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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민 Nov 13. 2021

진짜 우리 곁에 있을 것 같은 친구, 달님이

아동학자 엄마의 관점에서 본 애니메이션 3: 반짝반짝 달님이

달님이는 장난감으로 먼저 알게 되었다. 동네 마트 2층에 장난감 전문 매장이 있는데 한 코너에는 여아용 인형들이 있었다. 달님이, 콩순이, 레미와 솔라 등, 3등신의 비율이고 눕히면 눈을 감고 젖병, 포대기 등이 같이 있어 유아들이 아기 돌보기 역할 놀이를 할 수 있는 특징이었다. 여러 인형들 중 달님이에 대한 첫인상은 

‘밋밋하다’

였다. 눈을 감고 뜨는 기능도 없었고 온통 헝겊으로 만들어져 촉감은 좋을지 몰라도 다른 인형들처럼 시각적으로 눈에 띄진 않고 수수했다. 아마 헝겊의 촉감을 장점으로 내세웠으리라. 그렇게 수수한 외모이지만, 달님이는 역할놀이를 컨셉으로 하여 소꿉놀이, 가게놀이, 아기돌보기 등의 다양한 제품으로 나왔다. 아이와 함께 TV를 보다 보니, 달님이 아이스크림 가게와 달님이 펫샵의 광고송을 나도 모르게 통째로 외울 정도였다. 




그렇게 광고로 몇 초씩 보이던 달님이가 어느 순간부터 만화로 나오기 시작했다. 달님이 완구를 만드는 토이트론과, 애니메이션 회사 선우앤컴퍼니가 만들었다. 달님이 시즌1은 2021년 4월 8일부터 26화로 기획되어 방영되었다. 예전에 헝겊인형 시절의 수수한 외모에서 벗어나 훨신 세련되게 변했다. 이에 맞춰 달님이 인형도 외관이 바뀌었다. 여전히 헝겊인형 버전도 나오긴 하지만, 컴퓨터 그래픽 애니메이션에 걸맞게 인형도 보다 또렷하고 입체적인 외모가 되었다.    


왼쪽: 발도르프 인형을 떠올리게 하는 봉제인형 달님이/중간: 여전히 봉제인형이지만 보다 세련된 외모의 달님이/오른쪽: 플라스틱 바디로 바뀐 애니메이션 캐릭터 달님이




달님이 애니메이션의 키워드는 ‘일상’이라 할 수 있다. 달님이는 6살 여아로, 이 애니메이션은 달님이가 가족 및 친구들과 겪는 일상을 소재로 한다. 달님이네 집 마당에 길고양이 가족이 찾아온다던가, 부모님의 갑작스런 일정으로 캠핑을 못가게 되어 할아버지, 친구들과 마당에서 캠핑을 한다던가, 동생이 따라다니며 귀찮게 해 동생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하는 등 달님이 또래의 아이들이 흔히 일상 생활 중에 겪을 수 있는 소재가 나온다. 이 때문인지, 달님이와 나이가 같은 6살 첫째 아이는 달님이를 무척 흥미롭게 보았다. 처음에는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이건 여자아이들이 보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아이가 계속 잘 봐서 그냥 두었다. 계속 보니, 주인공이 여아일 뿐이지 줄거리와 소재 측면에서는 꼭 남아 여아 구분 없이 모두 좋아하고 공감할 내용이었다. 공식 홈페이지를 보면 아이들이 겪을 수 있는 리얼한 일상을 담고자 하는 것이 기획의도라고 한다. 그 의도가 정말 잘 나타나 있고, 시청자가 보기에도 리얼한 일상이 잘 나타나 있다고 공감이 되었다. 


