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민 Feb 14. 2024

5개월 아기와 함께 전국 출장 중: 철원 편

저번 글에서 4개월 막내를 안고 거제에 당일치기로 출장 다녀온 이야기를 해보았어요. 이번에는 더 난이도가 높아졌습니다! 바로 대전에서 철원까지 당일치기로 다녀온 것이예요. 철원에 사는 수강생의 보육실습 기관에 찾아갈 예정이었어요.


철원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저는 철원에 가본 적이 없었고, 비무장지대 정도만 생각날 정도로 아는 게 없었어요. 


대전에서 철원까지 다녀오는 방법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철원군에는 세 개의 시외버스터미널이 있어요. 신철원, 동송, 와수리 이렇게 말이죠. 제가 가려는 곳은 와수리 터미널이 가장 가까웠어요. 


'같은 철원인데 아무데로 가도 되지 않을까? 일단 철원에 간 다음에 시내에서 이동하면 되잖아.'


이렇게 생각했습니다만, 그게 아니었어요. 신철원버스터미널에서 와수리터미널까지도 한 시간이 넘어요. 그러니 가려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터미널로 가는 것이 최적의 코스였습니다. 대전에서 동서울터미널까지는 두어 시간, 동서울에서 와수리까지는 또 두어시간이 소요된다고 했어요. 대전-거제 편도 세 시간도 힘들었는데 이번에는 편도가 네 시간이었습니다. 




"말도 안돼. 그냥 내가 볼테니 혼자 갔다와."


남편이 말했습니다. 저도 이번은 정말 어렵겠다고 생각했어요.


'웬만하면 친정엄마나 남편한테 맡기고 다녀올 수 없을까?'


아이는 5개월 무렵, 이유식을 일찍 시작해보려 했으나 잘 먹지 않았고 분유도 거의 먹지 않았어요. 제가 서울에 강의하러 다녀오는 날, 막내는 하루 내내 분유를 10미리 정도(100미리가 아닙니다!!) 먹고 나머지는 계속 외할머니 등에 업혀 잠만 잤어요. 눕히면 바로 깨서 울고 말이죠. 철원은 버스 편도 시간만 네 시간이고, 집이나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리니 최소 10시간은 걸릴 예정이었어요. 


'몸이 힘들어도 그냥 데리고 가자.'


몸이 힘든 것과 마음이 힘든 것 중에 몸이 힘듦을 선택했어요. 가능하면 친정엄마나 남편이 힘든 것보다 제가 힘든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안고다니면서 제때 수유하고 기저귀를 갈아준다면, 아기는 집에 있든 버스 안이나 길에 있든 괜찮을테니까요. 


마치 캥거루 같았어요. 첫째, 둘째아이와 함께 책을 보다가 캥거루에 대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어요. 캥거루 새끼는 태어나면 어미의 주머니로 들어가서 일정 기간은 그 주머니 안에서 먹고 자고한대요. 주머니 안에 젖꼭지도 있다고 했어요. 그렇게 주머니 안에서 자라다가 크면 밖으로 나온다고 합니다. 그 순간은 제2의 출산같지 않나요?


'정말 편하겠는데? 그냥 주머니에 넣어놓으면 된다니'


막내를 낳기 전, 만삭 직전까지도 기차와 지하철 등을 타고 부지런히 서울로 강의를 하러 다녔어요. 그 때는 몸이 무거워 힘들긴 했지만 아기는 제 뱃속에 있었으니 따로 돌봐야하는 건 아니었어요. 이제는 제 몸 바깥으로 나와 한 인간으로서, 아기는 돌봄을 필요로 했습니다. 먹이고 기저귀 갈고 재우는, 기초적인 욕구를 채워주느 것의 반복이예요. 캥거루처럼 주머니에 넣어놓기만 하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어찌보면, 캥거루보다는 더 손이 가겠지만 아기띠에 안고 다니는 것도 캥거루 주머니와 비슷하단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캥거루는 아니기에, 다른 주머니가 필요하긴 했습니다. 바로 아기띠와 가방이예요. 아기띠로는 아기를 안고, 가방에는 필요한 물건들을 넣어야 했어요. 이 때부터는 백팩 형태의 기저귀 가방도 샀습니다. 그 전까지는 출근용 토트백을 가지고 다녔는데, 철원까지 왔다갔다 하려면 그런 걸로는 안  될 것 같았어요. 지퍼로 사방이 다 막혀있고, 등에 멜 수도 있는 그런 배낭이 필요했습니다. 






철원 출장을 가는 날 아침이었어요. 어두운 안방에서 알람이 한 번 울리자마자 얼른 끄고 거실로 나왔습니다. 전날 미리 챙겨놓은 옷을 입고 가방을 쌌어요. 아기띠를 하고 안방으로 들어가 아기를 아기띠 안에 재빨리 넣었습니다. 아기는 다행히 계속 잠을 잤어요. 자켓을 입고, 가방을 메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파트 단지에서 나와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갔어요. 아직 날은 어두웠어요. 길가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희 동네에서 가까운 북대전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를 탔습니다. 북대전에서 동서울로 가는 시외버스 첫 차는 6시 55분이었어요. 대략 두 시간 걸린다고 치면 오전 9시경에 동서울에 도착할 예정이었습니다. 막내를 데리고 집에서 나와 시내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을 가서 북대전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했어요. 그 즈음에 해가 밝아오기 시작했어요.


이제 해가 밝아오는데 5개월 아기를 데리고 철원까지 다녀와야 한다니요... 하루 잘 마치고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북대전 시외버스터미널은 아주 작아요. 그냥 시내버스 정류소 같은 느낌이고, 승차권 발매기가 하나 있을 뿐이랍니다. 

