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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민 Feb 18. 2024

새벽에 일어나 아기와 함께 집 나온 이유는?

대전-하남-관악 당일치기 출장

출장 일정은 계속되었습니다.

이번에 갈 곳은 하남과 서울 관악구였어요. 두 곳이 그리 가깝진 않지만, 방문해야 하는 날짜가 비슷했기에 묶어서 다녀오게 되었답니다. 





5월 초, 날이 많이 길어졌죠?

시외버스는 기차보다 첫차 시각이 뒤에 있어서 꼭두새벽에 나올 필요는 없었어요. 



이 날의 시외버스 티켓입니다.

아기는 이 때까지도 푹 잘 자고 있었어요. 



오전 7시 15분, 대전에서 동서울로 가는 시외버스 안은 조용했어요. 아마 아침 일찍 서울에 도착해 업무나 용건을 보려는 사람들이겠지요? 아기를 데리고 탄 사람은 저뿐이었어요. 커튼을 치고, 모두 조용히 자는 분위기였어요. 


아기가 편한 자세로 잘 수 있도록 아기띠에서 풀어 눕혀 안은 채, 저도 잠이 들었습니다. 


버스는 2시간을 꼬박 달려 9시쯤 동서울에 도착했어요. 




동서울터미널에는 수유실이 없어서, 저는 이동하는 길에 있는 잠실역 내 수유실을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역무실과 나란히 있어서 역무실을 통해 들어갔어요. 



수유실에서 재정비를 하고 밖으로 나왔어요.

버스에서 많이 잤겠다, 이제 초롱초롱해진 아기를 위해 앞보기로 안았습니다. 앞보기로 안으면 좀더 아기의 체중이 앞으로 실려 엄마 입장에서는 힘든 느낌이예요. 그래도 아기가 세상 구경을 많이 하길 바라며 힘든 것도 몰랐어요. 


잠실에서 하남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했어요.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말을 걸었습니다.


"아이고 아기 예뻐라~ 근데... 보험 맞지?"

"네?"


잠시 생각한 후에 보험 설계사, 직원인지 물어보는 질문임을 알아차렸어요.


"아..비슷하긴 한데 보험 일은 아니예요."


그러자 그 아주머니는 저를 위아래로 살짝 보더니 좀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어요.


"괜찮아. 우리끼리 얘기해도 돼. 어딘데?"


아주머니는 정말 제가 보험설계사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고, 어느 회사 직원인지 궁금하신 듯했어요. 뭐라고 설명을 드려야하나 고민하던 차에 제가 타야하는 버스가 와서 탔어요.


'아주머니는 왜 나를 보험직이라고 생각하셨을까?'

버스 안에서 곰곰이 생각해보았어요. 깔끔한 카라리스 재킷과 원피스, 에코백 안에 든 사은품과 쇼핑백, 기관방문일지 몇 장을 철한 클립보드 등이 아마 보험사원의 용모나 소지품과 비슷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더 확신을 주었던 건 아마도 제가 아기를 안고 있었기 때문 아닐까요? 보험설계 일은 아기를 데리고 다니면서도 할 수 있으려나요? 새삼 저 말고도 이렇게 열심히 아기를 안고 일해보겠다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상하게도 힘이 났습니다. 




일 낮 시간, 하남 감일지구로 가는 버스는 사람이 많진 않았어요. 그런데 아기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왜 우는거지?'


20분 이상 타고 가야했어요. 중간에 내릴까 생각도 들었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낯설었고, 어차피 가긴 가야했어요. 눈치를 보며 아기를 어르며 겨우겨우 목적지에 내렸습니다. 


 



"아이구 교수님 아기를 데리고 오셨네요."

"아 예, 저희 아기가 분유를 잘 안먹어서 이렇게 데리고 오게 되었어요. 아기를 데리고 오니 학부모인지 교수인지...호호"


매번 어린이집을 방문할 때마다 학부모로 생각해서 괜히 혼란스럽게 해드리는게 아닌가 걱정되더라구요. 그래서 학교 이름이 쓰여진 기념품 쇼핑백을 최대한 앞에 잘 보이게 들고, 먼저 설명드리곤 해요. 어린이들을 많이 보시는 분들이라 아기와 함께 가도 다들 반겨주셨어요. 





하남에서 가야할 어린이집은 두 곳이었어요. 다음 번 목적지까지는 택시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두 번째 어린이집에서도 


"애기 낯 가리나요? 제가 잠시 안고 있을게요. 편하게 얘기 나누세요."


하고 한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셨어요. 




어린이집에서 나와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5월의 한낮이었어요. 사람들이 점심을 먹으러 걸어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어디선가 점심을 먹고 싶다.'


새벽 일찍 나오느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였어요. 하지만 다음 목적지까지 마음이 급했어요. 아기의 컨디션이 언제 안 좋아질지 모르니, 가능하면 빨리 이동하고 싶었어요. 