일상을 보여주는 만화는 달님이 말고도 있다. 뽀로로나 타요 등 의인화된 캐릭터가 나오는 만화들도 씻기 싫다던가, 음식을 골고루 먹어야한다던가, 놀이동산에 놀러가는 등 일상과 관련된 소재를 다룬다. 페파 피그나 추피와 친구들도 일상 중심의 스토리이다. 하지만 일단 의인화된 캐릭터이거나, 가족 없이 친구들끼리만 나오거나, 맥락이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어 공감에 한계가 있다. 


이에 비해 달님이는 배경, 등장인물 등 모두 리얼한 실제에 맞춰져 있다. TV 화면으로 달님이네 집을 보고 있노라면, 언젠가 이사가고 싶어서 방문했던 타운하우스가 생각났다. 거실의 TV와 소파의 배치, 그 옆 주방의 싱크대까지도 모두 실제로 가봤던 그 타운하우스가 생각날 만큼 똑같았다. 늘 단독주택살이를 동경하지만 아파트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저런 집에 사는 아이가 얼마나 될까? 실제로는 우리처럼 공동주택에 사는 경우가 더 많을텐데.’

싶기도 하지만, 집이 마치 실제를 보는 것처럼 구조며 디테일 부분이 구체적으로 반영되어 있어 낯선 느낌이 없다.     

달님이네 집: 현관에서 들어오면 양쪽에 거실과 부엌이 있는 구조의 타운하우스이다


배경을 현실처럼 구현한 것 외에도, 자잘한 소재나 소품 면에서도 리얼함이 여러 곳에 나타나 있었다. 가령 달님이가 가장 아끼는 달토끼 인형은 달님이 엄마가 달님이를 임신했을 때 직접 바느질해서 만든 것이다. 달님이네 가족은 캠핑을 자주 가며, 유기견을 데려와 키우고 길고양이에게도 먹이를 준다. 이러한 구체적인 부분들이 모여서 달님이 이야기가 정말 실제로 겪을 수 있는 것처럼 몰입하고 공감하게 해준다. 


심지어 달님이의 목소리도 진짜 어린이처럼 느껴졌는데, 찾아보니 아역배우가 담당했다고 한다. 달님이 친구들인 써니와 별이도 실제 어린이들이 쓰는 말투나 억양을 잘 살려서 말한다.




달님이 만화는 여러 면에서 성 고정관념을 깬다. 달님이의 아빠는 케이크 가게를 하는데, 집에서도 아이들에게 자주 식사를 차려준다. 남성 파티시에가 많긴 하지만 요리가 전통적으로 여성의 역할이라 여겨져 온 걸 고려하면 신선한 설정이다. 달님이 아빠는 아줌마들과 수다를 잘 떨고 사교성도 좋으며, 다정다감하고 섬세하고 꼼꼼한 성격이다. 


가족들에게 케이크를 나누어주는 달님이 아빠 (7화 아주 특별한 케이크)


달님이의 엄마는 건축 사무소에서 일하는데, 집에서 화장실을 고치고 강아지 집도 뚝닥 만든다. 건축계는 흔히 남초로 여겨지므로, 여성이 건축 회사에 다닌다는 설정이 새롭다. 엄마는 시원시원하고 유능하고 거리낌 없는 성격이다. 전통적으로 생각해온 남성의 일과 여성의 일, 혹은 남성의 성격와 여성의 성격이 달님이 부모님의 경우는 뒤바뀌어 있다. 하지만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 아마 우리가 주변에서 직접 만나고 알아온 사람들이 실제로 그렇기 때문이 아닐까? 실제 세계에서는 누구도 고정관념에 맞춰 살진 않는다. 