시간표도 찍어보았습니다. 


동서울행 시외버스에 올랐습니다. 평일 아침, 서울로 가는 버스는 만석이었어요. 커튼을 쳐서 어두컴컴한 버스 실내에서, 아기도 저도 계속 잤어요. 아기가 잘 자주어 고마웠습니다.


버스가 드디어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했어요. 터미널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화장실 다녀오기였어요.


아기띠를 하고 화장실 가기는 정말 난이도가 높은 일이예요. 아기띠를 한 사람을 배려해서 화장실 내에 아기가 앉는 자리가 설치된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되어 있다고 해도 저처럼 짐이 많은 상태에서는 아기띠에서 아기를 내려 좌석에 앉히기가 쉽진 않아요. 게다가 자리도 너무 좁았습니다. 그래도 또다시 두 시간 이상 버스를 타고 가야 하니 화장실을 다녀오긴 해야 했습니다. 


어찌저찌 다녀오니 곧 와수리 행 버스 출발 시각이었어요. 부지런히 버스 승강장을 찾아 걸었습니다. 



제가 탈 버스 승강장을 찾았어요. 와수리는 일동방면이네요. 와수리행 버스는 포천의 일동과 이동을 지나서 와수리를 지나가고, 그 이후에도 여러 정거장을 지나는 코스였습니다. 


'이런 버스는 어떤 사람이 탈까?'


오전 9시가 조금 넘은 무렵, 동서울에서 일동방면 버스에 오른 사람은 꽤 있었습니다. 다들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것이겠지요? 아마 그 승객들도 저를 보면서 


'저 사람은 어린 아기를 안고 누구를 만나러 가는걸까?'


하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동서울터미널을 빠져나온 버스는 한강을 옆에 두고 북쪽으로 계속 달렸어요. 구리를 지나고, 진접을 지나 위쪽으로 계속 갔습니다. 


대전에서 동서울로 오는 동안 두시간을 꼬박 잔 막내는, 버스에서 잠시 놀았습니다. 버스 표를 살 때 자동발권기를 이용하면 좌석을 직접 선택할 수 있어요. 저는 일부러 맨 뒷좌석 바로 앞자리로 끊었어요. 그정도면 만일의 경우 수유를 하게 되더라도 사람들 눈에 띄지 않을 것 같았거든요. 서울 올라오는 동안 수유를 못 했고, 동서울터미널에도 수유실이 없었어요. 와수리 가는 버스에서 적어도 한 번은 수유를 해야할 예정이었습니다. 5개월 아기의 수유텀은 길어야 3-4시간이었습니다. 


막내는 젖을 먹고 나서 또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저는 더이상 잠은 오지 않아서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한참 달리던 버스는 포천에 들어서서 일동과 이동에서 정차했어요. 승객이 내리고 탔습니다. 


와수리에 가까워지자 창 밖으로는 훈련받는 군인들, 군용차량 등이 눈에 띄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곧 드디어 와수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터미널에 내리자마자 보이는 택시를 탔습니다.


'기사님, 00어린이집 부탁합니다.'


5개월 된 아기를 안고 00어린이집에 가자고 하는 여자를 보면 아마도 


'거기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려나보다.'


하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제가 대전에서 여기까지 아기를 안고 왔다고 하면 얼마나 놀랄까 궁금해졌습니다. 




어린이집에서 방문을 잘 마무리하고 나왔어요. 마침 어린이집이 바쁜 날이어서 길게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실습생을 만나고, 원장님과 지도선생님과도 이야기를 마치고 나왔으니 중요한 일은 잘 한 셈이었어요. 


콜택시를 불러서 다시 시외버스터미널로 돌아왔습니다. 


'가능하면 그냥 빨리 타고 서울로 돌아가고 싶다.'


그런데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동서울행 버스가 한 대 떠나는 것이 보였어요. 그 다음 버스는 40분 뒤에 있을 예정이었습니다. 


터미널 주변은 상점과 식당이 있긴 했지만 작았어요. 여기서 40분을 보내야 했습니다. 



터미널 주변에 있는 상점가를 걷다가 우동집을 발견하고 들어갔어요. 아침 일찍 나오느라 아무 것도 못 먹었어요. 동서울에서 와수리행 버스 타기 전에도 딱히 먹을 것을 살 타이밍이 없었어요. 버스 타기 전까지 시간도 있으니 뭐라도 먹어야했습니다. 


아기도 오랜만에 아기띠에서 내려 무릎에 앉아 놀았습니다. 이제 막 5개월이 된 아기는 의자 등받이를 잡고 여기저기를 살펴보았어요. 


이날 먹은 점심입니다. 대전에서 철원까지 아이를 안고 왔는데, 더 잘 먹어야 할 것 같지 않나요? 여튼 저에게 주어진 따뜻한 식사였습니다. 더 시킬수도 있었지만 너무 돌아다녀서 그런지 오히려 허기진 줄도 몰랐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와수시외버스터미널로 돌아왔어요. 


지금와서 다시 이 사진을 보니 어쩐지 아련한 느낌이예요. 내가 저기를 갔었다니... 살다보니 철원도 와보게 되네요. 그것도 막내와 함께 말이예요.



마침내 동서울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눈이 초롱초롱해진 길동무와 함께요. 



막내는 다시 잠이 들었어요. 고맙게도 동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푹 잘 잤답니다. 


이렇게 해서 철원 출장도 아기와 함께 잘 다녀왔답니다. 


2023년 4월 28일

막내 5개월 6일

작가의 이전글 4개월 아기와 당일치기 거제 출장이 가능하다구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