 혹은 방문 면담을 통해,

원하는 업계, 연봉, 조건 등을 수집하여 이에 맞는 어드바이스를 해주고

나의 경력을 꼼꼼히 살펴 회사를 소개해준다.


일본 인력 업계는 마치 부동산 업계와 닮아있다.

다만 입사지원자는 무료로 서비스를 받고, 지원자가 지원한 회사에 소속되면 회사에서 수수료를 지불하는 시스템이다. 그래서 나는 총 5곳에서 서비스를 받았다. 각 에이전시 담당자들과 메일을 주고받고 방대한 양의 구인표를 확인하는 것이 조금 귀찮았지만, 각기 다른 업계 회사를 추천해 주도록 요청해 놓았기에, 추천 회사가 겹치는 일은 많이 없었다.


일단 나의 조건은 꽤나 명확했다


'대기업의 부품'



일본 이직 면접


2018년 일본 이직은 2009년 신입 때와는 확연히 다르다.

2009년은 이듬해보다는 덜했지만 리먼 쇼크의 여파로 취업난이 시작된 시기였고,

2018년 현재 일본은 취업하기 조금 더 수월해진 것은 체감상 확실하다.


다만, 뉴스 채널에서 떠들어 대는 '일본 취업' 뉴스처럼 완전히 수월한 것은 아니다.


신입이 아닌 이직의 경우, 무슨 일을 해왔는지

디자이너의 경우, 어떤 프로젝트에 참여해 왔는지

만약 허풍을 떨거나, 스스로를 과장하면 1차까지는 운 좋게 통과하더라도 2차에서 많이 걸러지게 마련이다.


난 사실 스스로를 미화하기는 했지만, 일본에서 대학 졸업, 신입으로 입사한 첫 회사의 인지도 등 배경 덕을 봤던 것은 사실이다. 특히 서류와 1차에서 상당히 유리하게 작용했다. 


물론 지금 내가 선택해서 몇 주간 다니고 있는 이 회사에서는 1차 면접부터 볼륨 있는 과제의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들어 발표하고, 2차 면접 포트폴리오 프레젠테이션..

(아무래도 발표를 좋아하는 조금 딱딱한 회사인 것은 분명하다)

학력이나 경력이 꽤 영향을 끼쳤음에는 분명하지만, 프레젠테이션과 열정을 다해 입사 의사를 표현했던 것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 것 같다.



내정 후 긴 휴가


최종 내정이 3월 초, 입사가 5월 중순.

두 달이 넘는 기간 동안 나는 모든 걸 내려놓고 줄기기만 했다.

발리로 긴 여행을 다녀오고, 시댁을 비롯한 가족들이 일본에 방문해주시고... 

매일같이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온천과 핫요가를 배우며...

꿀 같은 휴식의 두 달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우리가 거지는 아니겠다... 이왕 이렇게 된 거 6월 이후로 미룰까? 도 생각했지만, 

공백이 길어질수록 불안감이 깊어만 갔다. 

회사 생활을 이렇게 쉬었는데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


몇 주 간 지금까지의 내 생활과는 180도 다른 회사원의 생활을 하다 보니, 

의외로 잘하고 있었다.


표현 위주의 디자인을 몇 년이나 쉬었는데 왜 고만고만되지?

(잘난 척이 아니라... 아예 못하진 않는 정도)


업무시간 내에 잠시나마 여유가 생겨서 10여 년 만에 애프터 이펙트를 켰는데 단축키가 생각이 났다. (그래도 디자인하고 모션까지 시킬까 봐 못하는 척하고 있다.)


생각보다 우리는 걱정한 만큼 바보는 아니라는 것이다. 

아마도 축적된 경험이란 것은 어디로 사라져 버리지는 않는다.


라며 스스로 위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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