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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민 Dec 06. 2023

인류는 육아일기를 어떻게 써왔을까요?


기록은 인간만의 독특한 습성입니다. 문자가 발명된 후, 공식적인 기록이든, 비공식적인 기록이든 인류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기록을 해 왔어요. 


아래의 그림은 기원 35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수메르의 상형문자 기록입니다. 가장 오래된 기록 자료 중의 하나로 여겨지는데요. 인간은 이처럼 아주 오래 전부터 자신의 생각을 문자라는 매체를 통해 남기고자 했어요. 


수메르의 상형문자(기원 3500년 전 추정) 출처: 위키피디아


정치, 학술, 종교 등 여러 분야에서 기록한 사례가 있습니다. 가정이라는 영역에서는 육아 일기가 대표적인 기록 사례일 텐데요, 이러한 기록의 역사 사례로 다윈의 아기전기를 들 수 있어요.     


다윈은 생물진화론으로 너무나 유명한 학자이지요. 영국의 생물학자로, 배를 타고 세계 곳곳을 다니며 생물을 관찰하고 살펴본 경험을 토대로 진화론의 기초를 확립하고 ‘종의 기원’을 발표했어요. 

찰스 다윈(1809 - 1882) (좌), 다윈이 '종의 기원' 집필을 위해 기록한 노트(우) 출처: 위키피디아



그렇게 우리는 다윈을 진화론자, 생물학자로 기억하고 있지만 다윈은 자기 아들을 관찰하고 기록한 바를 논문으로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바로 1877년에 발표된 ‘영아에 대한 자전적 스케치’입니다. 다윈의 첫째 아들 윌리엄은 1839년에 태어났습니다. 다윈은 아들의 탄생 때부터 약 5년에 걸쳐 아들의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다음은 다윈의 아들 윌리엄이 태어난 첫 주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생후 첫 주 동안 그는 마치 어른처럼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켜고 재채기를 했다. 손을 얼굴로 가져갔는데 빨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는 본능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울었지만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중략)     


아들 윌리엄에 대한 찰스 다윈의 관찰 기록(출처: https://www.darwinproject.ac.uk/people/about-darwin/family-life/darwin-s




어떠신가요? 저는 읽으면서 매우 객관적이고, 감정이 배제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가 귀엽다거나, 사랑스럽다거나 하는 부모의 애정어린 시선보다는 과학자로서 마치 관찰 동물을 살펴보듯이 행동을 자세하게 묘사했어요. 지면 밖에서 다윈은 애정 가득한 부모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일기에서는 부모의 애정어린 관점은 배제하고,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켜고 등등 인간의 신생아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기록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네요.     


다윈과 첫째아들 윌리엄


다윈은 왜 이런 기록을 했을까요? 본업인 진화론 연구만으로도 바빴을텐데, 아마 첫 아기를 마주한 후 흥미로운 연구 대상으로 여겨졌던 건 아닐까요? 제가 다윈과 첫째아들 사진을 찾기 위해 위키피디아에 검색했더니, 윌리엄 다윈에 대한 소개는 이렇게 나왔어요: 다윈의 첫째아들이자 심리학 연구대상

자신의 아이조차 허투루 보지 않고 심리학 연구를 위해 관찰했다니, 다윈이 정말 뛰어난 학자였음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네요.


아무튼, 다윈은 이 기록을 통해 어떤 연구 문제를 풀려고 했던 것 같아요. 나중에는 자신의 아이뿐만 아니라 주변의 여러 아이들을 관찰했고 논문으로 발표했으니까요. 이 논문은 아동의 감정 표현을 다루고 있습니다.      



다윈 당시에는 아동이 독립된 연구 분야는 아니었어요. 다윈 이후에는 20세기 초가 되어서야  아동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20세기부터는 아동에 대한 연구방법이 다양해졌지만, 그 중에서도 다윈처럼 자신의 아이들을 연구한 학자로 피아제를 들 수 있어요. 피아제는 아동발달 분야에서 너무나 유명한 학자예요. 저는 대학에서 아동 수학지도, 언어지도, 놀이지도 등 각종 영유아 보육 과목을 가르치는데 과목마다 이론적 배경에서 제일 핵심으로 거론되는 학자가 바로 피아제예요. 피아제는 아동발달 연구의 거장으로 추앙받는 학자입니다. 


장 피아제(1896-1980)


피아제가 어떻게 이런 이론을 만들었는지 아시나요?      


바로 자기 아이들을 연구했습니다. 피아제는 슬하에 재클린, 로랑, 루시엔느 세 남매를 두었어요. 그 아이들을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관찰한 사례들, 실험과제를 통해 아동의 행동과 사고 과정을 연구했어요(나중에는 다른 아이들도 관찰했겠지만요). 그렇게 하여 구성주의 인지발달 이론을 정립했답니다.      


피아제의 가족(http://piaget.weebly.com/)





현재는 직접 관찰과 기록 외에도, 아동의 발달을 연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어요. 가령 질문지법은 체계적으로 질문을 정해놓고, 이를 여러 명에게 나눠주고 응답을 돌려받는 방식이예요. 질문지를 돌릴 인력만 있다면 하루에 몇 백명이든 몇 천명이든 설문지를 받을 수 있어요. 이러한 질문지법은 아동을 연구하는데 상당한 기여를 했고 아직도 활발히 사용되고 있어요. 


