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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민 Jan 05. 2022

여섯 살 남자아이가 캐치 티니핑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동학자 엄마의 관점에서 본 애니메이션 4: 캐치! 티니핑

얼마 전, 외가집에 다녀온 것이 시작이었다. 여섯 살 첫째는 한 살 위인 외사촌 누나가 요즘 푹 빠져 있다는 만화 ‘캐치! 티니핑’(이하 티니핑)을 같이 보게 되었다. 첫 인상은 


‘이거 여자 만화잖아? 별로 안 보겠는데?’


하는 것이었다. 남자 만화와 여자 만화라니 참 투박한 구분인 건 알지만 나도 모르게 이런 고정관념을 작동하게 된다. 만화는 남녀 가릴 필요가 없지만, 어쨌거나 티니핑은 여아 취향을 한껏 드러낸, 여아를 중심 타겟으로 만들어진 만화였다. 일단 온 화면이 너무 분홍분홍했다. 주인공 로미는 머리카락은 물론이고 눈썹까지 핑크색이다. 로미가 일하는 하트로즈 베이커리는 지붕부터 바닥 타일까지 죄다 핑크이고, 로미가 다니는 학교 운동장 트랙마저 핑크였다. ‘남자는 핑크’라는 말도 있긴 하지만 여러모로 여아의 취향을 노린 듯했다. 

[그림 1] 로미가 살고 있는 ‘하트 로즈 베이커리’의 내부. 심하게 핑크빛이다  (출처: 캐치! 티니핑 3화 부끄러워하지 마)


‘조금 보다가 말겠지.’


외가집에서 돌아온 후, 아이는 또 티니핑을 틀어달라고 했다. 아이가 만화를 보는 시간은 내가 집안일을 하거나 몰래 휴대폰을 볼 수 있는 시간을 의미하기도 하므로, 같이 만화를 보는 일은 잘 없다. 하지만 아이가 티니핑에 얼마나 흥미를 가질지 궁금했던 터라 몇 편을 같이 봤다.

초반에 티니핑을 보면서 느낀 소감은 스토리 전개가 밋밋하다는 것이었다.


‘왜 꼭 저렇게 변신을 하고 티니핑을 잡아야 하는거지?’


만화에서 변신 장면은 아이들의 로망을 채워주기도 하고, 애니메이션을 그리는 비용도 줄여준다는 걸 알지만, 어른의 관점에서 변신 장면은 지겹게 느껴질 뿐이었다.

매 화에서 새로운 티니핑을 잡는게 메인 스토리인데, 티니핑이 쉽게 잡히지는 않는다. 로미는 항상 초반에는 잘 나가는 듯 하다가 티니핑의 반격에 꺾이고, 마침내 해결책을 찾아 티니핑을 잡는데 성공한다. 거의 매번 이러한 플롯으로 가는데 티니핑을 잡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좀 밋밋하게 여겨졌다. 한껏 잡으려고 덮쳤다가 목표로 하는 티니핑이 피하는 바람에 바닥에 처박힌다던가 하는 몸개그도 자주 보니 싫증났다. 물론 이는 한 어른의 관점일 뿐이고, 아이는 뻔해 보이는 스토리 전개에도 깔깔 웃으며 봤다. 


티니핑에 대한 설정도 좀 유치해 보였다. 티니핑들은 자신의 이름에 걸맞는 마법을 쓸 수 있는데, 가령 베베핑은 아기의 순수함을 좋아해서 보는 사람마다 아기로 바꾸어 버린다. 베베핑의 마법에 걸려 어른이 순식간에 아기가 되어 앙앙 울게 된다. 똑똑핑은 공부를 방해하는 상대에게 마법을 쓰는데, 그러면 마법에 걸리기 직전의 표정으로 굳은 채 구구단을 계속 외게 된다. 초반에 이런 내용을 볼 때엔

‘이게 뭐야? 너무 유치하잖아.’