기껏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갔는데, 알고보니 반대편 방향이었어요. 다시 왔던 길을 따라 육교를 올라가고 또 내려갔습니다.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서 같이 탄 분이 열림 버튼을 눌러주며 먼저 내리라는 몸짓을 해주셨어요. 아기를 데리고 있지 않았다면 받지 않았을 배려란 생각에 찡했습니다. 


버스를 타고 20여분 후에 잠실역에 도착했어요. 





잠실에서 서울 관악구까지는 2호선을 타고 꼬박 30분이 걸렸어요. 신림역은 학교 다닐 때 자주 지나다니던 곳이라 익숙한데, 학교를 떠나 오랜 시간이 지나 아기를 안고 다시 오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신림역에서 나와 마을버스를 타고 어린이집까지 갔습니다. 오후 2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 먹은 것 없이 계속 이동하니 지치기 시작했어요. 


'여기만 마치면 맛있는 걸 먹어야지.'




세 번째 기관 방문도 무사히 마친 후 저는 서울대학교 쪽으로 이동했어요. 서울대 연구실에서 박사논문을 쓰고 있는 친구를 잠시 만나고 가려고요. 친구와 만날 시각까지 여유가 있어서 근처에서 뭐라도 먹기로 했어요. 


여기는 정말이지 제가 학부부터 대학원까지 10여년을 있었던 곳이었고 신림동에 살았던 적도 있기 때문에 어디에 뭐가 있는지 훤하게 알았어요. 



그런데 제가 뭘 먹었을까요? 

바로 서울대 정문 앞에 있는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었습니다. 

컵라면이라니요... 진짜 맛있는 걸 먹어야 하는데!!


'녹두거리에는 먹을게 많겠지만 이동 시간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서울대 안 식당도 있지만 이 시간이면 대부분 문 닫았을거야.'



그래도.. 라면은 언제먹어도 맛있죠. 


아기를 안고, 정장풍 재킷과 원피스를 입고 큰 기저귀가방을 멘 여자가 편의점에서 컵라면이라니... 이상한 조합처럼 보이긴 하지만 뭐 어떤가요. 컵라면 먹는 동안 아기가 무릎에서 잘 놀아주어 고마울 뿐이었어요. 그래도 다음번엔 더 건강에 좋은 걸로 먹기로 다짐해봅니다. 


대전까지 내려가려면 갈길이 멀었어요. 오랜만에 모교에 와서 친구도 만나니 마치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고, 학교에 다녔을 때처럼 여유롭게 차한잔 하며 이야기도 나누고 싶었어요. 하지만 저에게 주어진 시간은 겨우 20분 정도였어요. 20분 후에 버스를 타야 광명역에, 대전역에, 그리고 저희 집에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어요.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친구와 잠시 얘기를 나누었어요. 오전 9시쯤 잠실역 수유실에서 수유한게 마지막이었어요. 이날은 특히나 이동할 때 수유할 곳이 별로 없었습니다. 친구한테 좀 가려달라고 하고 정문 근처 미술관의 카페 야외 자리에서 수유도 했답니다.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는 시각이라 그나마 나았어요. 





서울대 정문에서 광명역까지 버스를 탔어요. 20여분 타고 가는데, 이 안에서 아기는 보채기 시작했습니다. 모유수유를 하는 아가라 쪽쪽이도 물지 않는데, 이럴 땐 특히나 아쉬웠어요. 쪽쪽이라도 물었으면 좀더 금방 달래지지 않았을까요? 


앞좌석의 아저씨가 아기 울음소리를 듣고 뒤돌아보며 얼러주셔서 감사했답니다. 




드디어 광명역에 도착했어요. 



ktx 수유실 안에서 기저귀를 갈았어요. 





드디어 대전역에 도착했습니다. 내리자마자 수유실을 찾아갔어요. 아기와 함께 출장을 다니면서 전국의 수유실 도장깨기를 하고 있네요. 


대전역 수유실 실내


제가 들고다니는 짐이예요. 출장 때 늘 두 개의 가방을 들고 다녀요. 등 뒤로 메는 백팩에는 아기 기저귀, 물티슈, 여벌옷을 넣어요. 학교에서 기관에 전달하는 기념품이 있는데, 하루에 여러 기관을 방문해야 하는 경우 기념품도 여러 개라서 이 백팩에 넣기도 합니다. 


에코백은 한쪽 어깨에 메고 다니는데요, 출장시 자주 꺼내고 넣고 해야하는 방문일지와 필기구, 지갑, 핸드폰 등을 넣어서 다녀요. 



대전역에서 한번 더, 신탄진역까지 기차를 갈아타고서 저희 집까지 무사히 왔답니다. 



오전 7시 15분에 버스를 타고 떠나서, 5시가 좀 넘은 시각 겨우 집에 도착했어요. 하남까지, 그리고 하남에서 관악구까지 가서 친구를 만나고 했던 순간이 벌써 아련하게 느껴졌습니다. 하루종일 많이도 돌아다녔네요. 


이렇게 해서 또한번의 출장을 무사히 마무리하였네요. 


2023년 5월 2일

막내 5개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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