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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민 Feb 12. 2024

4개월 아기와 출장 다녀오기

저는 대학교에서 예비보육교사를 위한 교과목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러 과목을 강의하는데 그 중의 하나가 '보육실습'이예요. 이는 학생들이 4주간 온라인으로 강의를 듣고 6주간 어린이집에서 하루에 8시간씩, 총 240시간을 보내며 실습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어요. 학생들이 실습하는 동안 담당교수로서 저는 실습기관을 방문합니다. 학생들이 실습을 잘 하고 있는지, 궁금한 점은 없는지 등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확인하고 격려도 하고 가는 목적이지요. 다른 과목에 비해 역동적이랍니다. 보육실습 기간이 되면 저는 전국 각지의 어린이집에서 실습하는 학생을 만나기 위해 기차, 버스, 지하철, 택시 등 모든 수단을 이용해 전국 각지를 돌아다닌답니다. 


문제는, 낳은지 얼마 안된 셋째를 키우는 가운데 이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일한다는 것은 꼭 제가 하는 대학 강의뿐 아니라, 다른 어떤 일을 해도 쉽지 않지요. 그래도 대학 강의는 시간을 좀더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아이를 키우면서도 병행할 수가 있었어요. 강의를 할 때에는 아이를 데리고 갈 순 없지만, 수업 준비를 하거나, 학생들의 질의응답에 피드백을 하거나 과제를 채점하기 등은 아이를 키우면서도 제가 좀더 부지런하면 충분히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강의를 할 때엔 아이를 친정 엄마에게 맡겼고, 그렇지 않을 때엔 직접 아이를 보면서 일을 했어요. 일주일 내내 부탁드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저의 일도 완전한 풀타임이 아니기에 남의 도움은 최소한으로 하면서 주어진 일을 해내고 싶었습니다. 


첫째는 초등학교 1학년이고 둘째는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어서 낮시간에는 젖먹이 막내를 보며 할 수 있는대로 일하고, 나머지 업무는 밤에 처리하곤 했습니다. 새벽 1-2시에 잠드는 때도 예사였어요.


그러다가 보육실습 기관방문의 때가 돌아왔습니다. 방문 명단을 받아보니 서울, 경기, 충청, 경상, 강원 등 지역이 다양했어요. 기관 수는 총 20여 곳이나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를 친정 엄마에게 맡기고 혼자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문제가 생겼습니다. 약 100일이 지난 무렵, 저희 셋째는 모유를 선택한 것이었어요. 강의 때문에 학교에 다녀오노라면 친정엄마가 셋째를 봐주곤 하셨어요. 2-3개월 무렵까지만 해도 분유를 대략 먹긴 했는데 100일쯤 되니 아이가 젖병을 아예 거부하기 시작했어요. 제가 출근했다가 집에 오면 거의 10시간쯤 되는데 그 동안 분유를 거의 먹지 않고, 아이는 외할머니 등에 업혀 잠만 자곤 했어요. 이건 외할머니에게도, 아이에게도 힘든 일이었습니다. 

모유수유를 하기 위해, 출근해서 퇴근까지 2회 정도씩은 유축을 해야 했어요


강의는 아이를 데리고 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실습기관 방문은 어쩌면 가능할 것 같았습니다. 실습생과 원장님을 만나 이야기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고, 아이도 그때는 조용히 있을 수 있을 듯했어요. 이렇게 해서 젖먹이 막내를 데리고 전국을 돌아다니는 출장이 시작되었습니다.




첫 번째 출장지는 수원이었어요. 3월말이었는데, 막내는 고작 4개월 무렵이었습니다. 


아직 배냇저고리 입는 이런 아기를 데리고 출장을 간다니요...



제가 사는 대전에서 서울까지 기차를 타고 자주 다녔기 때문에, 수원도 금방 갈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게다가 수원은 서울까지 안가도 되니 훨씬 가까운 느낌이었습니다. 네이버 길찾기를 활용해서 몇 번이나 저희 집에서 수원의 목적지까지를 검색해보았습니다. 신탄진역에서 수원역까지는 1시간 21분 거리였어요. 수원역에 내려서 버스를 타면 길어도 30분 안에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고 나왔습니다. 


출장 당일, 첫째와 둘째가 각각 학교와 어린이집으로 간 이후, 막내를 안고 길을 나섰습니다.