강아지 집의 설계도를 그리고 직접 만드는 달님이 엄마 (3화 '밀크집 만들기' 중)


성별뿐만 아니라 연령에서도 고정관념을 깬다. 달님이는 할아버지와 자주 시간을 보낸다. 할아버지는 바쁜 엄마와 아빠를 대신해 종종 달님이를 돌봐주신다. 조부모가 양육을 도와주는 경우 할머니가 주로 담당하는 사례를 더 많이 봐와서 그런지, 할아버지와 함께 다니는 모습이 새로웠다. 게다가 애니메이션에 드러난 노인의 모습은 어떠한가? 노인이 아예 안 나오는 경우도 많고, 나오더라도 꼬부랑한 모습과 목소리를 한 호호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쉽게 떠오른다. 하지만 달님이의 할아버지는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요즘 할아버지이다. 기타를 잘 치고, 달님이가 흥얼거린 멜로디를 멋진 음악으로 만들기도 한다.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조르는 달님이에게 

‘그럼 엄마 아빠에겐 비밀이다. 너무 많이 사준다고 뭐라 하거든.’

하고 눈치보는 모습도 보인다. 마당에서 캠핑할 때에는 아이들이 물총 싸움을 차자 호스로 물을 뿌리는 장난을 함께 치고, 함께 기타를 치며 노래하기도 한다. 실제 우리 아이들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은 이러할 것이다.


캠핑하는 아이들에게 기타를 쳐주는 달님이 할아버지 (2화 '마당에서 캠핑' 중)

 

달님이 또한 입체적인 성격으로 설정되어 있다. 공식 사이트에 들어가보면 달님이에 대한 소개가 7문장으로 되어 있다. 이를 보면 감수성이 풍부하다, 상상력이 뛰어나다, 타인이나 동물/사물에 관심이 많다, 감정에 솔직하다, 분위기를 밝고 활기차게 만든다, 호감을 산다, 말수가 많다, 질문을 많이 한다, 동생을 잘 챙겨주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다 등이다. 즉, 몇 마디로 요악할 수가 없다. 앞서 꼬마버스 타요의 라니의 경우 ‘상냥하고 귀엽지만 겁이 많고 애교가 있다’고 소개된다. 뽀롱뽀롱 뽀로로의 루피는 ‘요리를 좋아하는 상냥한 성격’으로 소개된다. 이처럼 한두 문장으로 요약된 스타일의 소개와 많이 다르다. 어찌 보면 한 사람의 성격을 몇 단어로 말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미국의 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는 ‘중층 기술(thick description)’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이는 ‘인간행동을 대할 때, 상황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도 그 행동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행동 그 자체만이 아니라 문맥도 포함해 설명하는 것’을 말한다. 달님이 인물 소개는 중층기술의 모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달님이라는 캐릭터가 허구가 아닌, 우리 주변에서 실제로 만난 것처럼 생생하게 다가온다.


달님이, 써니, 별이는 친하게 다니는 3인방이다. 어쩌다 이 셋이 잘 놀게 되었을까 궁금하다. 여섯 살이면 동성 친구와 친하게 지내려는 경향을 보이는 시기이지만, 이는 아이마다 다르다. 여섯 살인 내 아이도 자주 어울리는 어린이집 친구들을 보면 동성과 이성이 섞여 있다. 성별도 중요하긴 하지만, 아이마다 성격이나 노는 스타일, 취향이 맞아야 잘 논다. 


달님이, 써니, 별이 3인방 (4화 '햄스터가 사라졌어요' 중)


써니는 활기차고 왈가닥이며 자유분방한 성격이고 운동 신경이 좋다. 공식 페이지의 인물 소개를 보면 써니는 엄마와 산다. 왜 아빠와 살지 않는지는 나오지 않지만, 이 또한 우리 주위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가족의 모습이다. 가족의 유형이 다양하다는 사례를 애니메이션에서 보여준 점이 좋았다. 

별이는 3인방 중에 유일한 남아라는 점에서 눈길이 갔다. 별이는 단정히 앞머리를 내리고 안경을 썼다. 한 눈에 봐도 얌전한 성격일 것 같다. 별이는 책읽기를 좋아하고 과학자가 꿈이며 약간 소심한 면도 있다. 달님이와 써니가 어떤 계획을 꾸미며 별이에게도 같이 하자고 하면, 별이는 주로 책을 펼치며

‘난 사양할래.’