하는 마음이었다.                                                               

왼쪽 [그림 2] 만나는 사람을 아기로 바꾸는 베베핑 (35화 ‘아기가 좋아 베베핑’ 편)

오른쪽 [그림 3] 똑똑핑의 마법에 걸려 굳은 표정으로 구구단을 외는 로미 (47화 ‘공부할 땐 조용히, 똑똑!’ 편)


초반에는 그랬다. 그 때 뿐이었다. 글을 쓰는 오늘도 티니핑을 세 편이나 보았는데 이제는 익숙해져서 하츄핑이 새로운 핑을 잡으려고 점프했다가 바닥에 얼굴을 박는 장면도 그러려니 하고, 메모핑은 공책에 적는대로 이루어진다는 소개에서도 끄덕끄덕 하며 몰입해서 본다. 




티니핑을 계속해서 보다 보니 겹쳐 떠오르는 만화가 두 편 있었다. 하나는 ‘포켓몬스터’(이하 포켓몬)였다. 포켓몬은 피카츄, 파이리, 이상해씨 등 동식물을 닮은 몬스터를 잡고, 몬스터끼리 대결도 하는 내용의 애니메이션이다. 1세대 포켓몬의 종류는 그 엔딩곡에서도 알 수 있듯이 151마리였으며 잘 알려져 있는 전기, 물, 풀 등 뿐만 아니라 독, 드래곤, 악, 페어리 등 총 18개 타입으로 구성되어 있다. 8세대의 경우는 여기에 80-90마리가 추가되었다. 범주도 많고 개별 포켓몬 수도 많은데다, 포켓몬은 진화까지 한다. 꼬부기가 자라면 어니부기가 되고, 어니부기가 크면 거북왕이 된다. 

[그림 4] 다양한 포켓몬들 (출처: 포켓몬 공식 홈페이지)


캐릭터 구성의 스케일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돌아다니면서 말썽을 부리는 몬스터(혹은 티니핑)을 잡아 봉인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포켓몬들은 서로 싸움을 하고 진화도 해서 더 복잡하지만, 티니핑은 잡고자 하는 자와 도망가는 자의 양대 구도이기 때문에 더 명쾌하고 단순하다. 포켓몬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티니핑은 시시하게 여겨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대로, 티니핑은 그런 복잡한 걸 알 필요없다는 장점이 있다. 만화를 볼 때마다 금방 그 화에 나오는 새로운 티니핑이 금방 파악될 것이다.




티니핑을 보면서 생각난 또다른 만화는 바로 ‘카드캡터 체리(사쿠라)’ 였다. 

‘피리 피리 캐치링, 큐브 속으로!’

하는 로미의 주문들 들으면 

‘너의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라, 크로우 카드!’

하는 체리의 목소리가 자연스레 들렸다. 카드캡터 체리는 전설의 마법사 크로우가 만든 카드가 봉인이 풀려 돌아다니는 걸 잡아서 다시 카드로 돌아가게 한다. 크로우 카드의 종류는 범주화가 체계적으로 되어 있다. 우선 태양 속성과 달의 속성으로 나뉘고, 태양속성 중에서도 빛, 불, 땅 세 가지로 나눠진다. 그 아래에도 유사한 속성을 가진 카드끼리 모여 있다. 달속성 카드에는 어두움, 바람, 물이 있고 역시 하위 범주 카드들이 있다. 

[그림 6] 카드캡터 체리의 ‘크로우 카드’ (출처: 아마존 재팬)



티니핑은 크로우 카드의 요정들만큼 체계적인 분류는 아니지만 티니핑마다 특정 속성을 갖고 있고, 그 속성과 관련된 마법을 쓸 수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티니핑 시즌2의 로열핑들을 보면 하츄핑은 사랑, 조아핑은 친절함, 방글핑은 웃음, 믿어핑은 믿음 등 아이들에게 가르칠 만한 좋은 가치를 하나씩 내세우고 있다.


