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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민 Dec 07. 2023

어린 영아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요?

기록과 평가가 중요한 이유


아이가 태어난 후, 100일 정도까지는 아이와 같이 사는 삶에 적응하는 기간이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어린 아이와 말이죠. 아이를 낳아 집에 데리고 온 이후부터는 아기를 돌보는데 24시간이 고스란히 들었습니다. 아이는 2시간마다 젖을 찾았고, 수시로 기저귀를 갈아야 했습니다. 그럴 때 기록할만한 내용은 언제 수유를 했고 기저귀를 갈았는지 정도였어요. 스마트폰 어플을 통해 수유를 언제 몇 분동안 했는지 기록하고 기저귀를 간 회수도 체크하곤 했어요. 


아래는 첫째가 한 달 쯤 되었을 때 하루 간의 수유기록입니다. 수유를 시작할 때 어플에서 스탑워치를 눌러놓고 마치고 나서 또 스탑워치를 누르면 자동으로 시간이 계산되어요. 이 그래프를 보니 또다시 그 때의 감정이 밀려오네요. 밤에도 2-3시간마다 수시로 깨고 밤낮 없이 젖을 먹이던 시절... 그 아이가 이제는 초등학생이 되었네요. 


이렇게 혼자 책가방 메고 학교에 가는 의젓한 학생이 되었어요.


아무튼, 100일 무렵까지는 먹이고 재우고 하는 아이의 기초적인 요구에 맞춰 생활하기 바빴어요. 






100일쯤 지나면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 핏덩이같은 모습 대신 살이 올라 포동포동한 모습이 됩니다. 깨어 있는 시간도 늘어서 제법 낮시간에는 놀기도 합니다. 이 때부터 영아기 부모의 고민이 시작됩니다.      


‘집에서 뭘 하고 놀아줘야 하나?’     


딱히 엄마가 옆에서 뭔가 해주지 않더라도, 여타의 조건만 갖춰지면 아이는 스스로 놀 수 있습니다. 혼자 환경을 탐색하려고 하지요. 아직 스스로 이동을 하거나 물건을 쥐어보기 어렵더라도 보호자의 도움을 받아 터미타임을 하면서 놀잇감을 바라보거나 만져봅니다.      



4개월 무렵의 첫째



개월 수가 늘어나면서 아이는 점점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납니다. 배가 부르고 잠을 잘 잤고 기저귀도 갈아주었다면, 아이는 제법 혼자 놀 수 있습니다. 이를 지켜보면서 부모는 이런 고민을 하기도 합니다.     

 

‘아이와 어떻게 놀아줘야 하지?’ ‘이제 뭘 가르쳐야 하나?’     


무엇을 가르치고 어떻게 놀이할지를 알기 위해서는, 이 아이들에게 기대되는 학습/발달 내용이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가령 돌도 안된 아이에게 한글 쓰기를 가르치는 것은 무리이지요. 학습지, 교구 등에서는 다양한 학습 수준을 제시하고 있지만 보편적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전문가들이 의논해서 타당하다고 결정한, 영아 보육의 내용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국가수준의 보육과정인 제4차 표준보육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보육과정이란 무엇일까요? 구체적인 보육의 목표와 내용을 알려주는 가이드입니다. 한국에서 어린이집이 1990년대에 생기기 시작했는데, 최초의 보육과정은 2007년도에 고시가 되었어요. 이 때는 처음으로 보육과정을 만들면서 보육서비스가 일정 수준이 보장되기를 바라는 취지였지요. 그것이 2차, 3차를 거쳐서 2019년도에는 4차 표준보육과정이 고시되었어요. 현재 어린이집에서 적용되고 있는 제4차 표준보육과정의 내용을 함께 살펴볼까요? 


보건복지부 (2020). 제4차 어린이집 표준보육과정 해설서 표지



표준보육과정에서는 추구하는 인간상을 제시하고 있어요. 즉, 이 보육과정을 통해서 영아들이 이러이러한 사람으로 자라났으면 좋겠다, 라는 비전을 제시한 것이지요. 이는 건강한 사람, 자주적인 사람, 창의적인 사람, 감성이 풍부한 사람, 더불어 사는 사람입니다. 영아기 자녀가 있다면, 자녀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이 인간상의 내용을 한 번 읽어보세요. 그러면 더욱 이 인간상의 의미가 와닿을 것 같아요. 저는 건강하고 행복하게,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사는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어요. 


표준보육과정의 영역은 아래와 같은 6개로 되어 있어요. 기본생활, 신체운동, 의사소통, 사회관계, 에술경험, 자연탐구 이렇게 6개입니다. 