또 요즘은 기술의 발달로 기능적 자기공명영상, 뇌파, 시선추적, 웨어러블 기기 등이 아동 연구에도 활용되고 있어요.  이 스마트한 기술을 활용해서, 언어로 자기 상태나 생각을 표현하기 어려운 영아들의 내면을 알 수 있습니다. 

좌: 영아의 시선추적을 활용한 실험(출처: https://www.babylab.ucla.edu/eye-tracking/)

우: 영아의 뇌파 측정 실험(출처: https://www.babiesandlanguage.com/electrophysiological-methods/



그렇게 보면, 최신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요즘같은 때에 여전히 사람의 눈과 손에 의지해서 하는 기록이 어떠한 쓸모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관찰 및 기록은 아동에 대해 알 수 있는 가장 쉽고도 신뢰성 있는 연구방법으로 계속 활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관찰과 기록이 강력한 효과를 보이는 곳은 바로 어린이집과 유치원입니다. 관찰은 보육/교육 활동을 진행하고 평가하는 핵심 도구입니다. 


관찰이 평가도구라구요? 흔히 평가라고 하면 시험지, 시험점수가 떠오를 것 같아요. 그런데 영유아를 대상으로는 시험을 실시하기가 어렵습니다. 영유아의 발달 특성을 볼 때 인위적인 시험 상황에서 문제를 푸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시험이란 문해 능력이 요구되는 경우가 많은데 글을 읽고 써서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영유아는 많지 않아요.      


그렇기에 영유아의 발달, 교육활동에 대한 평가는 교사의 눈을 통한 관찰과 교사의 손을 통한 기록으로 이루어집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의 선생님은 놀이, 활동, 일상 상황에서 영유아의 다양한 행동을 기록합니다. 여기에는 정해진 답이 있을 수 없어요.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배움은 형식적인 수업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고, 놀이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아이들마다 놀이의 모습이 다르고, 이는 오늘과 내일도 다릅니다. 그렇기에 교사는 개별 아이들에 대해 기록을 하고, 이 자료로 아이들을 평가합니다. 영아는 월 2회 이상, 유아는 월 1회 이상 기록을 하게 되어 있어요.      


아래는 현장에서 교사가 작성하는 보육일지의 예입니다. 아이들이 그냥 노는 것같고, 교사도 옆에서 그냥 노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이렇게 보육일지를 통해 아이들의 놀이를 평가하고, 어떤 부분을 지원해줄지 계획을 합니다. 


출처: 한국보육진흥원 & 중앙육아종합지원센터 (2022). 보육교직원을 위한 '기록의 모든 것' 워크북, 14쪽



기록한 자료는 어떻게 활용이 될까요? 한 아이마다 기록을 하다보면 흥미와 요구, 발달수준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물론 기록이 없더라도 하루종일 함께 생활하다보면 선생님은 자기가 맡은 아이들에 대해 잘 알게 됩니다. 하지만 기록을 통해서 표준보육과정 영역별로 살펴볼 수 있고, 기록이 누적되다보면 발달 특성과 변화 또한 알 수 있습니다. 


기록은 개별 아동에 대한 이해 뿐만 아니라, 반 전체의 교육 활동을 평가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선생님은 관찰 기록을 통해 우리 반의 교육활동이 아이들의 관심과 수준에 맞게 잘 이루어지는지 평가하고, 앞으로 어떻게 이들의 놀이를 지원해줄지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이루어지는 평가입니다.      




이처럼 보육/교육기관에서 관찰과 기록이 도구로 활용된다면, 집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분들이 아이가 태어난 후, 사랑스러운 모습, 자라나는 모습을 놓치기 아까워 글로 쓰고 사진도 찍고 계실 거예요. 그 자체로, 이는 두고두고 미소 지으며 볼 소중한 자료입니다. 


하지만 이는 기록을 반만 활용하고 계신 거예요. 기록을 ‘언젠가 다시 보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지금 당장 내 아이를 이해하고 도와주기 위해서’ 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여러분이 지금 일기장에, 혹은 휴대폰 어플에 육아일기를 쓰고 있다면 바로 다윈처럼, 그리고 피아제처럼 기록하고 계신 거예요. 이를 통해 다윈이나 피아제 같은 연구업적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내 아이에 대해 이해한다는 값진 결과는 충분히 얻을 수 있어요.   


 ‘내 아이에 대해서는 굳이 기록안해도 잘 알아요.’ 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릅니다. 그것도 맞는 말이예요. 하지만 흔해보이고 다 아는 내용이라도 기록해놓고 보면 그 안에서 기록된 내용끼리 새로운 인사이트를 주고, 아이에게 어떤 놀이나 자료를 지원해주면 좋을지 방향을 제시해주기도 합니다. 


‘육아일기는 쓰고 있지만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몰라 쓰기가 밀리는 분’

‘내 아이가 잘 크고 있는지 궁금한데 매번 비싼 검사를 받기는 어렵고, 스스로 이를 정확히 파악할 능력을 갖기 바라는 분’

들이 계시다면 이 글이 도움이 될거라 생각합니다. 


다음 글도 기대해주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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