[그림 7] 시즌 2 '반짝반짝 캐치! 티니핑' 포스터에 나타난 로미와 로열 티니핑들 (출처: 재능TV 홈페이지)


 다른 티니핑은 더 종류가 많은데, 핑마다 갖고 있는 속성이 들쭉날쭉하다는 인상을 준다. 똑똑핑, 맛나핑, 소원핑 등은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경우는 그나마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딱 붙게 만든다는 딱풀핑이라던지, 아기로 만드는 베베핑은 도대체 무슨 목적인가? 그 외에도 쪼꼼핑, 홀로핑, 떠벌핑, 코자핑 등 한 회에 잠깐 재미거리로 등장하는 인상을 주는 핑들이 제법 있었다. 크로우 카드처럼 너무 진지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체계를 잡아놓고 캐릭터를 만들어야 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런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여전히 아이는 티니핑을 좋아한다. 유치하고 황당해보이는 설정이라도, 


‘이번엔 무슨 핑일까?’


하고 관심을 갖는다.어떤 사물이나 대상의 속성을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 인간, 특히 발달중인 어린 인간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특히 티니핑의 주요 시청자인 5-7세의 유아들은 더욱 그렇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자기에 대한 개념을 형성하기 시작하는데 이는 주로 외모, 소유물, 일상의 행동 등 관찰 가능한 특성으로 구성된다. 아직 전조작기 사고를 하므로 자신의 생각을 통합하여 자신이나 타인에 대한 일관된 견해를 갖기는 어렵다. 티니핑은 인간이 아니므로 비교에 한계가 있지만, 인간인 경우 자는 걸 유독 좋아하더라도  ‘코자핑’처럼 자는 것만 좋아하는 사람도 없고 ‘떠벌핑’처럼 떠벌어대기만 좋아하지도 않는다. 인간은 다면적인 특성의 종합이다. 하지만 여러 속성을 다 종합해 어떤 사람을 판단할 능력이 아직 미숙한 전조작기 아이들에게는 ‘악동핑’, ‘다조핑’, ‘시러핑’과 같이 이름만 들어도 그 대상이 어떠한 특성이 있는지 금방 파악이 되는 점이 매력적으로 여겨지는 듯하다. 이름과 걸맞는 외모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왼쪽 [그림 8] 부끄럼을 타는 부끄핑. 들고 있는 당근은 얼굴이 빨개지는 걸 상징하는 듯하다 (출처: 3화 '부끄러워하지 마~')

가운데 [그림 9] 애교가 많은 아잉핑. 개인적으로 특히나 귀여웠다 (출처: 2화 '아잉핑이 너무해')

오른쪽 [그림 10] 꽁꽁핑. 얼음조각같은 머리와 들고 있는 아이스크림, 색상이 대번에 얼음을 연상시킴 (출처: 48화 '다 얼려 버려, 꽁꽁핑')




유치하고 다소 어설퍼 보여도 아이가 좋아하면 그걸로 만족한다. 아니,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다. 티니핑은 요즘 정말 핫한 만화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이는 여전히 티니핑을 보고, 포켓몬스터도 본다. 포켓몬 카드를 한참 수집했는데, 최근에는 티니핑 캐릭터 피규어와 스티커도 하나씩 샀다. 온통 분홍색 천지인 만화 배경이나, 변신해서 치렁치렁한 모습이 되는데는 별 감흥이 없지만


‘라라핑은 네잎클로버가 그려진 물뿌리개를 들고 있어.’

‘똑똑핑은 혼자 조용히 공부하는 걸 좋아하지’


하고 핑들의 특징을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 


‘티니핑이 왜 좋아?’

‘그걸 잡아서 캐치하는게 재밌어. 또 이번에 어떤 티니핑이 나오는지도 궁금하고.’     


이런 모습을 보면 남자 만화, 여자 만화를 굳이 나누지 않아도 되는 듯하다. 만화를 볼지 안 볼지는 아이 당사자가 결정한다. 아무리 만화가 핑크빛 천지라도, 아이가 핑크를 좋아하든 안하든 아이는 자기가 좋아할 만한 요소가 있으면 찾아서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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