라는 단골 멘트를 한다. 별이는 조심성이 많아 마당 캠핑을 할 때에는 가장 먼저 나방 그림자를 보고 귀신같다며 겁에 질려 한다. 유치원에서 자연 체험학습을 나갔을 때에 달님이와 써니는 곤충을 보고 신나하지만, 별이는 무서워한다. 남자아이라고 해서 다 활동적이고 모험을 좋아하고 거침없는 것은 아니다. 어떤 남자아이는 별이처럼 책 읽는 걸 더 좋아하고, 곤충을 싫어할 수도 있다. 남성은 흔히 힘이 세고 씩씩하고 용감할 것으로 그려지는데, 달님이 만화에서는 이러한 남성의 고정관념을 깨고 전형적이지 않은 남아의 모습을 보여준 점이 칭찬할 만하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별이 같은 남자아이도 많다. 


달님이의 제안을 거절하고, 책을 보는 별이 (8화, '범인을 잡아라' 중)




달님이 만화는 아이의 역할을 부각시키는 부분이 자주 나온다. ‘달님이 의사 선생님’ 편에서 달님이는 의사 역할놀이를 하다가 실제로 강아지 밀크가 아픈 것을 알아차린다. 밀크를 진료한 수의사 선생님은 

‘달님이가 밀크가 아픈 걸 발견하고 일찍 와준 덕분에 밀크가 금방 나았구나.’

라며, 달님이의 공로를 추켜세운다. 이를 보며 시청자들은 놀이가 놀이로만 끝나지 않고, 실제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메시지를 받는다. (이 와중에 수의사 선생님도 여성으로 설정하여 성 고정관념을 또 한 번 깨준다)

‘아이스크림 가게’ 편에서 달님이는 갑자기 일이 생긴 할아버지 친구를 대신해, 할아버지와 함께 아이스크림 가게를 본다. 할아버지와 달리 달님이는 아이스크림 이름을 종류별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잘 구분한다. 할아버지는 뭐가 뭔지도 모르지만, 달님이는 손님들에게 척척 아이스크림을 찾아준다. 


손님이 주문한 아이스크림 '별빛총총레몬'을 찾느라 헤매는 할아버지와, 금방 찾은 달님이 (9화 '아이스크림 가게' 중)


실제로 아이가 아이스크림 가게 일을 돕는다고 하면

‘네가 무슨~ 가만 있는게 도와주는 거야’

하고 무시당했을지 모른다. 만화에서는 어른의 일을 해보고 싶은 아이의 마음이 잘 구현되어 있다. 할아버지는 

‘달님이 덕분에 아이스크림 많이 팔았거든~’

하고 가족들에게 달님이의 공로를 분명히 전한다. 그 장면을 보는 우리 아이의 얼굴에도 어느새 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달님이를 보면서 애니메이션에 꼭 남아용과 여아용을 구분하지 않아도 재밌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애초에 남아용과 여아용이란 건 없지만, 남아 둘을 키우다보면 남아들이 주로 더 보는 만화가 있었다. 가령 탈것, 공룡, 로봇, 곤충 등이 나오는 만화는 주로 남아들이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첫째 아이는 성역할 고정관념이 생기기 시작하는 5-6세 유아기에는 카봇, 또봇v, 고고다이노, 슈퍼윙스 등 소위 ‘남자 만화’를 주로 봤다. 한편 ‘시크릿 쥬쥬’, ‘캐치 티니핑’ 같은 만화는 전혀 볼 기회가 없었다. 달님이도 여자 장난감이라 생각했기에 볼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우연히 본 달님이는, 꼭 성별 구분하지 않고 재밌게 볼 수 있는 만화였다. 고정관념을 깨니, 오히려 더 리얼한 일상이 잘 드러난 것 아닐까? 앞으로도 이런 만화가 많아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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