가령, 초등학교 1학년인 저희 첫째는 국어, 수학, 바른생활, 슬기로운 생활, 즐거운 생활 등의 과목을 배우더라구요. 표준보육과정의 영역이 초등학교의 과목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이해가 빠를 것 같아요. 영역별로 나누어 봄으로써,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전인적인 발달을 이룰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이 때 중요한 점은, 이러한 내용을 모두 영아기에 완벽하게 달성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목표라고 써놓긴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영아가 경험해야 할 내용’입니다. 그리고 기대치가 낮게 설정되어 있습니다. 


인지교육의 대표 영역이라면 언어와 수학이라 볼 수 있어요. 언어와 관련된 '의사소통' 영역을 보면 목표에서 한글을 읽고 쓴다 라는 식의 내용은 없지요. 일상생활에서 듣고 말하기를 즐기고, 읽기와 쓰기에 관련된 관심을 보이고, 책과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수학 관련 내용이 있는 ‘자연탐구’ 영역을 볼까요? 여기에서는 ‘물체의 수량에 관심을 가진다.’ ‘주변 공간과 모양을 탐색한다.’ ‘규칙성을 경험한다’ 라고 되어 있어요.      


이는 영아의 놀이와 일상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보육교사를 대상으로 한 표준보육과정 해설서 내용을 한번 살펴볼게요. 아래는 0-1세반의 자연탐구 영역의 경험 실제 사례 중의 하나입니다. 


보건복지부 (2020). 제4차 어린이집 표준보육과정 해설서. p. 131.


이 내용은 다소 시시하게 여겨질지도 모릅니다. '겨우 손 씻는게 무슨 수학, 과학 교육과 관련되지?'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몰라요. 어른에게는 단순 반복되는 일과일 뿐이지만, 0-1세 아이들에겐 사물의 성질을 배우게 되는 흥미로운 탐구의 시간이예요. 


한 사례만 보면 감이 안 올수도 있으니, 이번에는 2세반 사례를 볼게요. 이것도 자연탐구 영역의 사례입니다. 아이들이 구슬꿰기를 하면서 자연스레 색깔, 모양에 대한 분류를 경험한다는 내용입니다. 


보건복지부 (2020). 제4차 어린이집 표준보육과정 해설서. p. 240.




이상의 내용을 통해 볼 때, 표준보육과정은 체계적으로 6개 영역의 내용이 설정되어 있지만, 놀이와 일상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평범하고 별것 없어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린이집 영아반 교사라고 하면 '그냥 애들 봐주는 사람 아니야?' '애들이랑 놀아주는거지 딱히 가르치는 건 아니잖아.' 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아요. 영아반 보육교사는 아이들과 놀이합니다. 하지만 이는 놀이하게 방치한다거나, 놀이가 가치없는 것을 의미하진 않아요. 보육교사는 이들의 놀이를 관찰하고, 적절하게 반응하며 앞으로 어떤 자료나 놀이 경험을 제공하면 좋을지 평가한답니다. 


아래는 영아반 교사가 작성하는 보육일지의 예시인데요. 이를 보시면 영아들의 놀이가 기록되어 있고, 거기에 대한 평가나 지원 내용이 보라색으로 표시되어 있어요. 보시면 자동차를 굴리며 노는데 블록이 계속 흩어진다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재질인 우레탄 블록을 제시한다거나, 우레탄 블록 쌓기를 어려워하니 교사가 모델링으로 보여준다거나 하는 지원 방안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어요. 이렇게 해서, 아이들의 놀이는 점점 발전되고 그 안에서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어요.





이상을 통해 보면,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로 어른이 특별히 뭔가 해주지 않더라도 아이는 알아서 표준보육과정의 이러한 영역들을 경험하고 있을거란 생각이 들지 않나요? 어른이 먼저 놀잇감을 제시하거나, '놀아주어야 한다'는 생각은 내려놓아도 좋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가 알아서 놀게 방치하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부모가 영아기 자녀의 학습과 발달을 최대로 지원해주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바로 관찰입니다.


관찰을 하면 아이의 현재 발달 상태는 어떠하며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어떤 놀이를 주로 하는지 알 수 있어요. 놀이 지원은 거기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아이가 책을 좋아하고 기어다니는 것을 좋아하는데 착안하여 도서관 어린이자료실에 데려갔었어요(막내, 11개월 무렵)
오빠의 말랑이 장난감을 만지며 좋아하는 것을 보고 다양한 촉감의 사물을 제공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아이를 돌보며 수시로 관찰을 하고 계실거예요. 잘 놀고 있는지, 위험한 것은 없는지, 기저귀가 젖진 않았는지 등등이요. 그런데 관찰할 때 '놀이'에 초점을 둔다면, 놀이 지원과 관련된 새로운 생각이 솟아날거예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이의 특성을 좀더 새롭게 알 수도 있구요. 


집에서 아이와 놀이하는데 지루함을 느끼거나 어렵다고 여겨지신다면, 손에 잡히는 종이나 노트에 아이의 놀이 장면을 써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 놀이장면에서 한발짝 물러나 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기를 제안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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