신탄진역에 도착해서 잠시 수유실에서 재정비를 했어요. 아이와 함께 어디든 다니려면 수유실이 필수인 것 같아요. 그 전에는 들어가보지도 않았던 수유실인데, 편하게 짐을 풀고 아이 기저귀를 갈 수도 있어서 정말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신탄진역 수유실내 
신탄진역을 자주 왔었는데 수유실은 처음 들어가보았네요.


서울로 출퇴근하면서 이곳에서 기차를 많이 타보았지만, 4개월 된 아기를 데리고 탄 것은 처음이었어요. 주위를 둘러보아도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온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도 평소처럼 출근할 때면 가벼운 홀몸으로 이곳에 서서 휴대폰을 보며 기차를 기다리곤 했어요. 아기를 데리고 가자니 긴장이 되었습니다. 


기차가 출발했어요. 4개월 아기는 먹고 자기를 반복해서, 다행히 기차에서도 잠이 들었어요. 수월하게 수원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수원역에 도착했어요. 역에서 나가 버스를 타야했는데,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더라구요. 한참을 걸어 역으로 나왔는데, 이번엔 육교를 건너야했습니다. 그래도 출장이라고 로퍼를 신고 나왔는데 벌써 발이 아프기 시작했어요. 6키로 가량의 아기를 아기띠로 안고 빨리 걷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타야하는 버스를 놓칠까봐 힘내서 육교를 올라가고 또 내려갔어요. 


목적지인 어린이집에 도착했습니다. 초인종을 누르자 원장님이 나오셨어요.

"안녕하세요? 어 아기도 데리고 오셨네요."

"네. 저희 막내인데 맡길데가 없어서요..이렇게 오니 교수인지 학부모인지 헷갈리실 것 같아요."

하고 웃자 원장님은 활짝 웃으며 

"아기가 너무 예쁘네요."하고 반겨주셨어요. 


마침 실습생은 아이들과 산책을 나갔다고 했어요. 어린이집의 여러 반이 같이 산책을 나가서 실내는 조용했습니다. 돌아오기까지 20-30분은 걸린다고 하여 원장님과 먼저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그러고 있는데, 만0세반의 담임 선생님과 아이가 눈에 띄었어요.


"어린이집 제일 막내반 아이예요. 어려서 오늘 산책을 같이 가지는 않았어요."

만0세반이라는 그 아이는 막 걷기 시작한, 돌무렵이었어요. 저희 막내와 같은 해에 태어났더군요. 생일이 빨라 곧 돌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저희 아이는 고작 4개월이었는데 말이예요. 


"우리 00이도 딱 요만할 때 어린이집에 왔어요."

원장님과 만0세반 선생님이 저희 막내를 보며 말씀하셨어요. 

"이 아이를 보니까 00이가 많이 큰게 느껴지네요."


이야기를 다 나누었는데도 아직 산책 나간 아이들과 실습생이 돌아오지 않았어요. 마침 막내가 칭얼거리기 시작했어요. 아기가 울면 배가 고프거나 기저귀가 젖었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 같았습니다. 


"교수님, 아기 기저귀 확인해봐야 하지 않아요? 기저귀 드릴까요?"

"기저귀는 저도 있어요. 그럼 염치없지만 여기서 기저귀 좀 갈아도 될까요?"

"당연하지요. 여기 어린이집인걸요."


그래서 저는 염치없게도, 실습기관 방문을 간 곳에서 막내 기저귀를 갈았습니다. 


"아기가 배고픈 것 같은데, 이 교실에서 수유도 하세요."


원장님은 무척 따듯하게 말씀해주셨어요. 어린이집에서 어린 아이들과 이들의 부모님을 오래동안 만나오셔서 그런지, 이런 부분에도 세심하게 배려하시는게 느껴졌어요. 




그렇게 첫 기관 방문을 잘 마치고 수원역으로 돌아왔고, 기차를 타고 잘 내려왔답니다. 

4개월 아이를 데리고 다녀온 출장, 걱정했던 것보다 무척 수월하게 다녀올 수 있었어요. 



그리고 이런 출장은 앞으로 열 번도 넘게 반복이 되었습니다. 그 다음 이야기도 글로 풀어볼게요.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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